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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괴물 타자 ‘신인상’ 강백호 “한국에서 모든 걸 다 이룬 후 다양한 리그를 접해 보고 싶다”

겨울만 되면 봇물 터지듯 열리는 프로야구 시상식들로 정신이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선수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 성적이 좋은 선수들이 수상자들로 선택된다. 시상식의 취지에 따라 수상자가 조금씩 변화를 이루지만 올 시즌 이 선수는 야구 관련 모든 시상식에 다 참석했다. 신인상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고졸 신인으로 연일 홈런포를 생산하며 KBO리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KT 강백호. 그는 올 시즌 최고의 신인에 걸맞은 화려한 성적을 올렸다. 138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9푼, 29홈런, 84타점, 108득점을 기록한 것은 물론, 1994년 LG 김재현이 작성한 고졸 신인 최다 홈런 21개를 훌쩍 넘어 역대 고졸 신인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롭게 썼다. 호쾌한 스윙으로 고졸 신인 첫 3연타석 홈런 등 강렬한 데뷔 첫해를 장식한 그에게 KBO 신인상이 주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 


2018년 신인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KT 유니폼을 입은 강백호는 지난 3월24일 광주 KIA 개막전에서 고졸 신인 최초로 데뷔 첫 타석 홈런이자 2018 시즌 KBO리그 첫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괴물 신인’ ‘슈퍼 루키’ ‘한국판 오타니’ 강백호를 만났다.

 

ⓒ kt wiz

 

시상식이 정말 많았어요. 모든 시상식에 참석했을 것 같은데요.

“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수차례 수상자로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사실 그 자리는 아무나 올라갈 수 없는 자리잖아요.

“그래서인지 받을 때마다 떨리더라고요. 받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고요. 부모님과 함께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저를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신 부모님 앞에서 상을 받는 것도 꽤 의미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양복이 계속 바뀌던데 모두 구입한 건가요.

“아니요. 다 대여했어요(웃음). 덕분에 평소 입지 못했던 턱시도도 입어봤죠. 좋은 자리에 좋은 옷을 입고 나갈 수 있어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모든 상이 다 의미가 있겠지만 KBO 시상식에서 KBO리그 취재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 555점 만점에 514점의 압도적인 지지로 신인왕에 오른 부분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워낙 잘했던 선수들이 많아서 받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제 이름이 호명될 당시 상당히 떨렸던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경쟁심을 느끼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신인왕은 신인들끼리 붙는 거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경쟁한 내 친구들 중 양창섭, 한동희, (김)혜성이 형이 존재했기 때문에 제 수상이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신인왕이 너무 독주체제면 재미없었을 것 같아요. 볼거리 형성하는 부분도 그렇고요.”

열아홉 살 선수와의 인터뷰인데 대답이 정말 어른스럽다. 히어로즈의 김혜성은 프로 2년 차 시즌이었지만 지난해 16경기에 나서 16타석밖에 소화하지 않아 뒤늦게 신인왕 후보 대열에 오른 선수. 올 시즌 처음으로 풀타임 출전, 136경기에서 타율 2할7푼, 116안타, 5홈런, 79득점, 45타점, 31도루를 기록했다. 이정후와 함께 넥센의 미래로 평가받는 자원. 삼성 라이온즈의 양창섭은 고졸 신인임에도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아 19경기에 출전해 7승6패, 평균자책점 5.05를 거뒀다. 롯데 자이언츠의 한동희도 2018 신인 1차 지명을 받고 롯데에 입단하면서 시즌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군에서 87경기에 출전, 타율 0.232, 49안타, 4홈런, 25타점에 그쳤다. 성적만 놓고 봤을 때 강백호가 신인왕 후보 선수들보다 단연 앞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상식에 참석하는 선수들은 모두 좋은 성적을 자랑하는 선수들입니다. 그런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앞으로 더 잘해서 선배님들처럼 다양한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8년은 여러 가지로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남게 됐습니다. 이 기운을, 이 좋은 느낌을 내년에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더 노력해야 되고요. 내년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상을 받고 인터뷰했으면 좋겠어요.”

