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력 갖춘 20~40대 1인 가구, 콘솔게임기로 ‘소확행’ 쟁취
지난 1월2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국제전자센터. 평일 낮 시간대인 탓에 다른 층은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유독 9층만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콘솔게임기와 게임 타이틀을 구매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었다. 콘솔은 ‘거치형 게임기’를 말한다. 플레이스테이션4(PS4), 닌텐도 스위치, 엑스박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 국제전자센터는 콘솔게이머 사이에서 ‘성지(聖地)’로 통한다. 9층 전체가 게임매장이고, 인근에 고속터미널과 남부터미널도 있어 전국의 게이머들이 모여든다. 각 게임매장에는 신작 게임을 홍보하는 입간판들이 줄지어 있고, 매장 내 유리케이스 너머로는 게임 타이틀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매대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매대를 겹겹이 둘러싼 손님들 때문이었다. 한 게임매장 직원은 “오늘은 손님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며 “주말이나 새로운 게임이 발매되는 날이면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제대로 된 손님 응대가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전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콘솔 시장 눈부신 성장
실제로 콘솔게임기 시장은 최근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콘솔게임 시장 규모는 3734억원으로, 전체 게임 시장의 3%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장률은 2016년 58.1%, 2017년 42.2%를 기록했다. 이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콘솔게임기와 게임 타이틀의 판매량이 60%나 늘었다. 소셜커머스 티몬이 최근 한 달간 게임 상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콘솔게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최근 콘솔게임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이른바 ‘콘솔 1세대’가 구매력을 갖춘 세대로 성장한 점을 꼽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콘솔게임의 부흥기였다. 1994년 발매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1과 세가의 세턴이 쌍두마차로 콘솔 시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 콘솔게임기는 국내에 정식 발매되지 않았다. 가격이 최대 60만원에 달했고, 당시 기성세대들 사이에선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했다. 이 때문에 콘솔게임기는 과거 소수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콘솔게임기 구매에 대한 갈망을 안고 자란 세대는 지금 20~40대가 됐다. 구매력을 갖춘 세대로 성장한 것이다. 과거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이들이 콘솔게임기 시장 전성시대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8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콘솔게이머의 연령별 비중을 보면 30대가 31%로 가장 높았고, 40대와 20대가 각각 27.5%와 26.5%로 뒤를 이었다. 20~40대가 전체의 85%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와 워라밸(Work-Life Balance)·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중시 풍조의 확산도 콘솔게임 시장 부흥의 한 이유다. KB경영연구소의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이후 1인 가구는 국내에서 가장 주된 유형이 됐다. 2017년 기준 1인 가구 비중은 28.5%에 달하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1인 가구는 개인의 취미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성향을 지닌다. 이 때문에 ‘워라밸’이나 ‘소확행’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위 회장은 “최근 1인 가구 증가로 취미생활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콘솔게임 시장 역시 활력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게임회사들 콘솔게임 시장에 동참
여기에 게임 공급사들이 앞다퉈 한글화에 나서면서 콘솔 시장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과거엔 대부분의 콘솔게임이 영어 내지는 일본어로 발매됐다. 당연히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6년을 기점으로 주요 게임 공급사들이 한글화에 적극 나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7년 판매량 상위 10위권 게임들 중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글화를 거쳐 발매됐다. 한글화가 콘솔게이머들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한 것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게임 공급사들이 한글화를 시작한 이유는 국내시장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시장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콘솔게임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은 한글화가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낮춰준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국내 게임업체들도 콘솔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국내 게임업체 ‘빅3(넷마블·넥슨·엔씨소프트)’는 최근 일제히 콘솔게임 개발에 나섰다. 넷마블은 인기 모바일 게임 《세븐나이츠》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콘솔게임 개발을 추진 중이고, 넥슨도 올해 중 콘솔로 격투게임 발매 계획을 밝혔다. 엔씨소프트 역시 최근 콘솔게임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PC용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를 개발하면서 콘솔게임기에도 연동이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이 밖에 펄어비스와 크래프톤 등 중견 게임사들도 현재 콘솔 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인기 PC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콘솔 버전을 출시했다. PC게임 《검은사막》으로 유명한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IP를 활용한 콘솔게임을 출시할 계획이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콘솔게임 시장이 지속적인 확장세에 올랐고, 특히 해외의 콘솔 시장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며 “그런 해외 콘솔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콘솔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