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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만이 공정성 담보” vs “수능은 다이아몬드 전형”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11월15일 전국 1190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59만4924명이 지원한 이번 수능을 위해 관공서와 금융기관 등의 출근 시간이 1시간 늦춰졌고 시험장 200m 전방에는 대중교통을 제외한 차량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영어 듣기평가가 진행되는 오후 1시10분부터 1시35분까지는 항공기와 헬리콥터의 이착륙은 물론 군사훈련도 중지됐다. 시험장 밖에서는 학부모와 후배들의 응원전이 펼쳐지는 등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풍경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연출됐다. 대학 입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갖는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1월15일 실시됐다. ⓒ 시사저널 임준선


숙명여고 사태 “학종·수시 못 믿겠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대학 입시에 대한 불신이 여느 때보다 팽배해져 있다. 지난 8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22대입개편안’으로 촉발된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은 숙명여고 사태로 인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2022대입개편안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이 여파로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해임되기까지 했다. 숙명여고 사건을 놓고 벌어진 수능 확대 논란은 진보-보수의 진영논리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1월12일 쌍둥이 자매에게 시험지와 정답을 사전에 유출한 혐의(학교 학업성적관리 업무방해)로 이미 구속된 숙명여고 전임 교무부장 A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정답을 외워 시험에 응시한 쌍둥이 자매 역시 적극적으로 사건에 가담했다고 보고, 학교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지난해 6월부터 모두 5차례 유출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쌍둥이 자매가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한 2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뿐 아니라, 지난해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1학년 2학기 중간·기말고사까지 모두 문제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쌍둥이 자매는 1학년 1학기 때 석차가 전교 59등과 121등이었으나, 문제 유출이 있었던 1학년 2학기에는 이과 전교 5등과 문과 전교 2등을 차지했다. 지난 학기에는 나란히 문·이과 1등을 기록했다.

경찰수사에서 쌍둥이 동생이 만든 암기장이 발견됐고, 암기장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전 과목 정답을 메모해 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쌍둥이 동생의 휴대전화에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영어 서술형 문제 정답이 그대로 메모돼 있기도 했다. 숙명여고는 자퇴서를 제출해 논란을 불렀던 쌍둥이 자매에 대해 퇴학 처분을 내렸다. 숙명여고는 입장문을 통해 “전 교무부장 자녀들의 성적 재산정(0점 처리) 및 퇴학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으며 A씨의 파면도 징계위원회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쌍둥이가 퇴학 징계를 받고 성적이 무효화되면 이들로 인해 피해를 봤던 다른 학생들의 성적이 재산정될 수 있다.  

 

9월5일 서울 강남구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압수수색한 경찰 수사관들이 압수물을 담은 상자를 들고 학교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학종, 학부모·학생 괴롭히는 괴물”

그러나 숙명여고 사태가 단순히 A씨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입시제도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수시 전형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예로 A씨가 각종 비교과·수행평가 영역에도 개입한 정황이 나오고 있다. 시교육청 감사 결과, 지난해 10월13일 숙명여고 재학생 중 신청자 대상으로 실시된 ‘미술창작작품 공모전’에서 쌍둥이 언니가 ‘특선(4등)’을 했다. 이는 학교생활기록부의 비교과 수상 실적으로 기록됐다. 당시 심사위원 2명 중 한 명은 미술교사이기도 한 A씨였다. 즉 A씨가 쌍둥이 자매에게 ‘교내 상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비교과 수상 경력은 대입 수시전형인 학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서울 소재 10개 대학은 올해 수시모집의 60% 이상을 학종으로 뽑고 있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교바세)와 정시확대추진학부모모임 등 시민단체는 “비리를 조장하는 학종을 폐지하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시를 확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소영 정시확대추진학부모모임 대표는 “학생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각종 비리를 조장하는 학종은 폐지돼야 하며, 숙명여고 사태는 학종이 부른 교육참사이고 서울대 학종에 대해 국정감사를 촉구한다”면서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종의 뿌리는 2008년 시작된 학생부 중심의 입학사정관제다. 이 제도의 취지는 “획일적인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인성을 강화하고 개개인 학생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을 해 나가며, 공교육을 정상화해 사교육을 축소하자”는 것이었다.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입학사정관제가 학종으로 바뀌었고 대입 전형에서 80%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게 됐다”면서 그러나 “그 모습은 학부모, 학생들을 또 다른 고통에 빠지게 하는 괴물이 돼 버렸다. 가장 먼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 학종의 기형적 확대는 입시 풍토의 또 다른 양상을 낳아 입시 비리를 조장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2022년 대입개편안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17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 대입개편안에 따르면, 수능 위주 정시 비율을 30% 이상 확대하도록 각 대학에 권고하고,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제2외국어와 한문으로 확대했다. 이는 시민참여단이 2차례 숙의 토의 결과를 절충한 것으로, 1안(수능 상대평가, 수능 정시 45% 확대)과 2안(선발은 대학 자율,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이 각각 52.5%와 48.1%의 지지를 얻었다. 정시확대추진학부모모임 측은 “시민참여단은 수능 정시 확대를 훨씬 선호했다. 그런데 교육부가 오차 범위를 내세워 진보단체들의 눈치를 보고 어정쩡하게 결론을 내버렸다”고 주장했다.


“수능,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의 걸림돌”

그러나 다른 한쪽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2015년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및 각론 확정 발표’를 하면서 교육과정 개정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핵심 과제이며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목표임을 밝혔다. 교육부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정의 핵심은 지식 암기 중심의 교실 수업을 토론·탐구·체험 중심으로 개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교육부는 “지식 암기 중심의 교실 수업을 하도록 이끌고 있는 것이 수능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라고도 했다. 수능점수로 100% 선발하는 정시 수능 전형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에서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등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수능-EBS 70% 연계 정책이 실시되고 있어 고3 교실의 교과서는 이미 수능-EBS 연계교재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인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과 토론·체험·실습 중심의 수업 개선은 요원하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조응하는 수능은 절대평가이며, 대입제도는 수능 위주가 아닌 새 교육과정을 통해 혁신된 학교교육의 내용이어야 한다. 작년 대선 과정에서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도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고교 수업과 평가를 진로 맞춤형으로, 토론·실습·체험 중심의 참여형 수업으로 개정하는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인데,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인 수능 전형을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확대했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를 역행하는 제도라는 주장이다.

교육부의 학종 개편안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번 개편안이 학종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 정책국장은 “불공정성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 미반영해야 할 비교과 영역이었던 수상 경력, 자율동아리, 소논문, 수상 및 인증, 봉사활동, 독서활동 중 소논문만 미반영하는 것에 그쳤다”면서 “수상 경력과 자율동아리의 학생부 기록 횟수를 제한한다고 하지만 전형 서류 중 자기소개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이 두 영역에서 기록되지 않은 활동들을 얼마든지 입시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수능 전형이 상대적으로 고소득층, 수도권, 강남,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에게 더 유리한 전형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면 수능은 ‘다이아몬드 전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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