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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대통령 性情-성난 民心, 험난한 나라 장래

10월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시위.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2016년 11월, 대한민국에선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下野)하라” “대통령을 탄핵(彈劾)하라”는 외침이 전국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스스로 물러나(하야)’지 않으면,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의결과 결정을 통해 파면(罷免)하라는 얘깁니다. 대학생·교수는 물론 중·고교생에다 종교계 등이 총궐기했습니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루던 이들도 배신감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 등 ‘충정(忠情)기관’ 관계자들까지 ‘멘붕’이라고 합니다. 어디 가서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간 맞아 죽거나 정신이상자로 매도될 형편입니다. 한 자릿수로 떨어진 지지율이 그나마 신기할 정도입니다.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국민인 게 부끄럽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사태가 이쯤 돼서야 대통령은 국민 앞에 검찰수사에 응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11월5일,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관계, 최순실이 저지른 패악도 인정했습니다. 열흘 사이에 두 번이나 국민 앞에 무릎을 꿇은 대통령의 처지가 어떨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국민이 대통령의 반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진즉 이 정도나마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했다면 국민적 분노가 다소간 진정됐을지 모르나 원체 들끓고 있기에 누구도 장담 못하는 상황입니다.

 

‘한 여인’이 최고 권력자의 비호(?) 아래 국가 인사·정책을 멋대로 재단하면서 사욕(私慾)을 취한 국정 농단(壟斷)이 사태의 발단입니다. 온갖 정황증거가 뻔히 드러났음에도 이를 감싸고 도리질하던  대통령은 거짓말쟁이가 돼 설 땅이 더 좁아진 것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최순실파’의 행악(行惡) 과정과 흔적들 때문에 여성 대통령 ‘핏줄’ 관련 괴담(怪談)까지 난무했습니다. 사태와 직접 관계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등장합니다. 오만과 독선, 고집불통이 집안 내력이라는 것이지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예사입니다. ‘독재자의 딸’ 운운하며 ‘한국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힐난하는 외신도 있습니다. 

  

최순실에 전적으로 기대면서 예고된 불행

 

그간 후임자 없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전체 수석비서관이 사표를 내고, 현직 총리도 모르는 사이에 후임 총리가 발표되는 희한한 사태도 벌어졌지요. 정치권은 발칵 했고, 일반인들도 아연한 표정입니다. 때문에 대통령은 또 한 번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국가원수는 빗발치는 비난에 항거할 명분이나 기력은 없고, 수족(手脚)도 없으니 식물대통령이 돼버렸습니다. ‘한 아낙네’의 꼭두각시라는 욕을 먹어도 대꾸조차 못하는 청와대입니다. 당연한 결과로 국정은 올스톱,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너무나 어지럽고 어수선해 국정 공백(空白的)이라는 단어가 되레 무색합니다. 검찰에 불려간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양새입니다. 이게 검찰의 칼날을 피하기 위한 고단수(高段數) 책략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그토록 질색하던 배신(背信)의 전형인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탄식을 금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리에 있어봤자 구실을 못할 바엔 차라리 지금 내려오는 게 낫다’는 등등 대통령이 형사 피의자처럼 모든 이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니 대통령으로서 기능하기는 틀렸습니다. 대통령의 11·5 대국민사과가 있었지만 하루 이틀 뒤에 무슨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소동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말이 쉬워 그렇지 하야건, 탄핵이건 엄청난 비상사태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윤보선 대통령 사퇴(번복), 박정희 대통령 궐위(闕位·유고(有故)로 발표됐으나 피살됐으므로 궐위가 정확),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를 곱씹으면 아찔합니다. 국가적 재앙입니다. ‘헌정질서의 상징으로서 대통령이 자리에 없는’ 사태가 초래할 후유증이 어떨지는 불문가지입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한심하지만 하야·탄핵 이후 벌어질 장면은 상상조차 끔찍합니다. 물론 권위를 상실한,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식물대통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정리된 상태에서 국가가 굴러가도록 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기야 대통령의 성정(脾气)에 비추어 하야할 리는 없을 듯합니다. 하야하는 순간 ‘수사하라’는 외침이 ‘구속하라’로 이내 바뀔 것이기 때문에라도 하야는 없을 테고, 탄핵도 현실적으론 간단치 않으니 이래저래 사태는 더욱 꼬이겠지요.

 

‘박관용 회고록’이 4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부문을 10회에 걸쳐 집중하는 것으로 맺게 됐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즈음의 정국 상황과 맞물려 ‘인기리에 연재’라는 평가에 몇 점을 더 보태게 됐습니다. 평소 같으면 대하(长河) 시리즈가 이처럼 시의(時宜)와 맞아떨어지면 기획자로서는 반색하게 마련이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대통령 주변의 이런저런 불행한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背面敎師)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그게 현실화됐으니 어찌 맘이 편하겠습니까. 특히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한갓 지난 일이 아니라 오늘날의 정치 지형·기상도와 맞물려 있는 것이기에 석 달 전부터 집중적으로 다뤄왔습니다만 ‘진짜로’ 현직 대통령을 향해 탄핵 소리가 나오니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입이 방정’이라는 속담처럼, 마치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인 탓에 없어야 할 불행이란 게 생긴 양 속이 쓰립니다.

