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조작에 관여한 선수 실명 공개 “혐의 입증할 물증은 없는 상황”
지난 12월10일, 2016년 승부 조작 사건으로 KBO(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과 문우람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문우람은 승부 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폭풍은 거세게 일었다. 왜냐하면, 기자회견 도중 이태양은 다수의 선수가 승부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실명을 밝혔기 때문이다.
우선 문우람이 승부 조작에 가담하지 않은 것은 사실일까. 상무 소속이던 문우람은 지난해 4월 열린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 제대 후 열린 2심에서는 항소가 기각된 데 이어 대법도 심리불속행으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다만 문우람 측은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영구실격 처분을 내린 KBO 역시 재심 청구 결과를 보고 다시 심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문우람 건은 기자회견을 통해 감정에 호소할 문제가 아닌 법리 다툼을 통해 그 사실 여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승부 조작 실명 공개, 찻잔 속 태풍에 그치나
문제는 승부 조작에 관여했다고 실명이 공개된 선수들이다. 이들은 모두 구단 등을 통해 사실무근이며 필요하다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과 관련해 여러 관계자에게 알아본 결과, “이태양 본인이 브로커 조모씨에게 들은 것 외에는 혐의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즉, 이들 선수에 대해 수사하더라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자회견은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론은 없는 ‘찻잔 속의 폭풍’에 그칠 것으로 본다. 다만 어느 야구 관계자는 문우람의 발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문우람은 자신의 승부 조작 관여를 부정하며 브로커 조모씨를 알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4년 겨울 서울 강남의 클럽에서 조씨를 알게 됐다. 2015년 5월, 내가 팀 선배에게 야구 배트로 폭행을 당해 힘들 때 쇼핑하면 기분이 풀릴 거라면서 조씨가 선물한 운동화, 청바지, 시계가 결과적으로 나를 승부 조작범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승부 조작의 대가가 됐다.”
이 말을 일반 팬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문우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의도 없이 고가의 선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실제로 야구계 주변에는 이런 이가 있다. 연예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스폰서’가 그들이다. 그들은 대개 ‘지인’으로 불리며 선수와 관련한 사건·사고에 등장하기도 한다.
과거, 한 야구인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온갖 선물은 물론이고, 술과 밥을 사주고 돈 등도 주는 스폰서의 존재”를 밝힌 적도 있다. 그들은 대개 처음에는 팬으로 관계를 맺어, 그 관계가 거듭됨에 따라 지인이나 측근으로 발전한다. 물론, 그들이 순수하게 팬으로 선수를 후원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대개는 사업으로 이어진다. 문우람의 경우처럼 에이전트로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하거나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솔깃한 투자 제안을 하거나 한다.
실제로 과거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점은 누구와 협상해야 하는지 모호한 점이었다. 어느 일본 구단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여덟아홉 명이 선수의 에이전트로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느 에이전트라고 주장하는 이와 협상을 펼친다고 해도, 계약과 관련한 조건이 수시로 바뀌기도 했다. 선수와 정식 계약을 맺은 에이전트가 아니라 브로커와 같은 이라서 계약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린 선수가 은퇴 후에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소문도 종종 들린다. 그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됐다는 것이다. 스폰서로는 조직폭력배와 관련된 이도 있다. 처음에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듯이 돈을 물 쓰듯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승부 조작을 요구한다. 때로는 지금까지 쓴 돈이 얼마라며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야구계에 뿌리내린 스폰서 문화
그러면 어째서 선수들은 스폰서와 쉽게 관계를 맺는 것일까. 정말로 아무런 대가 없이 자기를 위해 돈을 쓴다고 믿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 어느 베테랑 선수는 “야구를 시작한 후 받기만 하는 선수 문화의 폐해”라고 지적한다. “야구를 시작한 후, 누군가에게 주거나 주고받은 적이 거의 없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으로부터 받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반면, 주는 데는 인색하다. 이것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면 더하다. 경기하러 야구장에 들어가려고 하면 팬이 선물을 준다. 누구를 만나도 팬이라며 밥과 술을 사준다. 때로는 고가의 선물과 돈을 주는 이도 있다. 그렇게 받기만 한다. 반면, 자기 돈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이 적게는 팬서비스 부족으로, 크게는 승부 조작이나 음주운전 등과 같은 사건·사고로 이어진다.”
어릴 때부터 야구선수로 첫발을 내디디면 오로지 야구만 하면 된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두기도 어렵다. 한눈판다고 질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성인인 야구선수 가운데는 은행 업무도 본 적이 없는 이도 있을 정도다. 그런 잡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지인’. 게다가, 술과 밥에 온갖 선물까지 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인’에게 혹할 수밖에 없다.
최근, FA로 100억원이 넘는 계약을 체결하는 선수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몸값과 함께 그에 걸맞은 도덕성과 책임감도 따르고 있을까. 적어도 세상사는 주고받는 것(기브 앤드 테이크)이 기본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KBO가 주창하는 클린베이스볼도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KBO리그는 올해부터 공인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했다. 에이전트의 역할은 단순히 연봉 계약에 머무르지 않는다. 선수의 사생활 관리도 에이전트의 몫이다. 선수가 사생활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지금까지 그 비난은 오로지 구단의 몫이었다. 과거 어느 구단 고위 관계자는 “선수 사생활만 잘 관리해 줘도, 에이전트 제도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밝힌 것처럼 그런 역할을 에이전트가 해 줄지 지켜볼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