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前 민정수석 ‘비망록’에 기록…靑, 정윤회 문건 배후 ‘박지만 몸통설’ 제기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청와대가 은폐하거나 왜곡했던 사실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그중에는 시사저널이 비선실세 의혹을 최초 보도한 ‘박지만 회장 미행설’ 관련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시사저널은 2014년 3월22일자에 ‘’는 단독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의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2013년 말 정체불명의 사내로부터 한 달 이상 미행을 당했으며, 박 회장은 미행 배후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전남편인 정윤회씨를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혈육과 비선실세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기사 내용의 핵심이었다. 청와대는 즉각 이 사실을 전면 부인했고, 박 회장 역시 검찰수사 당시 입장을 번복하는 등 갈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공개된 비망록에 따르면, 청와대는 박 회장이 정윤회의 미행을 확신했으며 이로 인해 박 회장이 정씨 측에 대한 공격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공격이 박관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으로 비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시사저널 보도를 언급하며 “대통령이 몹시 언짢아했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기춘, 비선실세 보도에 가이드라인 제시
박지만 미행설과 관련해 비망록에 기록된 내용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2014년 7월15일 처음으로 시사저널이 언급된다.
7/15(화)
(領) 시사저널, 일요신문 → 끝까지 밝혀내야 - 피할 수 없다는 본때를 보여야. 선제적으로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색원. 정무·홍보수석실 조직적·위기적으로 대응
이보다 앞선 7월2일 김 전 실장은 시사저널 보도를 의식한 듯 ‘허무맹랑하고 불합리한 일방적 지적·비판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면 안 됨. 반드시 정정보도, 언론중재위 제소, 고소고발 및 손배청구 등 이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가도록 해야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으므로 철저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정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시사저널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박지만 미행설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14년 11월24일 ‘정윤회 청와대 문건 파동’이 터진 이후다. 당시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은 청와대 입성 후 정씨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음을 주장해 왔다. 시사저널의 박지만 미행설이 보도됐을 때도 역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정씨와 연락해 왔음이 드러났다. 김 전 실장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석비서관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나와 있다.
12/2(화)
(長)
•만난 적 없다.
•지난 1년6개월간 2번 통화한 듯 - 記憶(기억)
•28일 世界日報(세계일보) 이후 2차례 항의 전화
•3. 23字(자) 시사저널 미행 보도 ‘경거망동 말라’言(언). 領(령) 언짢아함. 4.11 전화
즉 3인방은 정씨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전화통화를 2번 했을 뿐 만난 적이 없으며,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2차례 통화를 한 것이 다라는 주장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갑자기 시사저널의 기사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당시 박지만 미행설 기사에는 “박 회장이 정씨에겐 항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김 실장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해명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언짢아했다’는 김 전 실장의 전언은 혈육보다도 정씨를 비롯한 비선실세를 감싸고 도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눈이 쏟아질 때는 빗자루로 쓸 수도 없다”
박 회장은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한 검찰수사 당시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고 밝힌 바 있다. 박 회장의 하소연처럼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파동의 몸통으로 박 회장을 의심하기도 했다.
12/4(목)
박지만, 미행 확신
1/5(월)
조응천 VS BH(청와대) 대립, 정윤회+3인방→다른 것, 대포폰
박지만 攻擊(공격) 가능성→박관천에 지시
=>박지만 몸통說(설) 제기
2015년 1월5일은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한 검찰수사 결과가 발표된 날이다. 당시 검찰은 “정윤회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풍문을 과장해 짜깁기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때 김 전 실장이 주재한 청와대 회의에서는 정윤회 문건 배후로 박 회장을 거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망록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태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김 전 실장은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특검 역시 김 전 실장을 면밀히 수사한다는 입장이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1월29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功)은 쉬 잊혀지고 과(過)는 오래 남는다. 공인의 과는 특히 오래 남는다. 눈이 쏟아질 때는 빗자루로 쓸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 본인의 말처럼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며, 역사 또한 이를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