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와대의 강력한 언론 분쇄로 진실의 문 닫혀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실장, 청와대 수석 등이 총동원됐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를 위협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음습한 청와대 수석회의는 비밀리에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해 실행했다. 그 방법이, 비판언론은 수사나 세무조사 등으로 협박해 불이익을 주고, 우호적 언론은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정부의 이중 언론정책으로 박정희 독재정권을 연상케 한다.
최근 TV조선은 2014년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수석회의에서 ‘일방적 지적, 비판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말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직접 ‘일요신문, 시사저널-끝까지 밝혀내야. 본때를 보여야.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색원하라’는 주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남긴 비망록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비판 언론을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억압한 정황을 보도했다.
국정 농단 2년 전 밝혀졌어야
실제로 청와대는 2014년 초 비선 실세 의혹을 다룬 시사저널과 일요신문에 대해 수천만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의혹 등을 보도한 기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이 수족처럼 움직이는 수사기관과 국세청 등을 동원하게 되면 언론자유의 위축은 불가피해진다.
지금의 국정 농단 사태는 사실 2014년에 이미 한 차례 일부 공개된 적 있다. 국기를 흔들고 헌법을 유린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당시 청와대의 강력한 언론 분쇄로 진실의 문이 닫혀버렸다.
시사저널, 일요신문, 세계일보 등의 권력에 대한 검증과 비판이라는 정당한 언론 역할은 청와대의 언론탄압으로 세무조사의 위협, 수사기관의 수사와 감시 때문에 위축됐다. 그렇게 정치권력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 행태로 검증보도를 못하도록 만들었다.
2016년 이제야 터져 나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최소한 2년 전에 이미 밝혀졌어야 했다. 헌법정신을 무시한 정권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린 결과 대한민국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버렸다. 국민은 허탈과 배신, 좌절, 분노로 집단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전국에서 ‘박 대통령은 물러가라’는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확산되고 있다. 국가와 결혼했다며 틈만 나면 애국심을 강조하던 박 대통령 실체의 일부가 드러나면서 국민은 경악하기 시작했다. 아직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집권 4년에 걸친 국정 농단의 실체는 알 수 없다. 그 전모와 진실이 밝혀지면 박 대통령보다 그를 선택한 유권자들이 더 큰 충격에 빠질지 모른다.
‘최순실 꼭두각시 정권’의 불법적 언론탄압을 지시한 박 대통령과 이정현 전 홍보수석, 김기춘 전 실장을 비롯한 전·현직 민정수석 등은 법적·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도덕한 정권의 수족 노릇을 한 수사기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이 모든 것은 단편적으로 드러난 진실의 파편들일 뿐이다. 특별검사의 진실규명 작업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 집권 후 한국의 언론자유도는 곤두박질쳤다. 2013년 44위에서 해마다 50위(2014), 57위(2015), 70위(2016)로 낙하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언론자유도는 세계 31위로 최고 성적을 기록한 후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역대 최악의 기록을 경신했다.
특검, 언론탄압 전모 밝혀야
단순히 수치만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공정방송의 기대를 모았던 KBS, MBC 등 공영방송사들은 청와대가 임명한 권력순종형 사장들 때문에 권력검증, 진실보도와는 멀어져버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통해 권력검증에 나선 것은 공영방송사가 아닌 종편 JTBC, TV조선 등이다. 권력은 공영방송마저 망쳐 놓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특별검사를 통해 공영방송 장악 및 언론탄압에 대한 전모를 밝혀야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통령이 두 명 존재하며 4년간 국정 농단을 했는데도 언론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비판 검증에 나선 시사저널 등 언론사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입에 재갈을 물렸는지 그 내용과 진실이 공개돼야 한다. 권력비판형 기자, PD 등에게 불법으로 중징계를 내린 언론사 그 이면에 청와대의 어떤 내밀한 지시나 협조, 묵인이 있었는지 등도 정확히 밝혀내야 한다. 벙어리가 되다시피 한 공영방송의 배신과 몰락의 진실도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둘째, 꼭두각시 정권을 지탱하며 ‘협조’란 미명하에 언론통제를 한 장본인들, 그 부역자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언론을 ‘채찍과 당근으로 순치시킨 이중 언론정책’으로 유명하다. 반세기가 지나 그 딸이 집권해서도 똑같은 반헌법적 언론정책을 펴는 데는 김기춘 전 실장, 이정현 전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 이들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KBS, MBC의 전·현직 사장 및 주요 간부들 등의 발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정권 언론탄압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전모를 밝힌 후 법적·윤리적 책임을 추궁해 향후 정치권력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론계는 박근혜 정권하의 ‘언론탄압백서’를 정리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언론자유는 기본권이며 헌법적 권리다.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권력의 부당한 개입과 탄압은 규탄돼야 하며 처벌받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 한국 언론이 전반적으로 위축됐으며 비판에 나서는 언론은 핍박을 당해야 했다. 기자, PD들은 너무 쉽게 무더기 해고를 당했으며 복직 판결을 받아도 비취재 부서를 전전해야 했다. 사명감을 갖고 뛰는 언론인들, 언론사를 탄압하는 만큼 진실도 탄압을 받았다.
언론탄압의 결과, 검증은 소홀해졌고 그만큼 국정 농단은 우리 사회를 깊이 병들게 했다.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세월호 사건, 일방적이며 시대착오적인 국정교과서 사건, 위안부 할머니들도 반대한 일본과의 굴욕적인 합의, 공영방송사들의 몰락과 언론탄압,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특혜 학사관리 등. 지금의 나라꼴은 법과 원칙, 정의가 무너진 처참한 현실이다. 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린 과연 무엇을 얻을 것인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