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조교제 알선하고 돈 챙겨…범죄의 표적 되기 쉬워
대다수 채팅앱, 실명·성인 인증 절차 거치지 않고 있어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각종 메신저가 활성화되고 있다. 타인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도 우후죽순 개발됐다. 문자대화뿐 아니라 음성채팅, 화상채팅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채팅앱이 출시된 것만 수백 개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음성적인 성매매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청소년 성매매를 암시하거나 부추기는 내용도 적지 않다.  실제 채팅앱은 아동·청소년의 성매매 온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성매매에 이용된 경로 중 1위는 ‘채팅앱’(67%)이 차지했고, 2위는 ‘인터넷 카페·채팅’(27.2%)이었다. 온라인 채팅을 통한 성매매가 전체의 94.2%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성매매에 나서는 청소년 10명 중 9명은 온라인에서 상대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 7명 정도가 채팅앱을 이용하는 셈이다. 
ⓒ 일러스트 정재환
ⓒ 일러스트 정재환

채팅앱 성매매 사냥꾼도 등장

가출 청소년들의 경우 성매매 유혹에 빠지기 쉽고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충북 증평이 고향인 한아무개양(15)은 중학교 2학년 재학 시절이던 2014년 11월 가출했다. 어머니에게 “며칠 바람 좀 쐬고 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한양은 서울로 상경했다.  가출 소녀가 돈벌이로 할 것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성매매를 알선하던 박아무개씨(28) 등을 만나면서 ‘조건만남’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박씨 등은 모바일 채팅앱을 통해 한양과 성인 남성의 조건만남을 알선하고 돈을 챙겼다.  2015년 3월26일 박씨 등은 랜덤채팅에 ‘빠르게 뵐 분’이라는 제목의 채팅방을 만들어 올렸다. 이를 본 김아무개씨(38)가 응답해 왔다. 조건만남이 성사된 김씨와 한양은 이날 오후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한 모텔 앞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객실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모텔 측은 미성년자인 한양의 신분이나 나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김씨는 성매매 조건으로 한양에게 13만원을 줬다. 성관계 후에는 미리 준비한 마취제를 묻힌 헝겊으로 한양의 입을 막아 잠들게 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김씨는 한양에게 줬던 현금 13만원을 도로 가져가고 스마트폰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에 체포된 후에야 김씨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채팅앱을 통해 만나는 여성들을 노린 일명 ‘채팅앱 성매매 사냥꾼’이었다. 성매수 대가로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불하고 성관계를 가진 후에는 흉기 등으로 위협해 도로 빼앗았다. 여죄도 추가로 드러났다. 

김씨는 범행을 위해 마취제와 밧줄, 헝겊 등을 준비했다. 피해 여성들은 성매매에 나선 사실 때문에 제대로 신고하지 못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가출 소녀인 한양도 김씨의 계획된 범행에 타지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여중생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도 SNS와 채팅앱을 통해 10대 청소년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채팅 대화창에 성매매를 암시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채팅앱에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범죄의 덫’을 놓는 성인 남성들도 상당하다. 가출 청소년들이 주 대상이다. 이들은 주거가 불안정한 가출 청소년들에게 접근해 ‘무료 숙식 제공’을 미끼로 유인해 성매매 등을 강요했다.  지난해 10월 A씨(22) 등은 인터넷 채팅방을 개설해 놓고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했다. B양(17)과 연결되자 “숙식을 제공해 주겠다”고 속여 부산의 한 원룸으로 유인했다. A씨 등은 B양을 원룸에 감금한 후 휴대전화를 빼앗고 채팅앱을 통해 성매매에 나서도록 강요했다.  B양은 감금된 지 3일 만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B양 부모의 신고로 A씨 등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성매매에 나서는 상당수 가출 청소년들이 이런 식으로 범죄의 덫에 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음성적인 범죄는 진화하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채팅앱을 역이용해 성인을 대상으로 범죄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 1월 광주광역시에서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수를 한 남성 C씨(28)가 10대 7명에게 이틀 동안 감금당한 채 금품을 갈취당하다 풀려났다. C씨는 채팅앱을 통해 D양(14)을 만나 성매수를 했다.  이후 C씨는 D양과 재차 성매수를 하려고 모텔방에 갔고 샤워하는 사이 D양의 친구들이 들이닥쳐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으니 신고하겠다”고 폭행·협박하며 현금 258만원 등 금품을 빼앗았다. C씨는 감금에서 풀려나자 경찰에 신고했다. 다수의 전과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있던 이들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로 짜고 C씨를 유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채팅앱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채팅앱이 아동·청소년의 성매매 온상이 되고, 심지어 원조교제에 나섰던 가출 청소년이 살해되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물론 채팅앱을 통한 성매매는 단속이나 적발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현재 대다수 채팅앱은 실명이나 성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채팅앱 317개 중 87.7%(278개)가 나이 등 본인 인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동·청소년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채팅앱에 접속이 가능한 것이다. 미성년자도 채팅앱에서 20살 이상을 선택하면 가입과 채팅이 자유롭다. 닉네임과 나이, 성별을 스스로 설정하면 청소년이 성인인 것처럼 속일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화 저장과 화면 캡처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화 상대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증거 확보도 쉽지 않다. 또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접촉한 후 오피스텔이나 모텔에서 만나기 때문에 제보가 없다면 단속이나 수사는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특정 채팅앱을 단속하면 이용자들이 다른 채팅앱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이용 해지·정지도 효력이 없는 실정이다. 
원조교제를 하려는 청소년과 성인 남성의 채팅창 대화 ⓒ 온라인 커뮤니티
원조교제를 하려는 청소년과 성인 남성의 채팅창 대화 ⓒ 온라인 커뮤니티

단속 사각지대, 정부는 ‘뒷짐’ 

여성단체들은 채팅앱에 최소한의 자정작용이 가능하도록 ‘성인 인증’이나 ‘본인 인증’을 의무화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각 부처의 입장은 다르다. 채팅앱의 문제는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규제에 있어서는 다른 부처에 떠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본인 인증’ 등을 위해서는 과기부의 기술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기부는 성매매 등 내용적 규제는 여가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관이라며 한발 물러서고 있다.  방심위는 통신비밀보호법 등 현행법으로는 사적 대화 내용을 확인하거나 규제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처럼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채팅앱에서 청소년 성매매는 물론이고 각종 범죄가 활개치고 있다.  여가부는 차선책으로 아동과 청소년 대상 성매매 범죄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고보상금제’는 2012년 3월 처음 도입됐다. 아동·청소년 성매수나 성매매 유인·권유·알선, 장애아동·청소년 간음 등 범죄를 저질러 신고된 자가 기소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우, 신고자는 70만원 또는 1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국민 누구나 사건 신고 후 신고포상금을 신청할 수 있다. 미성년자도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여가부는 “청소년 대상 성매매를 유인·조장하는 채팅앱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경찰청과 협업해 단속을 적극적으로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연관기사

‘가출팸’ 청소년들, 성매매 ‘또래 포주’로 나서기도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