 

탄핵이란 단어가 더 이상 안 나오기 바랐으나

 

본래 연재의 마지막인 40회는 미처 소화하지 못한 일화(逸話)와 박 전 국회의장의 인생관 등을 소개하는 기회로 삼으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국이 원체 위중하니 다른 사연들은 일단 접어둘까 합니다.

 

오만방자 속 갈팡질팡 국정운영과 심각한 민심 이반(離反)이 회고록을 시작한 동기입니다. ‘문고리 3인방’ 등 비선(秘線)에 의한 국정 농단 시비로 국정난맥상이 도를 넘은 게 직접적 계기였습니다. 불길(不吉)한 예감이 엄습하기에, 어떻게든 그 우려를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연재를 기획했던 겁니다. 물론 불길함을 예감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험악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만-.

 

‘최순실’로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혀진 지금에 비하면 ‘새 발에 피’지만 1년 전 상황도 심각했습니다. ‘환관정치’의 중심이라 할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떠났으나 문고리 3인방이 국사를 좌지우지(이들도 최순실의 하수인쯤으로 드러났으나)하는 국정 농단·왜곡 시비는 꺼지지 않았고, 대통령의 험한 말로(末路)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30%대 지지율이 무너지면서 위기 경고음을 내는 참이었습니다. 지금은 30%가 마냥 부러운 꿈의 수치가 돼버렸으니 격세지감입니다. 그냥 뒀다간 나라 꼴이 엉망이 되리라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쇠귀에 경 읽기’가 될 것을 각오는 하면서도 행여 하는 마음으로 올해 1월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눈과 귀를 막고 지내는 대통령이라지만 천시(天時)와 같은 ‘역사의 가르침’을 완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때의 생각이었습니다. 전혀 씨도 안 먹힌 것으로 판명됐지만 말입니다. 청와대는 설령 그렇더라도 여야 정당, 국민들만이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으면 하는 기대를 했습니다.

 

통상 큰일을 마칠 때면 후련함에 비교적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 마련입니다. 기왕에 펴낸 내용을 반추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박관용 회고록’은 정반대가 됐습니다. 시발도 무거웠는데 끝은 무지무지하게 무겁습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10월29일 오후, 회고록 마지막 장을 채우기 위해 박 의장을 만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갈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가 1시간여 시국수습 방안을 조언하고 나온 직후입니다. 

10월29일 청와대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대통령이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이기에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박 전 의장은 대통령을 함께 만난 다른 새누리당 원로 7명도 대통령에게 ‘험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지켜볼 것을 정무수석에게 당부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김현일

떼밀리기 전 새누리당 脫黨 권유했다

최순실, 본래 ‘특수관계’인 데다 불면증 시달리는 대통령 말벗하며 專橫 극대화?

10월29일 대통령 만난 박관용 前 국회의장… “앞길이 깜깜하다”​ 

  세월이 하 수상하다. 당초 대하 시리즈를 마치는 감회 등을 듣고자 했는데 화제를 돌려야 하겠다. ‘이것만은 아니었으면’ 했던 게 죄다 현실화됐다. 답답하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소망을 갖고 때론 내가 모시던 YS의 거북한 과거 사실들까지 털어놨는데…. 원체 그런 박근혜 대통령이라지만 안타깝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전말을 누누이 얘기한 것도 그래서였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런 비극은 없어야 한다고. 그런데 탄핵·하야가 공공연히 터져 나오니 할 말이 없다.  

강창희·김수한·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8명의 원로들이 함께했다는데. 대통령 용태는 어떤가. 무슨 조언을 해 줬나.

 몹시 수척해 보였다. 어찌 안 그렇겠나. 원로들의 제언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말이 원로라지만 4년 만에 처음 청와대 들어온 분도 있다. 그나마 두 차례 초대받았던 나는 나은 편이었다. 박 대통령의 불통 수준이 짐작된다. 현직 장관은 고사하고 수석들이 1년이 넘도록 독대(獨對)를 안 했다니까 더 할 말은 없지만…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에게 진솔한 대국민 사과, 전면적인 정부와 청와대 인사 쇄신, 새누리당 탈당 등을 건의했다. 이런 것들이 조속한 시간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게 가장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어떤 분은 대통령이 스스로 수사를 받겠다는 결의 천명을 당부했다. 거국중립내각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으나 못할 바도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중립적 인사로 내각을 구성하고, 대통령은 외교·안보에 전념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대통령은 원로들의 지적을 경청했지만 일체의 코멘트는 없었다. 짤막하게 “잘 들었다”고 인사한 게 전부다. 대통령이 하도 심각한 상태여서 모두들 ‘안위’를 걱정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해서였다. 배석했던 정무수석에게 ‘험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눈을 떼지 않게 하라고 신신 당부했다.  

