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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의 구국십자군 조직을 보면 교회와 학교를 양대 축으로 삼았다. 개신교가 이용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친(고 탁명환 소장)의 기록을 보면, 최태민을 1973년과 74년에 보고, 75년에 다시 만난 것 같다. 그 전에는 ‘원자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75년에 다시 만나니 이름이 ‘최태민’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빠른 시간 내 신분세탁을 해야 하니 개신교 목사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불교나 가톨릭은 빠른 시간 내 사제로 변신하기 쉽지 않은 반면, 당시 개신교계는 무허가 신학교가 난립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목사 직함을 얻던 때였다. 72년 유신헌법이 발효된 이후 개신교가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멸공’을 기치로 내건 또 다른 개신교 세력이 정부에게도 필요하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그걸 최태민이 잘 이용한 거다.-생전에 선친께서는 최 씨에 대해 어떻게 말했나?
당시 선친께서는 한국의 신흥종교에 큰 관심이 있으셨다. 정확히 1964년부터다. 계룡산을 중심으로 많이 돌아다니셨는데, 당시 ‘원자경’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천도교, 기독교, 불교를 하나로 합친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으셨던 것 같다. 당시 원자경은 ‘영세계 칙사관’이라는 이름으로 홍보지도 만들어 돌렸다. 자신을 ‘조물주가 보낸 칙사(勅使)’라며 ‘불치병도 쉽게 고친다’고 말하고 다녔다. 어릴 적 선친께서 ‘계룡산 어디에 벽에 동그란 원을 그려놓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보면 그 사람이 원자경, 다시 말해 최태민이었던 것 같다.-그 외에도 원자경에게서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는가?
직접 원자경이 주최한 행사에 가봤는데 일대 유명한 무당과 사이비 종교 교주까지 왔다더라. 그걸 보면, 나쁜 영력(靈力)이지만 영력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는 1974년 원자경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3~4번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아버님의 기록에 보면 분명, 그 때까지는 원자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5년 신문에서 ‘대한구국선교단’이라는 단체를 보셨던 것 같다. 총재라는 사람을 보니 머리가 벗겨져 있고 안경을 쓴 게 딱 ‘원자경’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최태민이라더라. 그래서 전화를 걸어 ‘나 탁명환입니다’라고 하니 최씨가 무척 당황해했다고 한다. 훗날 선친께서 구국선교단 사무실에 가서 최씨를 직접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 최태민은 조잡한 무속인이 아니라 목사였고, 엄연한 권력 실세였다.-그 때 탁 소장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최씨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최태민은 당시 아버지에게 ‘더 이상 자신에 대해서 조사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가 만든 구국선교단에서 활동한 ‘진짜’ 목사들도 선친을 협박했다. 최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며, 더 조사하면 큰일 당한다며 말이다. 아버지의 활동을 어디서 들었는지 중앙정보부에서도 찾아왔다고 들었다.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니 더 이상 (조사)하지 말아 달라’며 말이다. 선친은 당시 ‘영애(令愛․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이비 종교 목사가 접근해 안타깝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일부에서는 최씨를 가리켜 ‘영세교 교주’라고 말한다.
솔직히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다만 선친은 ‘영세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평소 계룡산에 있는 작은 종교에 대해서도 이름을 붙였는데, 영세교라는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시 원자경의 활동을 조직화된 종교로까지 보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마 훗날 정보기관이 조사하면서 이름을 붙이다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원자경 자신이 본인을 ‘영세계 칙사관’이라고 하고 다녔으니까. ‘칙사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시 원자경은 홍보도 하고 추종자도 있었다. 훗날 중앙정보부에 빼앗겼지만 원자경이 만든 교리서도 있다고 들었다. 내 생각에는 통일교, 천부교(옛 신앙촌)처럼 조직화되기 전 신흥 종교운동 정도였다고 판단된다.-최순실씨를 가리켜 ‘최태민의 후계자’라고 주장한다고 들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보는가?
최순실씨는 최태민의 다섯 번째 부인 사이에서 차녀로 태어났다. 그 위가 박근혜 대통령과 동갑인 최순득씨다. ‘최태민 집안’하고 박 대통령이 평소 돈독하게 지냈다면, 동갑내기인 최순득씨보다는 동생인 최순실씨가 접근하기 쉬웠을 것이다. 동갑은 개인적인 것을 부탁하기에 부담스럽지 않나. 최태민은 그걸 봤을 거다. 이번 ‘최순실 사태’는 한국 신흥 종교사에 새로운 전기를 썼다. 보통 사이비 종교는 2세가 성공하기 쉽지 않다. 돈은 있지만 권력이 없어서다. 그런데 최씨 부녀는 돈과 권력을 모두 손에 쥐었다. 이것은 통일교도 하지 못한 거다. 최순실씨는 아마 3세까지도 이런 구도를 만들고 싶었을 거다.-대통령도 대국민담화에서 최순실씨와의 관계에서 대해 ‘사적 인연 때문에 스스로 경계의 담을 낮췄다’며 자책했다. 이건 어떻게 봐야 하나?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만약 최태민이 가진 ‘영적 후계권’이 최순실씨에게 넘어갔다면,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를 보면서 최태민을 떠올렸을 수 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과 상담하기 전 빼놓지 않고 가족들을 만나는데, 공통점이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도 20대 초반에 비극적으로 어머니를 잃고 심적으로 힘들었을 거다.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사이비 종교 교주가 접근한 게 ‘최순실 사태’의 본질이다.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라는 자리의 무게감도 컸을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비선 조직은 있어 왔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비선 조직을 굉장히 신뢰했으며, 주요 순간마다 최씨를 많이 의존했다는 데 있다. 그건 최씨를 최태민 수준으로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다.-최순실씨 주변 사람들이 개명(改称) 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이것도 종교적인 것과 연관성이 있을까?
성경에서는 고비마다 사람 이름이 성경적인 의미로 바뀐다. 하지만 최씨는 그렇지 않다. 그녀가 이름을 바꾼 것은 현재의 불운을 만회하거나 미래에 행운을 불러오기 위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마도 혼합적인 종교 색체가 강한 최태민의 영향을 받아서 그럴 거다. 선친께서는 1975년 8월14일 최태민이 주최한 ‘고 육영수 여사 추모예배’에도 가보셨는데, 당시 예배에서 최태민의 말에는 전혀 기독교적인 표현이 없었다고 한다. 순서도 엉망이고, 최씨 본인도 행사장은 겉돌았다는 기록이 있다.-최순실씨를 최태민의 후계자라고 봤다면 그녀에게 특별한 리더십도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가?
일반적으로 사이비 종교 교주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꼬집어 알려 준다. 그렇게 남의 허물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영적 권위는 높이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최씨에게서 그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 볼 때 돈은 상대방의 순종을 이끌어내는 수단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