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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미투’ 폭로한 서지현 검사와 ‘시시한 페미니즘’의 필자 노혜경 시인

2018년 1월29일, 한 검사가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내게 성폭력을 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폭로했다. 이 폭로는 세간을 뒤흔들었다. 정치권과 문화계, 체육계, 학교 등의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며 ‘미투’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근무하던 검사 서지현의 폭로는 한국 여성의 인권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올해 1월23일, 안 전 국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자신의 비위를 덮으려 지위를 이용해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에게 부당한 인사로 불이익을 줬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폭로 당사자인 서 검사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여성계는 “피해자들이 힘겹게 견뎌온 시간을 외면하지 않는 사법부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환영했다.  안 전 국장이 구속된 지 한 달쯤 지난 2월20일, 서지현 검사가 시사저널 스튜디오에 앉았다. 폭로한 지 1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서 검사 맞은편에는 본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 ‘시시한 페미니즘’의 필자 노혜경 시인이 자리했다. 노 시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역임했다. 노 시인과 서 검사의 대화를 통해, ‘검찰권력’의 작동 방식과 여성 인권의 현주소에 대해 짚어봤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검사도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노혜경 시인(이하 노)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서 검사를 만나기 전에 궁금한 게 좀 있었어요. 과거에도 ‘미투’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사회적인 파장을 못 일으키고 사라지는가 했었는데, 서 검사가 용기 있게 등장해서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던 성폭력 사건들을 표면 위로 끌어올리셨어요. 보통 결심으로는 못 나섰을 것 같은데요.

서지현 검사(이하 서) 처음에는 어떻게든지 검찰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서 법무부 장관 면담을 신청해 진상을 밝혀 달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고요. 조직의 최고 수장인 법무부 장관에게 얘기를 했는데, 그럼에도 묵살하는 것을 보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검사가 된 이유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범죄 피해나 부정의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검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이상 검사로서 이대로는 일하지 못하겠다 생각했죠. 어떤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가게 됐습니다.

그래도 검사이기 때문에 얘기를 할 수 있었고, 검사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 예를 들어 호식이치킨 사건에서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이 났잖아요. 서 검사의 ‘테이프 끊기’가 아니었다면 그런 판결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제 사건 이후에 법무부에서 전수조사를 했더니 여검사의 70%가 성폭력·성희롱·성추행 등을 경험했다고 확인됐더라고요. 일반인들은 “여검사의 70%나 성폭력을 겪는단 말이냐”고 놀랐다는데, 저는 100%라고 생각해요.

저는 ‘성폭력 권하는 사회’라고 부르는데, 성폭력 권하는 사회에 짓눌려져 살고 있잖아요. 흔히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는다고 할 때, 검사나 변호사, 교수처럼 남성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에 여성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공인 것처럼 생각하죠. 그런데 여검사의 70%가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는 어떻게 보면 여성에 대한 진입장벽이 성폭력에 의해 생기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렇죠,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기가 더 힘든 현실이거든요. 그런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성폭력을 문제 삼으면, 쓸데없이 분란 일으키는 사람, 남자검사 발목 잡는 꽃뱀, 그런 소리를 듣게 돼요. 저도 ‘검찰의 미친X’ 소리 듣고 살아요(웃음).

오히려 가해자들이 여성 검사 발목 잡는 제비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피해자가 같이 일하지 못할 사람 취급 받아요. 검사 사회에서 그냥 살아남기도 힘든데, 성폭력까지 참아내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제가 폭로하고 나니까 검찰 내에서 회식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검사들이 회식만 안 해도 살겠다고, 일만 하니까 좀 살 만하다고도 해요. 

저는 거꾸로 “검사도 성추행을 하니?”라고 물어보고 싶어요.

70%의 여성 검사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많은 수의 검사들이 그래 왔단 의미죠. 그리고 내부에서 성추행·성희롱을 해도 대부분 문제 삼지 않았고 혹시 문제가 된 경우에는 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았어요. 정말 문제가 되면 조용히 사표를 받고 퇴직금을 주고 나가서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죠. 승승장구해 최고위직도 가고요.


“소문나면 징계, 안 나면 덮는 게 검찰의 논리”

안태근 전 검찰국장이 그렇네요.

