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靑 정책실장, 부동산 정책 주도한 문재인 정부 ‘王수석’ 출신
숱한 설화를 남기던 ‘김앤장’(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결국 교체됐다. 청와대는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난 뒤 연말께나 실시하려던 인사를 11월9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대타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다.
‘홍남기·김수현 카드’가 흘러나온 것은 일주일 전부터다. 그리고 인사가 있기 사흘 전인 11월6일 국회 운영위 회의에 참석한 장하성 정책실장이 부동산 정책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초기 업무관장을 그렇게(사회수석실에서) 했다. 그것(부동산 정책)을 경제수석실로 이관하려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확인됐다.
신임 김수현 정책실장은 부동산 정책 전문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김수현 실장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무 능력과 정부 내 영향력을 놓고 보면 국토교통부의 수장인 김현미 장관에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능가한다. 지난해 김현미 장관이 8·2 대책을 발표한 다음 날, 김 실장이 청와대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부동산 가격 문제에선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나, 올 9·13 대책 발표 전 김동연 부총리와 김현미 장관이 청와대 호출을 받고 들어간 것은 김 실장의 힘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책임지고 진행하는 부동산 정책 업무가 사회수석실에서 경제수석실로 바뀌었다는 것은 그의 거취를 놓고 두 가지 해석이 나오게 만들었다. 사퇴 또는 승진이다. 당시 관가(官街)에선 컨트롤타워인 ‘김앤장’보다 힘이 센 데다 주택 정책 실패를 이유로 퇴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 실장은 영전했다.
권력욕이 심하다는 의견부터 주관이 뚜렷한 진보성향 학자까지 김 실장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김 실장은 경북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도시공학과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빈민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1984년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 서울대에서 도시공학 석사(1989년)와 환경계획학 박사(1996년) 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엔 서울 사당동에서 철거민 운동을 주도했다. 서울지역철거민협의회 정책실장까지 지냈다.
金, 故 제정구 의원이 만든 ‘도시연구소’ 출신
빈민 주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김 실장은 빈민운동을 함께한 동료들과 1994년 한국도시연구소를 창립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우리나라 빈민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故) 제정구 의원 등이 1988년에 세운 도시빈민연구소가 1994년 정책·연구 기능을 강화해 재출범한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이다. 최근 위장전입, 불법증여 등의 논란에 휘말리며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조명래 환경부 장관도 2000년 이 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지금도 김 실장은 연구소 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강현수 원장과 지난해까지 서울시 산하 SH공사에서 사장을 지낸 변창흠 세종대 교수 역시 한국도시연구소 이사로 있다.
김 실장이 공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DJ(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 자문기구인 ‘삶의 질 향상 기획단’에 자활정책담당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김 실장은 2002년 6월 한 부동산 정책 세미나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만나면서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과거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이 2002년 6월이었는데, 이때 이미 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머리에 각인돼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16대 대선 직후인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경제2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김 실장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빈부격차완화차별시정기획단 기획운영실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가 몸담고 있던 이 조직의 수장이 훗날 정책실장에 기용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김 실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환경부 차관 등 요직을 거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청와대에 근무할 때 김 실장은 매해 실시된 비서진 업무 평가에서 1~2위에 랭크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A씨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실무에 있어서 김 실장에게 문제를 제기한 공직자는 없었다”면서 “노 대통령도 종종 ‘수현씨(김수현 정책실장을 지칭)는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물을 정도로 편히 지냈다”고 설명했다.
참여정부의 대표적 부동산 대책인 10·29 대책과 8·31 대책은 모두 김 실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세금폭탄’이라 불리며 고가주택을 가진 부유층 반발을 불러일으킨 종합부동산세도 마찬가지다. 2011년 펴낸 책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김 실장은 부동산 투자자의 심리를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비유해 설명했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무장 강도에게 잡힌 인질이 살기 위해 강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다 보면 인질범을 옹호하고 경우에 따라선 인질범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범죄심리학 가설이다. 책에서 김 실장은 “장기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사회 전체가 가격 상승이라는 집단 최면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대 교수로 있던 2013년 김 실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기억을 되살려 당시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는 이론가와 실무자의 중간 영역에 있다. 전직 공공기관장 출신 B씨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요직에 있던 교수 출신들이 ‘교조(敎條)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사고가 경직돼 있었던 반면, 김 실장은 소위 시장과 딜(Deal)을 할 줄 아는 공직자”라고 평가했다. 2013년 인터뷰에서 김 실장은 임대소득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지금은 큰 틀에서 ‘빅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동료인 변창흠 세종대 교수도 “정책 전반을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한 학자”라고 평가했다.
