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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生生토크] FC안양 감독에서 물러난 ‘적토마’ 고정운 “선수들만 보고 가자 생각하는 순간 마음 편해져”

한국 스포츠에서 ‘적토마’로 불린 이는 두 명이다. LG 트윈스의 이병규와 축구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고정운(53)이다. 특히 고정운은 저돌적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진짜 적토마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이름과 함께 공식 별명이 됐다. 오랜 축구 팬들에게 ‘적토마’ 고정운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K리그의 일화 천마, J리그의 세레소 오사카, 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했고, 대표팀에서도 1994년 미국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은퇴 후 전남 드래곤즈와 FC서울 코치, 풍생고등학교와 FC안양 감독 등으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고정운과의 인터뷰는 그가 열정적으로 팀을 이끌었지만 1년 만에 그만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FC안양과 관련된 내용으로 먼저 시작했다. 

(K리그는 K리그1과 K리그2로 나뉜다. 쉽게 표현하면 1부와 2부 리그인 셈이고 1부 12팀, 2부 10팀으로 총 22개 팀이 참가하고 있다. 승강제를 통해 1부 팀이 2부로 떨어지기도, 2부 팀이 1부로 승격되기도 한다.)

ⓒ 이영미 제공
ⓒ 이영미 제공

오랜 시간 동안 프로팀 감독을 맡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1년 만에 FC안양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건가.

“정말 지도자 생활에 목말라 했었다. SPOTV에서 해설을 하면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꼭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선수들과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안양시에서 창단한 구단이다 보니 체육회의 입김이 만만치 않더라. 축구에 정치가 개입되고, 축구팀이 중심이 아닌 체육회가 중심이 되다 보니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가 축구를 아주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축구인의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정치인들의 눈에는 축구가 정치의 일부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듯했다.”

원래 계약기간이 남아 있지 않았나.

“1+1년 계약이고, 재계약은 구단 옵션이라 성적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한다면 당연히 받아들이는 게 맞다. 그런데 구단의 해임 통보를 구두가 아닌 전화로 알게 됐다. 한 시즌 동안 동고동락했던 감독한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는 못 해 줄망정 전화로 해임 통보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축구인들이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나와 같은 대우를 받는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2018 시즌 FC안양에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그동안 호원대 체육학과 교수로, 방송 해설로 얻은 지식과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해설을 하면서 계속 축구를 놓치지 않고 봤던 부분이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선수생활을 하고 코치생활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았지만 이론적인 부분에서 뒤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걸 해설하면서 보완해 갈 수 있었다.”

FC안양이 여느 프로팀과는 차이가 있다. FC서울, 전북 현대처럼 명문 클럽이나 K리그1 팀이 아니다 보니 선수단을 이끄는 부분에서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김호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도자는 만들어진 팀보다 자신이 만들 수 있는 팀을 먼저 경험해 봐야 한다’고. 내가 존경하는 건국대 정종덕 감독님은 ‘많이 져봐야 이기는 걸 안다’고 강조하셨다. FC안양이 어려운 환경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를 갖고 팀을 맡았다.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고 노력하다 보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있었다.”

안양시는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임 시장인 자유한국당 이필운 후보를 따돌리고 더불어민주당의 최대호 후보가 시장직 탈환에 성공한 바 있다. 이필운 전 시장과 최대호 시장은 안양시장직을 놓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네 차례나 맞대결을 펼쳤고, 이필운-최대호-이필운-최대호 식으로 안양시장직을 놓고 설욕전과 방어전을 주고받았다. 최대호 시장이 안양시장으로 재등극하면서 FC안양도 이런저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정운은 시·도민 구단의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직접 경험한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고 토로한다. 

선수들 훈련과 경기에 집중해도 여유가 없었을 텐데 구단 환경에 더 신경 쓰는 기형적인 운영이었다고 들었다. 