강백호 선수는 서울고 시절 투수와 4번 타자를 병행하면서 ‘한국의 오타니 쇼헤이’로 불렸습니다. 프로 입단 후에는 외야수로 전향해 마운드에 설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 올스타전에 이어 최근 열린 ‘제7회 2018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6회 구원투수로 깜짝 등장했어요. 투수로 나서면 기분이 새롭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1년 전까지만 해도 마운드에 올랐으니까요. 이번에는 자선대회라 재미있게 던지려고 했어요. 그래서 부상 방지를 위해 틈틈이 캐치볼을 하면서 몸을 풀었거든요. 평소 경기할 때처럼 했다면 문제없었을 텐데, 타석에 투수 선배님들이 계시니까 공이 잘 안 가더라고요. 너무 컨트롤이 안 돼서 당황했을 정도예요. 덕분에 재미는 있었습니다.”

아, 원래 타자는 공을 던지고, 투수는 타석에 들어선 거군요.

“네. 제가 공을 살살 못 던지거든요. 그래도 투수 선배님들이라 구속을 줄여서 던졌는데 그게 제구 난조로 이어지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세게 던지기 시작하니까 이번에는 타자들이 다 타석에서 떨어져 있는 거예요. 거기에 또 제가 말리게 되고요.”

프로야구 최고 스타들이 총출동했던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는 이종범의 ‘종범신팀’과 양준혁의 ‘양신팀’으로 나뉘어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이 무대에서 강백호는 147km의 강속구를 뿌렸다. 강백호는 서울고 시절 150km 이상의 구속을 찍었기 때문에 투수를 내려놓고 타자에만 전념하는 상황이 다소 아쉬울 수 있을 듯. 그러나 그는 자신한테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대답한다.


비시즌만 되면 선배들이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을 많이 합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번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는 모든 야구인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이뤄지는 이벤트잖아요. 프로 선수가 되면서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참석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 하다 보면 언젠가 제게도 더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게 저한테 돌아올 거라고 믿거든요. 물론 그런 걸 생각하면서 봉사활동하는 건 아니지만요. 단, 비시즌 때 제대로 몸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했다가는 부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는 편입니다. 팬들이 보기 원하고 재미있어 한다면 이벤트 대회에서 투수로 서는 건 문제없다고 봐요.”

사실 프로 데뷔 전부터 워낙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였어요. 그런 선수가 데뷔 첫 타석부터 홈런을 터트렸으니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상대 투수가 2017 시즌 20승을 거둔 KIA의 에이스 헥터 노에시였잖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안 떨렸다고 생각했는데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긴장이 심했던 것 같고요. 무슨 생각으로 쳤는지도 모르겠어요. 운이 좋았다고 봐요. 그 홈런은 순전히 운이었어요. 얼떨결에 홈런이 나온 것이고요. 그다음부터의 홈런은 제 실력이었습니다.” 

 

12월4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8 조야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KT 위즈의 강백호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3월 7경기에서 타율 0.370, 4홈런, 10타점으로 맹활약을 펼치다 4월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중순 이후부터는 타율 3할대가 무너졌습니다. 이후 다시 일어섰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7월 한 달간 타율이 0.241에 불과할 정도로 또 힘든 모습을 보였고요. 지금은 그 시간들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요.

“정말 힘들었습니다(웃음). 저로선 프로 입단 후 모든 일들이 처음 겪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때마다 옆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오히려 시즌 초에 그런 힘든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후반기 들어 정신 차리고 잘했던 것 같아요. 슬럼프는 저만 겪는 게 아니잖아요. 한 시즌을 치르는 모든 선수들이 슬럼프라는 숙제와 직면하는데, 때로는 그걸 피해 가려고만 하지 말고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신인이라 야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고, 그렇다면 하나둘씩 고치고 보완해 나가는 재미도 맛보고 싶어요. 선수들한테는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게 실패 아닐까요? 실패의 쓰라림을 느껴야 성공에 대한 갈증도 생길 테니까요. 그래서 슬럼프를 겪은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만 나오네요. 워낙 진중한 사고를 갖고 있는 듯해서요. 그런 슬럼프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궁금했었거든요.