참여정부 때부터 文 깊은 신뢰 얻어
교수직을 잠시 내려놓고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 원장을 지낸 것을 두고 김 실장을 ‘박원순 라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김 실장을 ‘친문 직계’로 분류한다. 전직 공기업 사장 출신인 C씨의 말이다. “2011년 열린 부동산 정책 회의에 김 실장이 강연자로 나선다고 해 가보니 맨 앞줄에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 경청하고 있더라. 행사가 끝나고는 김 실장을 격려하며 연신 싱글벙글 웃어대던 문 대통령의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전형적인 관료 출신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고와 한양대 경제학과를 거쳐 행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기획원 출신인 홍 부총리 내정자는 이후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를 거치면서 주로 예산·기획 업무를 처리했다. 전임자인 김동연 부총리와 걸어온 길이 비슷하다. 김 부총리는 행시 26회로 홍 내정자보다 세 기수 빠르다. 2012년 김 부총리가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있던 시절 홍 내정자는 기재부 요직 중 하나인 정책조정국장을 맡았다. 훗날 부처 차관과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거쳐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에 오르는 것도 꼭 빼닮았다. 부처 내 대표적인 기획·예산통인 이유로 두 사람 모두 변양균(전 기획예산처 장관) 라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변 전 장관이 기획예산처 예산국장 시절 홍 내정자는 예산총괄과 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변 전 장관이 예산처 차관이던 때엔 장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이 때문에 관가에선 김동연 부총리 교체와 홍남기 내정자의 승진 인사에 변양균 라인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는 인선 배경을 설명하면서 홍 내정자를 가리켜 “폭넓은 행정 경험을 통해 국정 이해도가 높은 경제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언론도 2005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홍 내정자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우수한 정책개발과 혁신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격려금을 받은 사실을 들어 청와대와의 교감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있다. 한 전직 차관 출신 인사는 “굳이 컬러로 말한다면 홍 내정자는 ‘무색무취’에 가까운 사람이다. 윗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전형적인 예스맨”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도 이런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 부처 내 가장 힘이 센 곳 중 하나였던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차관을 지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정책조정수석실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했는데, 당시 홍 내정자가 상관으로 모시고 있던 수석비서관은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국정기획), 현정택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정책조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관계자는 “이낙연 총리가 강력하게 천거했다고 하는데 왜 그랬겠나. 예스맨인 홍 내정자의 성향을 보면 금세 답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가의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 경제부처에서 국장을 지낸 D씨는 “정작 본인은 ‘로봇’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워커홀릭이지만, 부총리라는 자리는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시장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해야 하는데, 홍 내정자가 그런 능력을 발휘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관가 “洪, 워커홀릭이지만 상관에겐 예스맨”
1기 경제팀 핵심인 ‘김앤장’은 늘 불협화음을 빚어왔다. 원톱(One-Top)이냐 투톱(Two-Top)이냐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을 이어갔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두 사람 간 갈등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김수현 실장은 취임 직후인 11월13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전임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관계를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갈등설을 어떻게 봤느냐”는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질문에는 “(둘이) 분위기를 더 맞춰서 갈 수도 있지 않았나, 그런 걱정을 했다”고 답변했다. 갈등설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실장은 취임 기자회견 및 국회 운영위 회의 때마다 “경제 운용에 있어선 경제부총리가 책임자”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홍 내정자 역시 이와 관련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위험 요소는 곳곳에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정치인 출신 장관들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 관심이다.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여의도를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홍 내정자로선 조직 장악력이 첫 번째 관건이다.
여기에 홍 내정자는 행시 선배인 최종구 금융위원장(25회)과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27회) 등과도 협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마찰음이 발생할 경우 친문 직계로 분류되는 김 실장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홍 내정자 인선에 대해 시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말로는 홍남기 내정자가 원톱이라고 하지만, 공직의 상당기간을 예산 분야에서만 지내 실물경제에 해박하지 않은 데다 청와대, 타 부처(미래창조과학부) 근무 등을 오래 해 조직 장악력 측면에서 의문점이 많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