“프로는 투자다. 선 투자, 후 결과의 형태로 진행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감독이 책임지고 그만두면 된다. 그런데 FC안양은 연봉 5000만원 이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숙소도 마땅치 않아 그 돈에서 방을 얻고 밥 사먹고 용돈을 쓴다. 연봉을 받으면 통장에 쌓이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지출되는 형태라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훈련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일 때도 있는데 속으로는 굉장히 미안했다. 운동선수한테는 휴식과 몸에 좋은 음식 섭취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선수들이 쉴 만한 숙소도 식당도 없었다. 어떤 선수는 3시간 전철 타고 출퇴근한다. 선수들 스스로 축구에 욕심을 내지 않으면 성적 내기가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즌 개막 후 3무8패를 기록하다 2018년 5월20일 광주FC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승을 거뒀다. 당시 지도자로서의 역량에 의구심이 들기도 했던 부분이다.

“감독 능력이 부족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광주FC전을 앞두고 구단 내부적으로 공개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이사회에서 어려운 제안을 했고 받아들였다. 구단과 아옹다옹하지 말고 선수들만 보고 가자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더라. 신기한 건 선수들이 더 똘똘 뭉쳤다는 사실이다.”

광주FC전 이후 2승2무를 달리며 반등을 이뤄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10개 팀 중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준플레이오프까지 갈 수 있는 5위 입성 확률이 있었지만 마지막 3경기를 2무1패로 마무리했던 게 아쉬웠을 것 같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11명이 모두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내가 가장 강조했던 게 수비 조직 훈련이었다. 그 훈련의 결과를 선수들이 느끼면서 변화를 이뤄 나갔다. 그걸 지켜보는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장 잊지 못할 경기가 언제였나.

“9월1일 아산 무궁화를 상대로 홈에서 경기를 펼쳤는데 무려 3대0 대승을 거뒀다. 교체해서 들어간 선수들이 득점을 올리며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을 때 정말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아, 이래서 감독을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FC안양 선수들과 울고 웃었던 시간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산 무궁화는 그해 우승을 이뤘다. 축구단 존속이라는 생존 문제가 불거지면서 우승이 ‘슬픈 우승’이 되고 말았지만 FC안양은 우승팀을 상대로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셈이다. FC안양한테 0대3 패배를 당했던 아산의 박동혁 감독은 그 경기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소주 두 병을 사 집에 가서 30분 만에 비우고 그대로 잠들었다고 회상했었다. 그는 “감독 하면서 가장 힘든 패배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1996년 5월24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 유치 기원 한국과 AC밀란의 친선경기. 추가골을 터뜨린 고정운이 두손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6년 5월24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 유치 기원 한국과 AC밀란의 친선경기. 추가골을 터뜨린 고정운이 두손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화제를 바꿔보겠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2019 AFC 아시안컵 도전이 8강에서 멈췄다. 우승을 목표로 했던 대표팀이 4강 진출에 실패하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주전들 중 부상 선수가 많았다. 기성용·이재성·나상호·구자철·황희찬 등이 부상으로 낙마하거나 부상 상태에서 경기에 투입됐다. 파울루 벤투 감독도 아시안컵을 준비하면서 어떤 선수들로 가야겠다는 구상이 있었을 텐데 부상자가 늘어나는 바람에 감독의 구상대로 전술을 펼칠 수 없었다. 또 한 가지는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높은 점유율과 빌드업의 모순이다. 벤투 감독은 출범 당시부터 볼 소유를 통해 경기 주도권을 쥐고, 수비 라인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으로 공격 찬스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강조했다. 지난해 10월에 펼쳐졌던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 칠레에 1승1무를 거두며 벤투 감독의 철학이 성공적으로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시안컵에서는 벤투 감독의 철학이 실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가전에서는 점유율, 지배축구에 의한 양쪽 풀백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이 돋보였지만 아시안컵에서는 평가전과 달리 시종 단조로운 전술로 약팀한테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답답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벤투 감독이 원하는 점유율 축구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수비다. 점유율 축구는 빌드업을 거쳐 올라가기 때문에 수비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은 빌드업을 하다 수비에서 실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벤투 감독의 철학대로 경기를 펼치려면 빠른 시간 안에 빌드업으로 치고 올라가 문전 앞에서 킬 패스를 하고 슈팅에 이를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유효슈팅이 많아야 골 성공률도 높은 법인데 빌드업이 효율적인 공격 루트로 작용하지 않았다.”

