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시설에서 ‘학대 의심’ 정황
CCTV 등 증거 없다는 이유로 검찰은 ‘기소중지’
시설 들어갔는데…손가락 골절에 장 파열
2017년 서울 한 중증장애인시설에 들어간 지적·지체장애 1급인 이승후씨(23). 해당 시설은 해마다 연예인과 국회의원, 정부 관료들이 찾아와 봉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씨의 부모는 이름이 알려진 만큼 믿을 만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뢰는 금세 금이 갔다. 어느 날 이씨의 손가락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산산이 조각나면서다. 사건이 발생한 건 2017년 9월. 시설에 있던 이씨가 오른쪽 손에 골절상을 입었다. 손가락 하나가 아닌 여러 마디가 부러졌다. 시퍼런 피멍이 든 손가락은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진료를 본 의사는 ‘외력’을 의심했다. 성인 손가락 여러 개가 한꺼번에 골절되려면 그만큼 강한 충격이 가해져야 한다고 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처음 원장한테 승후가 손을 다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별일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붕대를 풀고 승후 손을 보는데 정말 처참했다”며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씨 부모는 학대가 아니길 바랐다. 무엇보다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애써 잊었다. 그러나 사고는 또 터졌다. 지난해 3월1일 이씨의 어머니는 시설 원장으로부터 ‘승후의 배가 갑자기 부풀고 제대로 서지 못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급히 시설을 찾은 이씨의 부모. 아들의 배에는 시퍼런 멍 자국이 선명했다. 그날 밤 부모는 이씨를 데리고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진단 소견은 결장의 손상 및 늑골의 다발골절, 복벽의 타박상, 소장의 손상. 다음 날인 3월2일 이씨는 대장절제술 및 대장조루술, 복강내 혈종 제거술 등을 시행한 후 패혈증 쇼크로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이후 시설 원장은 이씨 부모와의 통화에서 ‘배에 가스가 차 체한 줄 알고 소화제를 먹였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씨의 부모는 더 이상 시설의 해명을 믿을 수 없었다. 이씨의 어머니는 “(학대가) 아니었더라도 자신이 돌보던 아이가 이렇게(중환자실 입원)까지 됐다면 병원에 오거나 사과라도 건네는 게 상식 아닌가. 어떻게 무심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의 부모는 지난해 3월 해당 시설 원장 등 관계자들을 폭행치상 혐의로 고소했다.병원 “외상 의심돼”…그러나 증거가 없다
이씨 부모의 고소 후 경찰은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부받아 시설에서 관리 중인 생활일지, 교사 이력서 그리고 이대목동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이씨의 의무기록지 사본을 확보했다. 이후 경찰은 의무기록지 사본을 한 의료기록컨설팅 회사에 분석 의뢰해, 당시 이씨가 입은 상해와 외상 간의 인과관계를 따져봤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당시 컨설팅 기록지에 기재된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장파열은 2018년 3월2일에 내원하게 된 주원인이며 과거에 진단된 거대결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일부 있지만, 출혈이 동반되었다는 수술 소견을 고려하면 이와 관련 없이 외상 등의 다른 소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생략) 복벽의 타박상은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천공된 장기의 주변 조직, 특히 장간막에 출혈이 있었다는 것은 십이지장이나 대장 자체의 질병에 의한 천공이 아니고 외상에 의한 천공 및 출혈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무기록지는 이씨의 내원 이유로 외상, 즉 ‘외부 충격’을 가리켰다. 이제 문제는 ‘누가 이씨를 다치게 했느냐’였다. 이 부분에서 경찰은 수사에 애를 먹었다. 해당 시설에 근무하는 교사 8명에게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실시했지만, 거짓 징후에 해당하는 생리적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교사 모두 이씨가 어떻게 장파열 및 손가락 골절상을 입게 됐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당 시설의 원장 역시 경찰 조사에서 ‘상해 정도에 대해 충분히 부모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의 상담조사팀장 등이 투입돼 입소자 면담 조사를 벌였으나, 입소자 29명 중 23명이 의사소통 불가자인 탓에 대화가 어려웠다. 나머지 6명에게 이씨의 상해 원인에 대해 물었지만 목격자는 없었다. 결국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지난해 6월29일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1월23일 서부지검이 이씨 아버지에게 보낸 ‘불기소이유통지서’에 따르면, 검찰은 ‘다각도로 수사하였으나 혐의 입증 단서나 피의자 특정 단서 발견하지 못하였다. 더 이상 혐의 입증할 수사 진행 단서 없어 피의자 특정 검거 시까지 기소중지 의견임’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씨를 폭행했다는 사람이 자수를 하거나 혹은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는 한 이 사건을 수사할 방도가 없다고 밝힌 셈이다.‘CCTV 있었다면’…관련법은 1년째 계류
전문가들은 장애인보호시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제2의 이승후’가 생겨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중증장애인의 경우 증언이 어렵고, 시설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탓에 내부고발자가 나설 확률도 적다. 실제 사건을 수사했던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설치된 CCTV라도 있으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장애인 단체, ‘장애인의 목소리’ 대변하지 못해”
[인터뷰] 이승후 부친 이영일씨, “경찰의 수사 의지 아쉬워”
경찰은 수사를 포기했고, 목격자는 없다. 확률 없는 싸움이지만 승후씨의 아버지 이영일씨(53)는 2월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내 아들과 같은 장애인이 나와선 안 된다”며 사건의 실체를 끝까지 밝혀내겠다고 했다. 다만 처한 현실이 쉽지만은 않다. 그는 “기소중지라는 게 사실상 사건 종료라고 하더라. 사법권을 가진 경찰도 못 하는 일인데 일반인인 피해자나 그 가족이 증인이나 증거를 수집하고 재수사를 한다는 게 가능한 건지…”라며 말을 줄였다. 이씨는 이어 “교사뿐 아니라 시설을 방문했던 사람 등 관련자들을 모두 조사했어야 한다”며 “경찰이 수사 의지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정작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씨는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장애인의 인권을 이유로 시설 내 CCTV 설치를 반대한다고 하는데, 정작 중증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사조차 제대로 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승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승후씨는 생사의 고비는 넘겼다. 다만 한 달에 한 번 장루(인공항문)를 교체하러 병원에 들러야 한다. 이씨는 그런 아들을 보며 “거기(시설) 있을 때보단 확실히 얼굴이 편안해 보여서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