왜 탈당을 권유했나.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중립 표방이 필요하다. 여당 내에서 탈당 소리가 나오게 돼 있다. 사태가 불리하면 나가라고 할 게 빤한데 그럴 바에야 정국 수습 차원에서라도 먼저 탈당을 선언하는 게 낫다. 등 떼밀려 나가는 것보다 백번 낫다.  

박 대통령이 다수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습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나.

 대통령의 성격상 과감한 방안을 내놓을지 의문이다. 모든 것을 ‘던지는·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한데 고집이 보통이 아니니….  

박 대통령의 고집은 오기(傲氣), 불통과 함께 트레이드마크다.

 시사저널 1401호 ‘박근혜 의원과 나’에서 밝혔듯이 고집불통은 누구도 꺾지 못한다. 1시간 동안 알아들을 만큼 얘기했는데 대답은 “제 생각은 달라요”가 전부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영애 근혜’가 최태민과 ‘어울리는 것’이 걱정돼 김재규 정보부장에게 조사를 시켰다가 영애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두 손 든 얘기는 다 안다. 방문을 잠그고 틀어박히는 바람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과했다고 하지 않은가. 고집불통 YS도 차남 현철을 어쩔 수 없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딸 박 대통령’은 특히 심한 모양이다. 그 말 많은 민정수석 우병우를 끝까지 끼고 돌지 않았나. 몇몇을 제외한 남자, 그게 장관이건 누구건 믿지를 않는다. 소위 배신 트라우마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탓인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에게 남자란 제 생색이나 내고, 남 모략하고, 청탁이나 하는 못 믿을 존재다. 수석비서관에게조차 독대 기회를 안 주는 이유일 게다. 그와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 8년을 같이 있으면서 유사한 경험을 많이 했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가도 단둘이라는 것을 알면 즉시 취소하곤 의원실로 가버렸다. 박 대통령은 낯가림이 아주 심하다. 지도자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많은 사람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봐야 하는데 정반대이니 탈이 나게 돼 있다. 행정부 과장이 써준 서류나 읽곤 비선의 특정 소수만을 접촉하니까 사달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2015년 6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과 가깝게 의논하는 비선라인이 따로 있다’고 밝혔는데 ‘최순실’을 가리킨 것인가.

 대략 짐작은 했지만 최순실을 특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순실 같은 비선이 엄존하는 것은 확신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특보를 오래 해 봤기에 안 봐도 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사 참사(慘事)’가 거듭되고 황당한 정책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누구고 비선라인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정도가 심한 것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YS는 ‘북한 붕괴’를 늘 강조했다. 최고 통수권자의 판단이 그렇다면 문제이기에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여러 차례 만난 K씨를 직접 대면케 했다. 그런데도 YS는 변하지 않았다. 비선에서 잘못된 정보를 주입한 결과였다. ‘하나회 숙군(肅軍)’이 지나친 것도 같은 비선에 의한 결과였다. 그래서 아까운 인재들이 희생됐고.  

최순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다?

 최순실에 대한 보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마당에 더 무엇을 보태겠나. ‘대통령과 오랜 세월 함께한 최순실’, 그것만으로도 ‘다 통한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게다가 상당 기간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박 대통령 곁에서 항상 말벗이 됐다면 어떨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최순실이 분수를 지켰다면 몰라도 설치려 들면 누군들 감히 말리겠나. 전횡(專橫) 수준은 따질 필요가 없다.  

지금 사태를 어떻게 보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학생·교수가 가두시위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YS도 현철의 권력형 비리로 여론이 비등했지만 버텼다. 그러나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 발표를 준비 중이라는 보고를 듣고는 구속에 ‘동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쯤은 비교가 안 된다. 더 무슨 말을 하겠나.   

정국을 전망하면.

 야당은 기회다 싶어 공세 고삐를 늦추지 않을 터이고, 여권의 대선후보군들도 대통령을 밟고 일어서려 할 터이니까 어지러울 게다. 그렇지 않더라도 레임덕 대통령은 뭇매를 각오해야 하는데 민심이 등 돌린 대통령을 향하는 공세가 오죽하겠나. 대통령에게 의연한 대처를 당부했지만 그 성격에다…앞날이 깜깜하다.   

더 주고 싶은 말은. 