손흥민이 소속팀인 토트넘 홋스퍼에서의 플레이와는 달리 대표팀에서는 제 기량을 보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손흥민 활용법의 차이라고 본다. 벤투 감독이 손흥민한테 원하는 건 플레이 메이커였다. 볼 배급은 물론 공격진과의 연계 플레이가 손흥민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템포가 느린 아시안컵에서는 라인을 내리고 밀집수비를 하는 팀들을 상대로 손흥민의 돌파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기성용과 이재성이 있었다면 손흥민의 부담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컵에서 손흥민을 뒷받침해 줄 선수로는 황희찬이 유일했다. 토트넘은 전반적으로 패스 강도가 세고 빠른 움직임으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위험 지역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간다. 손흥민은 볼을 끌지 않아도 약속된 플레이를 빠르게 전개하면서 슈팅까지 이를 수 있게 된다. 벤투호에서는 손흥민의 장점을 살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경기 진행 속도가 느리다. 선수 입장에서는 체력적인 부담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소속팀으로 복귀한 손흥민은 2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손세이널’의 진가를 증명했다. 올 시즌 14골이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0호 골을 기록하자 영국 공영방송 BBC는 EPL 25라운드 베스트11에 손흥민을 선정하며 “그가 토트넘의 라인업에 복귀한 것은 페라리에 연료를 부은 것과 같다”고 극찬했다. 

아시안컵 이후 기성용(뉴캐슬 유나이티드), 구자철(아우스부르크)이 축구대표팀 동반 은퇴를 선언했다. 그들이 대표팀을 위해 헌신한 부분은 높이 평가하지만 일부에서는 서른 살밖에 안 된 젊은 선수들이 너무 일찍 대표팀 은퇴를 결정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만이 느끼는 고충일 것이다. 대표팀 소집 때마다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 하고, 나이가 들수록 그 여정이 체력적, 심리적으로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축구협회도 선수들이 대표팀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제공해야 한다. 손흥민과 같은 경우 A매치가 있다고 해서 매번 부를 게 아니라 대표팀 소집에 강약 조절을 해 줄 필요성이 있다. 젊은 세대들한테 국가관, 사명감만 강조하는 ‘꼰대’ 마인드도 버려야 한다. 기성용·구자철의 대표팀 은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심사숙고해서 발표한 만큼 남은 시간들은 소속팀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전의 대표팀 선수들은 어떠했나. 대표팀 은퇴는 부상당하지 않고선 떠올리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

“내 세대 때는 1년이라도 더 태극마크 달고 뛰고 싶어서 오히려 부상을 감추고 출전했을 정도였다. 황선홍도 무릎 십자인대 수술만 세 차례나 받았고, 월드컵 때는 대포주사를 맞는 등 만신창이의 몸이었어도 대표팀 은퇴를 떠올리지 못했다. 당시의 선수들한테 태극마크는 가문의 영광 그 이상이었다.” 

“맞춤 전략 통해 선수 잠재력 이끌어내야” 

고정운이 바라는 대표팀 감독

고정운도 대표팀 생활을 하며 여러 지도자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현재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을 향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대표팀 지도자는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상대팀이 정해질 때마다 선수를 통해 변화를 줄 건지, 전술적인 포메이션을 통해 변화를 줄 건지를 명확히 해 둬야 한다. 그동안 수차례 거론된 내용이지만 어느 감독이 오더라도 한국 축구에 맞는 전술이 필요하다. 좋은 지도자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좇는 것도 필요하고,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빨리 파악해 우리 팀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베트남 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님을 보면 정답이 나와 있다고 본다. 박 감독님은 빠른 시일 내에 베트남 선수들 특성을 파악한 다음 맞춤 전략을 세워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그 부분이 선수들 발을 직접 씻겨주고, 잦은 스킨십을 통해 굳게 닫혔던 선수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지도자가 갖고 있는 철학을 앞세우기 전에 대표팀에 맞는 맞춤 전략을 통해 선수들의 잠재된 능력을 이끌어내는 감독이 진정한 리더다. 대표팀 선수 출신으로, 또 한 축구 팬으로, 한국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을 통해 얻은 숙제를 잘 풀어가길 바란다. 그 숙제가 잘돼야 다음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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