안 전 국장이 나간 것은 2017년 5월경에 있었던 돈봉투 사건이었어요. 그 외에도 성추행·성희롱 문제로 나간 검사들이 많아요. 그중에 징계를 받은 사람도 있지만, 아무 문제 없이 나가서 변호사를 잘하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사실은 그렇게 만연할 수 있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처벌받거나 징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떠들썩한 문제가 생겨도 다 은폐했어요. 소문이 나면 징계를 하고 소문이 안 나면 덮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검사 정도 되는 여성이기 때문에 그래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적도 너무 크고 강해요. 우리나라 최고 권력기관이 남성 중심적으로 뭉쳐 있는 거잖아요. 싸우기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내부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고 있나요?

임은정 부장검사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검찰 내부에서 부조리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게시판에 써오셨어요. 그런 이유로 3년 동안 승진을 하지 못했어요, 부부장이 돼야 할 때 승진이 누락됐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임 부장의 게시판 글에 댓글을 단 검사들을 각 부의 부장이나 청장이 불러서 혼을 내고 지우라고 종용했어요. 박병규 검사는 임 부장의 글에 옹호하는 글을 쓴 뒤 검찰에서 전무후무하게 적격심사 탈락으로 쫓겨났어요. 다른 사람들은 임 부장의 고통을 봤기 때문에 저와의 접촉을 두려워해요. 저랑 통화하거나 만난 것을 알게 되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정말 극소수 외에는 연락을 하지 않고 있어요.

검찰은 ‘검사동일체’라고 부르더라고요. 위의 명령이 아래로 전달돼야 된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무엇을 위한 동일체인지 이해가 안 돼요.

권력자를 위한 동일체죠. 권력은 유한해도, 검찰은 무한하니까요. 권력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검찰 내의 권력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한번 귀족검사는 여전히 귀족검사예요. 검찰에서는 권력이 곧 정의라고 보여져요. 성폭력 범죄사실 하나조차 이렇게 은폐하는 조직이 다른 어떤 것을 은폐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는 건강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려는 검사가 많겠지만 이런 점들이 불신을 갖게 만드는 요소예요. 이런 것을 척결하는 일도 미투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미투가 성공하기 위해선 검찰이 개혁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성폭력 문화가 만연해 있고 그런데도 이런 것을 은폐하기 급급한 검찰이 남아 있는 한 미투가 성공할 수 없어요.


 

연합뉴스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이 1월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사·배당으로 상명하복 강요하는 시스템”

한편으론 적이 강할수록 싸움판이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고 끝내 이긴다고 봐요. 본인이 포기하지만 않으면요. 성폭력 사건뿐 아니라 권력과의 싸움에서는 언제나 피해자가 먼저 포기를 하고, 포기하게 만들어요. 고립시키죠. 예를 들어 장자연만 하더라도 죽었기 때문에 자기가 들어야 했던 수많은 비난을 덜 들은 것이죠. 살아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거든요.

제가 이 문제로 고통을 겪을 때 죽어서 결백을 입증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해자는 너무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고, 나는 어떤 힘도 없었는데 그 앞에서 진실을 말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 명백했거든요. 그런데 장자연 사건을 보면서 오히려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검사 입장에서 죽어버리면 증거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진실을 밝히려면 죽지 않고 살아서 끝까지 증언해야겠다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검사를 원하는 로스쿨 학생들이 많잖아요. 예컨대, 최초의 여성 검찰총장을 만들려면 여성 검사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현재 로스쿨 여학생들이 검사 하는 걸 말리고 싶어요. 현재 시스템과 문화 속에서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개인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기에는 시스템 자체가 정말 상명하복 할 수밖에 없게 돼 있어요. 이번 사법농단 사건 때 법원에서 문제가 된 것이 사건 배당을 조작했다는 점인데, 법원은 1970년대부터 무작위로 배당했고, 2003년쯤부터 컴퓨터 무작위 배당으로 바뀌었어요.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손으로 배당해요. 한 번도 무작위 배당을 한 적이 없어요. 구속사건은 차장 이상이 주고, 불구속사건은 부장이 줘요. 어렵고 힘든 사건, 소위 말하는 ‘깡치사건’은 말 안 듣는 놈 주고, 실적 잘 나올 사건 같은 것은 말 잘 듣는 놈 주는 거죠. 정치적인 사건, 답이 정해진 사건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사람을 줄 수 있어요. 물론 공정하게 배당한다고 기대해야 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은 거죠. 배당 시스템부터 빨리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요.

