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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종각 등 전자상가 몰카 판매 기승…업자 “정부 대책 무섭지 않아”
“뉴스 나온 ‘그 몰카’ 팝니다”
정부가 지난해 6월 불법 촬영을 중대한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약 7개월. ‘몰카 안전지대’를 약속했던 정부의 공언과 달리, 시사저널 취재 결과 대한민국은 여전히 ‘몰카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주요 전자상가 진열대 위에서 몰카는 가장 뜨거운 ‘인기 상품’으로 분류돼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었다. 단속과 처벌 강화를 외치는 경찰과 정부의 엄포에도 판매업자들은 ‘무섭지 않은 협박’이라며, 구매자들에게 몰카 구매를 부추기고 있었다. 시사저널은 지난 1월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서울 용산 및 종로, 경기 부천 등 주요 전자상가 밀집 지역에 위치한 50여 개 카메라 매장을 돌며 몰카 판매 실태를 확인했다. 매장마다 상품 구색의 차이는 있었지만, 몰카를 판매하지 않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가게들은 ‘초소형카메라’ ‘위장카메라’ 등의 문구를 붙인 채, 몰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월21일 방문한 용산역 3번 출구 인근 전자상가. 각종 유명 전자 브랜드 로고를 붙인 판매점에서는 볼펜, USB, 라이터, 차키 등 각양각색의 몰카를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대도 다양했다. 음성이 안 들어가고 화질이 SD급(약 35만 화소)으로 좋지 않은 중국산 USB형 몰카는 4만원을 불렀다. 반면 국내 중소기업에서 만들었다는 100만원대 HD급(약 100만 화소) 설치형 몰카도 있었다. 한 업자는 이 같은 고성능 몰카가 최근 범죄에 악용됐던 ‘그 제품’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몰카 잡겠다는 정부…유야무야 없어진 대책들
카메라 판매업주 A씨는 한 초소형 카메라를 보여주며 “연속 녹화가 10시간인데 이건 장식용인 줄 알고 카메라인지 모른다. 야간에도 촬영이 되고 음성도 들어간다”며 ‘예술’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어 “여관 같은 데서 몰카 찍지 않나. 손님들이 낮에 2~3시간 오면 거기에 많이 찍힌다. 설치해 놓고 하루 정도 놔두면 그대로 선명하고 깨끗하게 찍히니까 그걸 사이트에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들이 모르고 당한다. 요즘 계속 뉴스에 나오던데”라며 직접 설치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같은 날 찾은 종로 인근 전자상가의 한 카메라 판매 업체 직원은 “무엇 때문에 카메라를 사는지 궁금하지는 않은데, 기왕 찍는 거 선명해야 좋지 않겠나. 막말로 도둑놈 잡으려고 이거(몰카) 사는 건 아닐 테고”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기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작고 선명하면 비싸긴 한데, 그 돈 아끼다가 인생 망할 수 있다. 가게 손님이 다 단골이고 A/S(사후관리)도 확실하게 해 줄 테니 믿고 사라”고 했다. 이같이 몰카를 판매하며 은연중 ‘불법 촬영’을 부추기거나 암시하는 업주가 적지 않았다. 몰카를 사고파는 일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성능 좋은 몰카가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몰카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고도화되다 보니, 화장실과 탈의실 같은 밀폐된 공간뿐 아니라 대중교통과 길거리에서의 몰카 촬영도 매우 쉬워졌다. 몰카 범죄는 2013년 4823건에서 2017년 646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몰카 판매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 정부 당국이 관련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몰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 마련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논의만 진행하다 유야무야 없어진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앞서 지난 2014년 한 20대 여성이 야외수영장 등에서 여성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이 피해를 보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카메라의 모습을 띠지 않은 카메라와 변형된 카메라의 생산과 소지를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후속 조처는 없었다. 2015년 10월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소형 카메라 판매자와 소지자 모두 관할 지방경찰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마땅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최근에도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촉발되면서 몰카 문제가 다시금 부상하자, 지난해 6월15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몰카에 대한) 여성의 공포와 분노를 정부는 깊이 공감하고 있다. 여성이 길을 갈 때, 화장실에 갈 때, 생활할 때 불안과 두려움이 없도록 해 달라는 외침을 더 이상 무심히 듣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약 50억원을 투입해 공중화장실 5만 곳에서 몰카 상시 점검을 시행하기로 했다. 경찰청도 경찰관 534명과 의경 436명 등 970명을 투입해 전국 피서지 78곳에 있는 탈의실과 화장실 등 다중이용시설의 불법 카메라 설치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이 과정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성범죄 등에 사용되는 몰카, 즉 변형카메라 유통을 제한하기 위해 등록제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판매 이력 관리를 위한 이력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해 8월31일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변형카메라를 개인이 소지했을 때 신상정보 등을 등록해 무분별하게 구매할 수 없도록 사전규제를 하자는 내용이다. 진선미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이 법안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입법 공청회를 기다리고 있다.법안 통과 미지수…업자 “보여주기식 쇼”
과거의 몰카 대책이 줄줄이 실패를 거듭한 가운데, 과연 이번 정부가 내놓은 몰카 대책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우선 관련 법안의 통과 여부부터 미지수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관련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일부 의원들은 몰카 제조 시장을 갑자기 옥죄면 국내 중소 정보통신(IT) 업체의 줄도산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면서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실제 지난해 11월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회의록에 따르면, 과방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몰카 대책이) 여러 가지 기술 개발과 진화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것을 틀어막는 이런 형태로 가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밝혔다. 몰카를 판매하는 업자들 역시 입을 모아 정부 대책에 의문을 표했다. 카메라 구매자를 등록하게 한다면, 이를 피해 갈 편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용산전자상가에서 만난 한 업자는 “인터넷에서는 벌써 몰카 제작법이 활개치고 있다. 아마 등록제가 생긴다고 하면 부품만 사서 개인이 직접 몰카를 제작하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며 “지금도 소형카메라를 팔지 않고 빌려만 주는 업자들이 많다.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알면서 등록제를 밀어붙이는 것은 애꿎은 상인들만 죽이고 보여주기식 쇼(show)만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몰카 등록제 실효성 논란…“스마트폰 이용한 불법 촬영은?”
정부 대책에 전문가들 쓴소리 “동영상 거래 차단·인식 개선이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