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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만 4만5000여 명이지만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
‘다단계 공화국’ 된 대한민국의 현주소
‘1년 내 300억원 수익’ 미끼로 투자 유인
뉴트로월드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뉴트로월드는 지난해 1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조아무개 뉴트로월드 회장이 개발했다는 육각수 제조기와 공기청정기, 에너지 패치 등으로 이뤄진 제품 세트를 130만원에 판매했다. 뉴트로월드는 이들 제품이 코로나19와 독감 바이러스, 슈퍼박테리아 등을 사멸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트로월드는 제품을 구매하면 뉴트로 회원이 될 수 있으며, 1년 내 300억원을 벌 수 있다고 소비자를 유인했다. 논리는 이렇다. 한 사람이 두 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그 두 명이 다시 신규 회원 2명씩을 모집하면 총 6명을 아래에 두게 된다. 이런 단계가 20번 진행되면 최초 회원 그룹 내에는 208만 명이 모이게 된다. 뉴트로월드가 거느린 회원 1인당 10달러의 기본급을 지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080만 달러(약 300억원)를 받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 회장은 뉴트로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의사이자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스스로를 종교 지도자로 포장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강연에서 “여러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라는 계시를 받아서 뉴트로월드를 설립하게 됐다”며 “수익도 100%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스로를 신격화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강연에서 “15세 때 모든 학문을 마스터했다” “인체의 수만 개 혈자리를 다 외우고 있다” “미국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 5만여 명을 치료했다” “내가 세상에서 치료하지 못하는 병은 없다” “남북통일을 이루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8월 피해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수사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회원들이 동요하자 ‘나를 건들면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전쟁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미국 CIA의 보호를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원하면 언제든지 물러나게 할 수 있다’ 등의 말로 주변을 안심시켰다고 대책위 측은 주장했다. 피해대책위원회는 조 회장의 주장 대부분이 허위였으며, 뉴트로월드 역시 공제조합 가입과 공정거래위원회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업체라고 지적했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는 다단계판매 방식으로 제품을 유통하려는 업체는 의무적으로 공제조합 가입과 공정위 등록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거액의 수익 제공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뉴트로월드는 회원들에게 현금이 아닌 전산상의 포인트로 기본급을 지급했다. 이후 회원들이 포인트를 현금으로 교환하려 했지만 뉴트로월드는 이를 거절했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서다.다단계 사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
뉴트로월드는 합리적인 금액을 받고 물건을 판매했을 뿐이라며 불법 다단계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대책위원회 측은 “뉴트로월드가 판매한 제품도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며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부터 효능을 검증받지 못한 원가 10만원 이하의 조악한 제품”이라고 주장했다. 피해대책위원회는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가 4만5000여 명에 달하고, 피해금액은 6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은 70·80대 노인들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다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다단계 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고질병이다. 특히 비트코인이 주목을 받은 이후에는 가상화폐를 매개로 한 다단계 사기가 기승을 부렸다. 실제 10월17일에는 자체 개발한 코인에 투자하면 원금의 132% 고정 수익을 지급하겠다며 85억원을 빼돌린 일당이 검거돼 검찰에 송치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달 24일에는 500만원 이상 투자하면 하루 2.5%를 배당해 준다며 투자자들로부터 13억원을 뜯어낸 ‘아도페이’ 개발자가 구속 기소됐고, 지난 9월에는 자체 개발한 가상화폐가 거래소에 상장되면 300% 이상의 고수익을 제공한다며 1100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챈 일당이 검거됐다. 뉴트로월드처럼 건강 관련 제품이나 화장품 등 전통적인 매개를 활용한 불법 다단계도 여전히 성행 중이다. 10월26일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투자하면 원금의 최대 300%에 달하는 수익을 돌려주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해 4092억원을 갈취한 일당이 검찰에 송치됐다. 이처럼 매개는 다양하지만 수법은 매한가지다. 높은 수익률을 내걸고 접근해 주머니를 열게 하고, 다른 회원을 데려오면 보상을 약속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하며 투자자를 안심시킨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투자자의 돈으로 돌려막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단계 사기범들은 일정 시점이 되면 투자금을 챙겨 종적을 감춘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단계 사기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단계 사기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고는 경찰 등이 수사에 착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원도 다단계 사기가 의심되는 업체라 하더라도 피해자 없이는 쉽게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는다. 피해가 접수돼 수사가 시작되더라도 갈 길은 멀다. 피해자가 수만 명에 달하는 경우가 빈번한 데다, 수사 도중 피해자가 피의자로 바뀌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다단계 사기 사건 수사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다. 그렇다 보니 다단계 사기의 경우 대부분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수사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이미 투자금 대부분이 빼돌려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뉴트로월드피해대책위원회가 집회를 가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뉴트로월드가 미등록 다단계 업체라는 제보를 받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피해자들도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뉴트로월드는 뉴트로글로벌로 간판을 바꿔 달고 지금까지도 영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도 다단계 사기가 근절되지 않는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불법 다단계 사기 관련 1심 판결 58건 중 3분의 2가량은 벌금형과 집행유예 등 가벼운 처벌이 내려졌다. 징역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이 중 3분의 1은 1년 이하의 징역형에 그쳤다. 다단계 사기범들에게 이처럼 낮은 형량이 선고되는 대표적 이유는 피해자와의 합의다. 다단계 사기범들은 피해자들에게 원금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하며 합의를 종용한다.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제안을 수락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형사처벌에 대한 리스크보다 범죄행위로 인한 경제적 이득이 큰 셈이다.다단계 사기 피하는 방법은?
그렇다면 다단계 사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다단계판매를 통해 제품을 구매하거나 판매원으로 활동하려는 경우 사전에 등록된 다단계판매 업체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다단계판매업 등록 여부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직접판매공제조합,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제품을 구매할 때 구매계약서 등 증빙자료를 받아 구매처와 구매상품, 구매금액, 반품 기간 등을 확인하는 것도 불법 다단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방문판매법에서는 다단계판매 회사가 소비자나 판매원과 거래할 때 거래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어 증빙자료 확인을 통해 합법과 불법 업체를 가려낼 수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불법 피라미드 업체들의 경우 조악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다량으로 구매하도록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지를 묻지 않고 큰 금액의 구매를 권유한다면 불법 피라미드 업체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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