“저도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어요. 경기 끝나고 남아서 특타도 해 보고 제일 먼저 출근해 연습량도 늘려보고…. 어떻게 해도 잘 안될 때는 심적으로 더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야구는 운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안 좋을 때는 잘 때린 것도 잡히고, 잘나갈 때는 빗맞은 타구도 텍사스안타가 되는 걸 보면서 야구는 무조건 실력만이 최고가 아니라 어느 정도 타고난 운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강백호 선수한테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누군가요.

“JP요.”

JP가 누구죠.

“KT의 이지풍 트레이너 코치님입니다. 제가 먼저 JP라고 불렀어요. ‘아메리칸 스타일’로(웃음). JP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프로 와서 만난 모든 코치님들한테 고마움을 갖고 있지만 특히 제 멘털과 몸을 잡아주신 JP한테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제가 신인왕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JP는 물론 코칭스태프, 부모님, 선배님들의 배려와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JP가 비시즌 동안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도 전해 주신 식단대로 식이요법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꼭 좀 적어주세요.”

이지풍 코치는 훈련의 양보다 질, 체격이나 체중보다 전체적인 근육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단의 근육량 증가를 위해 운동 수행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벌크 업(bulk up) 열풍’을 몰고 왔다. 히어로즈 시절 박병호, 강정호, 유한준 등 근육질의 거포들을 탄생시킨 주역. 그런 그가 KT로 이직했고, 강백호는 프로팀에서 JP를 만나게 된 것이다.

 

9월2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초에 강백호가 2루타를 때리고 있다. ⓒ 뉴스1

 

프로 시작하기 전과 프로에서 1년을 보낸 지금, 프로야구를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나요.

“비슷한 것 같아요. 한 시즌 동안 144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적인 부담이 컸지만 그 외의 부분들은 다 재미있었어요. 체력 또한 처음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한 터라 내년부터는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괴물 신인’으로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까요.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죠. 그 또한 제가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어느 정도의 부담을 갖고 임했는지 잘 모를 겁니다. 그걸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요. 내색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으니까요. 제 자신과 싸워서 나름 잘해 왔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닌가요(웃음)?”

자신을 노력형과 천재형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걸 제 입으로 말하기가 좀 그러네요. 반반이라고 할게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운동신경을 갖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스타일이니까요.”

경기를 거듭할수록 상대 배터리들이 강백호 선수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겁니다. 혹시 타석에서 그런 부분을 느꼈나요.

“상대가 제 약점을 안다고 해도 그 공만 계속 던질 수는 없잖아요.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여러 가지 기록들 중 ‘이건 정말 잘했다’ 싶은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그래도 홈런 기록 깬 건 잘한 것 같아요. 김재현 선배님의 고졸 신인 최다 홈런 기록요.”

29개 홈런에서 하나만 더 쳤다면 박재홍이 기록한 신인 최다 홈런 타이를 이뤘을 텐데요.

“잠깐만 아쉬웠어요. 그런데 자꾸 그 ‘30’이란 홈런 숫자에 신경 쓰다 보니까 타석에 들어서면 몸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하나만 더 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려고 했거든요. 의식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내년 시즌 목표는요.

“잘해야죠.”

어떻게요.

“슬럼프가 오더라도 그 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타율도 신경 쓰고 체력 관리도 잘해야 되겠고요.”

강백호한테 야구선수로서의 꿈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그는 “한국에서 모든 걸 다 이룬 후 다양한 리그를 접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단서가 붙어 있었다.


“먼저 한국에서 인정받아야죠. 한국에서 인정받기 전까지는 다른 생각 안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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