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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경영 성적을 통해 본 현대家 오너들의 3人3色 스토리

한국 프로축구 K리그가 3월1일 2024 시즌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리그 2연패에 빛나는 ‘디펜딩 챔피언’ 울산 HD와 포항 스틸러스의 개막 경기를 시작으로, 전북 현대-대전 하나 시티즌(이상 K리그1), 안산 그리너스FC-경남FC, FC안양-성남FC(이상 K리그2) 등 팀당 38경기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올해도 여느 시즌처럼 구단과 감독, 선수 간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서 도드라지는 점이 발견됐다. ‘현대’를 모기업으로 하는 전북 현대(현대자동차), 울산 HD(HD현대), 부산 아이파크(HDC)의 구단 성적과 기업의 행보, 총수들의 영향력이 비례했다. 이에 따라 현대家 5촌 간 희비도 엇갈렸다.

전북 현대 구단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 정몽규 HDC그룹 회장, 울산 HD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왼쪽부터) ⓒ연합뉴스

HD현대 “구단·기업 모두 승승가도”

프로축구 K리그1(1부리그) 울산 HD는 ‘현대가 맞수’ 전북 현대에 우승 문턱에서 밀려 2019년부터 3시즌 연속 준우승의 아픔을 겪었다. 이런 울산이 2022 시즌 마침내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이후 무려 17년 만의 우승이었다. 2021년부터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원팀’을 강조하며 첫해 리그 2위에 오르더니, 두 시즌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쾌거를 맛봤다.

울산의 우승 DNA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창단 첫 K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통산 4번째 우승(1996, 2005, 2022, 2023)이다. 경사는 또 있다. 최근 전북 현대와의 ‘현대가 더비’에서 합계 2대1로 승리하면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로써 2012년과 2020년 ACL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울산은 4년 만에 아시아 정상 등극을 다시 노리게 됐다.

모기업인 HD현대(재계 9위)도 상승세다. 조선업 호황기를 맞으며 올 상반기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계열사 ‘HD현대마린솔루션’은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정기선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 참여한 첫 출발지다. 당시 선박 AS 사업부문 성장성을 높게 본 정 부회장은 2017년 매출액 2403억원에서 이후 연평균 35%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성장가도를 달리는 HD현대마린솔루션은 3월25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5월 안으로 유가증권시장(KOSPI)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2026년 안에 합작법인(JV) 설립 또는 협력사에 대한 지분투자를 추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년 중으로 선박 관리회사 지분을 인수해 선박 부품 서비스를 기반으로 AM 사업 저변 확대 및 설계 및 공정 관리를 수행하는 설계회사를 자회사로 인수할 예정이다. HD현대는 다시 조선업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 의식이 확고하다. 정 부회장은 정주영 창업자 흉상 제막식 및 23주기 추모식에서 “포기나 좌절 없이 항상 도전했던 창업자의 행보처럼 HD현대 또한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세계 1위 조선회사를 넘어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23년 12월3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3 우승팀인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 주장 김기희, 모기업인 HD현대 정기선 부회장(왼쪽부터)이 우승컵을 들어 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단과 상생 시너지 노리는 현대차

2000년대 이후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구단은 전북 현대다. K리그에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전북 현대는 2009년 K리그 정상을 차지한 후에도 무려 우승 트로피를 8차례(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20, 2021)나 더 거머쥐었다. 그 결과, ‘어우전’(어차피 우승은 전북)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축구 명가’로 자리매김한 전북 현대. 그러나 K리그를 호령하며 위압감을 주던 예전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23 시즌에는 4위에 그쳤다. 비록 초반이지만, 올 시즌에는 4월1일 기준 12개 팀 가운데 11위를 기록 중이다. 5연패(2017~22)를 비롯해 K리그 최다 우승의 금자탑을 쌓은 전북 현대의 부진을 바라보는 팬들의 실망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팬들은 이제라도 실추된 자존심을 빨리 되찾고, 다시 K리그 왕조가 되는 날을 바라고 있다. 

반면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재계 3위)은 구단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구단의 하락세와 달리, 현대차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북미 지역의 고가 자동차 판매 호조에 힘입어 15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차가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 15조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내자, 만년 1위였던 삼성전자는 14년 만에 자리를 내줬다.

제네시스, 친환경차, 레저용 차량(RV) 등 고수익 차종 중심의 제품 믹스 개선 효과로 인해 수익성이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전기차 성장세 둔화에 따른 하이브리드차 강세에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안정적인 판매를 유지했다. 현대차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환경규제 강화 및 친환경 인프라 투자 증가, 친환경차 선호 확대 등에 따라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친환경차 시장에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현대차는 최근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규모 채용과 투자 계획을 알렸다. 올해부터 2026년까지 3년간 국내에서 8만 명을 채용하고, 68조원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는 19만8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 대규모 고용 창출과 집중 투자를 통해 한국을 중심으로 미래 사업 경쟁력을 꾸준히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0년 11월1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과 이동국이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2020년 11월1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과 이동국이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HDC그룹, 구단과 오너 동반 추락

두 현대가와 달리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HDC그룹(재계 29위)과 부산 아이파크 축구단은 나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축구부터 보자. 파란만장한 축구 역사를 가진 부산 아이파크. ‘대우 로얄즈’(1983~2000) 시절, 4번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K리그의 명문 구단이었다. 김주성, 안정환 등 당대 스타 플레이어로 인해 부산에서 야구(롯데 자이언츠)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IMF 사태와 대우그룹 해체로 축구단이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가면서 하락세를 보였다. 결국 2013년 K리그에 도입된 승강제가 도화선이 됐다. 구단이 2부리그로 강등된 것이다. 당시 구단주인 정 회장이 한국축구협회장도 맡고 있기에 더욱 뼈아픈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부산 아이파크는 여전히 1부리그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20년을 제외하고 8년째 제자리다.  

정 회장 역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계열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중대재해 사망사고 기업별 순위’에서 2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아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 회장의 경영 능력까지 구설에 올랐다. 상황은 이렇다. 2019년 12월 아시아나항공 부채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 회장은 금호건설로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키로 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아시아나항공에 2177억원, 금호건설에 323억원 등 모두 2500억원을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다음 해 9월11일, 금호건설 측은 “HDC현산이 계약 체결 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자 변심해 인수 약속을 파기했다”면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어 계약금 2500억원에 설정된 HDC현산의 ‘질권’(채권자가 채권의 담보로서 채무자 또는 제3자(물상보증인)로부터 받은 담보물권)을 해지하고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금호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HDC그룹은 항소했지만, 3월21일 열린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이행보증금에 대한 질권 설정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판단도 유지됐다. 결국 정 회장의 판단으로 인해 HDC현산은 계약금 2500억원을 날릴 수 있는 우를 범했다. 또한 이번 판결로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에 10억원, 금호건설에 5억원을 각각 지급해야 한다.

국내 축구계는 어떤가. 정몽규 회장을 향한 퇴진 목소리가 상당하다. 3월2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국제축구연맹(FIFA)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태국의 C조 3차전에서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응원단 ‘붉은악마’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사퇴를 외쳤다. 아시안컵 탈락,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충돌 논란, 어린 선수들과 스태프의 카드놀이 등으로 정 회장이 대중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전면 쇄신을 위해서라도 정 회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정 회장을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구단 성적은 잠시 뒤로하더라도, 건설 기반 성장과 M&A 등 계열 다각화를 통해 재계 순위 상승의 꿈을 키웠지만, 축구와 건설현장 사망사고, 경영 능력 부족 등으로 구설에 오른 정 회장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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