검찰의 인사원칙에 대한 문제제기를 처음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이야기였어요. 

법원이 이번에 말 안 듣는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줘서 문제가 됐다는데, 사실 법원은 99%가 예측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그런데 검찰은 99%가 예측 불가능해요. 검찰이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데, 검찰의 역사 중에 인사 원칙이 규정된 것이 없어요. 지금까지 인사위원회라는 게 있어서 거기서 의결된 대로 인사를 했는데, 인사위원회에 명문화된 인사원칙이 없어요. 검찰 역사상 인사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이 제가 최초였던 거예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으니까 60년대, 70년대 인사원칙을 지금까지 가져온 거죠. 조사단에 조사를 받으러 갔더니 서 검사가 검찰 역사상 최초로 인사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얘기를 듣다 보면 소위 성폭력을 폭로하고 고발한다는 일이 시스템 전체를 고발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어요.

맞아요. 저도 인사 요구를 했는데 안 받아줘서 폭로했다고 검찰에서 소문을 냈더라고요. 근데 저는 인사 요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검찰에서는 제가 법무부 장관 면담을 할 때 인사 요구를 했다고 발표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녹취를 했어요. 녹취록을 보면 인사 요구는 한마디도 안 하고 계속 사실 확인을 해 달라는 말만 있어요. 그 사람들은 녹취록을 모르고 허위 발표를 한 거예요. 인사 이야기를 하는 순간, 저는 피해를 미끼로 인사 요구를 했다고 몰릴 게 명백했어요. 제가 얘기한 건 통영에서 실근무를 1년6개월 동안 했는데 이 기간이 지나면 인사하는 게 원칙 아니냐는 것이었어요. 어디로 보내 달란 얘기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두고 엄청난 인사 제안을 한 것처럼 됐어요. 당시 법무부에선 1년9개월이 실근무 기간인데 3개월이 부족해서 인사를 못 내준다고 했죠. 사건 기록을 보니 저는 거기서 경력 검사로 근무했고, 인사위원회에서 경력 검사 실근무 기간을 1년6개월이라고 의결한 것이 있었어요. 제 주장이 맞는데, 원칙이 없으니 마음대로 한 거죠. 검사들은 조금만 부장한테 찍히고, 조금만 명령을 안 들어도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서 검사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고발하는 모든 여성들이 시스템을 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싸움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1990년대 후반에도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그때 이 여성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식이 시 청탁 배제, 문학상 배제, 잡지 배제 등이었어요. 성폭력을 당했다고 얘기하는 것만으로, 보석 같은 여성을 완전히 매장시켜버리는 일들을 너무 많이 보며 이해가 안 갔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깨달았던 건 우리 사회의 기본 구성 원리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 위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여성을 유린하고 모욕하는 것을 남성들이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시스템을 견고하게 지탱하죠. 남성들의 상명하복 시스템이라든가 견고하게 똘똘 뭉치는 시스템이 잘 안 무너진다는 걸 깨달아요. 폭로를 넘어서 이것을 깰 수 있는 작전 같은 것을 어떻게 짜면 좋을까요.


“여성 위에 군림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맞아요. 제가 프랑스 주간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제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라더라고요. 프랑스도 이런저런 문제점이 있지만, 이런 문제가 드러났을 때 그것을 해결하고 피해자를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더군요. 온전히 한 명의 희생에 맡기는 것이 이해가 안 간대요.

  우리는 아직도 피해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죠. 그렇게 되는 이유가 피해자를 한 명씩 도려내 개별화시켜 저 여자의 문제라고 하죠. 그리고 가해자도 개체화시켜서 가해자 한 사람의 문제라고 해 버려요. 한 명의 일탈로. 그러면 구조는 아무 문제 없거든요. 어떻게 연대를 만들지가 고민거리예요. 국가기구에서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사회의 입방아에 올라 고통당하지 않고 가해 자체가 줄어드는 그런 사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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