 대통령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 권력은 속성상 지나치게 돼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식이 있어야만 권력에 도취해 실수를 하는 일이 없다. 권력은 칼과 같다. 잘못 쓰면 본인도 다치고 여러 사람을 해치게 된다. 사람 만나기 싫다고 안 만나고 주위와 참모들 얘기를 안 듣는다면 지도자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이 말은 하려고 한다. 권력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위정자들 잘못도 있지만 모두가 정쟁에 함몰하니까 조금만 실수해도 물고 뜯기 일쑤다. 나라 장래를 위해 파쟁을 지양하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 말도 꼭 해야겠다. 어떤 이들은 내가 YS의 단점을 적시한 데 대해 아주 불만스러워한다. 나 자신도 께름칙하기는 하다. 진실 증언 차원에서 말은 했지만 정리 단계에서 빼줬으면 하는 대목도 상당했으나 그대로 활자화됐다.  그러나 YS의 인간적 면모를 내보이는 측면도 있기에 탓하거나 나무라진 않는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는데 미화 일변도는 옳지도 않다. 허물을 감추느라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대목에서 누차 강조했지만 탄핵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 자신 국가적 대혼란을 초래하는 비극이기에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의회의 권위와 절차를 지켜야 하는 국회의장으로서 본회의 사회를 봤지만 내 생각은 지금도 확실하다. 우리 정치에서 없어지기를 바랐던 탄핵 소리가 터져 나오니 딱하다.    

역사적 교훈 위해 YS 허물도 건드린 박관용 前 국회의장

 

시사저널은 ‘박관용 회고록’을 시작하면서 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증언자로 모셨는가를 사뢰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제1당 사무총장·부총재, 6선 경력의 국회의장 등 본인의 경력뿐 아니라 합리적 대안 제시라는 기대를 충족할 만한 인물로 그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원로회의 멤버로서 현 여당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것도 그를 주목하는 소이(故)였습니다. 정계를 떠나기 전 국회의장으로서 마지막 ‘작품’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었다는 점도 중요했습니다. 주위에 의견을 구했는데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한 시절의 흘러간 얘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교훈을 줄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누구인가를 물었더니 저희와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저희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그는 생생한 증언으로 우리 정치가 나갈 길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11월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종교·사회·정치 원로들이 초당적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우리의 안보 위기와 민생 불안은 상상 그 이상이라며 국난(國難) 극복에 지혜를 모을 때라고 역설했다. 시국선언에는 김덕룡 국민동행 대표,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도 공동대표로 참여했다. © 연합뉴스

이론과 실전을 겸전한 ‘살아 있는 현대정치사’로서 최적임자였지만 문제는 박 의장 본인이었습니다. 응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본지가 제시한 구상대로라면 구설(口舌)에나 오르기 십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영삼(YS)·김대중(DJ)·노무현·박근혜 대통령 등을 등장인물로 한 스토리를 쓰면 자신이 성치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허위를 늘어놓거나 미화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게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특히 YS 부분은 마음에 무척 걸린다고 했습니다. 자칫 모시던 분을 헐뜯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탄핵 방망이를 두드린 노 대통령이나, 자신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박 대통령도 경우는 다르지만 껄끄럽기는 매한가지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래서 극약처방을 내렸습니다. “당신은 국회의장을 지낸 원로가 아니냐. 그래 지금 상황을 정상으로 보느냐. 그대로 방치하는 게 과연 합당하냐. 원로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윽박’질렀습니다.

 

“모시던 YS를 비난하라는 게 아니다. 대척점에 섰던 노 대통령을 매질하라는 게 아니다. 옹립했던 박 대통령을 꼬집으라는 게 아니다. 과거의 아픈 경험을 통해 나라가 정상화되는 방안을 함께 추구해 보자는 것이다”라고 설득했습니다. 박 의장 본인이 항상 되뇌던 ‘영원한 의회인’으로 남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막판에 박 의장은 “워낙 민감한 내용을 쓰는 것이라서 힘들다”는 말로 피해 가려고 했습니다만 기자가 정리를 도맡아준다는 말로 차단했습니다. 청와대 시절은 물론, 박 의장이 의원 비서관 때인 1970년대 말부터 교류해 온 기자가 해코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는지 그는 증언을 수락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건대 연재 과정까지도 소상히 밝히는 이유는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비극적 사태가 일찍이 잉태됐었다는 말을 고하기 위함입니다. 정리를 맡은 기자는 박 의장의 여러 회고 가운데 최고 지도자의 개성·스타일 등을 중점적으로 발췌했습니다. 오판(誤判) 내지 불통(堵塞), 권력 주변 관리 잘못으로 뒤바뀐 국가 운명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박 의장의 뜻은 가능한 한 배려했으나 필요에 따라선 그가 꺼리는 내용까지 활자화했습니다.

 

‘대통령의 아집과 독선이 달라져 봤자’라고 체념들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면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건승하심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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