‘안가(安家) 통치’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7월, 문화융성을 4대 국정 기조의 하나로 정하고 한류 확산과 스포츠 인재 양성 등 문화·스포츠 사업을 목적으로 한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재단법인 재산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회원 기업체들의 출연금으로 충당하기로 계획했다.’ 지난 11월20일 공개된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의 공소장에 나온 내용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사상 초유의 ‘피의자 대통령’으로 입건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2015년 7월20일 박 대통령으로부터 “10대 그룹 중심으로 대기업 회장들과 단독 면담을 할 예정이니 그룹 회장들에게 연락해 일정을 잡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에 안 전 수석은 10대 그룹 중심으로 기업을 선정한 다음 대통령에게 승인받았다. 삼성 등 7개 그룹을 최종 선정해 그룹 회장들에게 “대통령이 2015년 7월24일 예정인 창조경제혁신센터 전담 기업 회장단 초청 오찬간담회 직후 단독 면담을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각 그룹과의 협의를 통해 같은 달 24일과 25일 이틀간 단독 면담을 진행하기로 한 다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실제로 7월24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을 만났다. 다음 날(25일)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을 단독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문화·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려고 하는데 적극 지원해 달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안가’에서 ‘안전하게’ 출연금 요청
그런데 당시 7개 재벌 총수와 독대한 곳은 청와대가 아니었다. 청와대 인근에 있는 ‘삼청동 안전가옥(안가·安家)’이었다. 청와대에서 만날 경우 청와대 출입 기록이 남는 데다, ‘보는 눈’도 많기 때문에 보안 유지를 위해 안가를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삼청동 안가’가 주목받고 있다.
본지 확인 결과, 삼청동 안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145-20번지에 있다. 청와대 바로 옆이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대지면적 1544㎡(468평)에 건평 294㎡(89평) 규모의 한옥이다. 이 집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소유주는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자작(子爵·귀족 5계급 가운데 위에서 네 번째 작위)까지 부여받은 대표적 친일파 민영휘의 막내아들 민규식씨다.
민씨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6월10일 이 집을 매입했다가 2002년 8월27일 후손 일곱 명에게 공동 상속했다. 하지만 후손들이 세금을 체납하면서 2009년 2월 종로세무서에 압류당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는 이 땅과 집을 공매로 내놨다. 한국감정원이 2008년 5월30일 평가한 감정 금액은 78억6133만1200원이었다. 한국감정원은 ‘(이 부동산은) 금융연수원 서쪽에 위치해 있고 주위엔 국가 주요 시설물(청와대)과 일반 단독주택이 혼재한 주택가로 대중교통 이용이 다소 불편하다’고 평가했다.
“민심은 광장 정치 원해”…‘안가 폐지론’ 나올듯
공매로 넘어간 이 집은 2009년 2월 낙찰됐다. 최종 낙찰가는 40억1000만원, 낙찰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었다. 홍 회장은 이 집을 문화센터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리모델링(개량)했다. 그런데 2011년 2월11일, 대통령 경호처장으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현재는 ‘대통령 경호실’ 소유로 돼 있다. 당시 청와대는 홍 회장과 ‘교환’ 형식으로 매매를 진행했다. 국유지였던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32번지(361.2㎡, 약 109평)와 35-33번지(252.3㎡, 76평) 땅을 홍 회장에게 넘기는 대신 삼청동 집을 받은 것이다. 삼청동 부동산과 통의동 땅을 맞바꾼 셈이다.
청와대는 이 부동산을 매입한 후 활용 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했다. 매매가 완료된 뒤인 2012년 4월 기자와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검토한 결과 (향후)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이후부터 대통령 취임식 직후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까지 임시로 거처할 수 있는 안가로 활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19일 대통령선거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식 날인 2013년 2월25일까지 60여 일 동안 머무를 곳으로 활용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2012년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이 안가에 실제 머물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머물렀다. 대통령 당선인 안가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했던 집이 그대로 방치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삼청동 안가가 애당초 목적과 달리 ‘악용’됐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의 출연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재벌 총수들과 만났던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代)를 이어 안가 정치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가 정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때 안가는 10곳 이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79년 10·26 사건이 터진 곳도 궁정동 안가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기업인들로부터 ‘통치 자금’(비자금)을 챙긴 곳도 안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밀실 정치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안가들을 모두 없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을 통해 ‘안가 통치’가 부활한 셈이다. 소통을 거절한 채 폐쇄적인 스타일로 일관한 박 대통령 통치 방식이 투영된 사례 가운데 하나가 안가 정치다. 박 대통령은 11월4일 2차 대국민사과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해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면서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검찰수사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은 11월20일 “(대기업들은 대통령의 재단 출연금 지원 등) 요구에 불응할 경우 각종 인·허가 등에 어려움을 겪거나 세무조사를 당하는 등 기업 활동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지원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안가 통치’ 폐습도 드러났다. 현재의 난국이 어느 정도 수습되면 안가 폐지론도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민심은 음습한 안가가 아닌 투명한 광장 정치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