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사원, 법적 근거 없이 회계법인에 의존…국회 “신뢰성 부여 곤란”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 대한민국 헌법 제97조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감사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권위를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은 헌법 의무를 얼마나 준수하고 있을까. 감사원은 매년 3월경 국가기관에 대한 재무감사를 수행한다. 국가재무제표 결산검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국가재무제표의 결산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엄청난 규모의 오류가 매년 반복되는데도 책임지는 이는 없다. 심지어 감사원은 짧은 검사 기간, 인력 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법적 근거 없이 민간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를 결산검사 업무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근거 규정이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안 된다는 규정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6년간 국가재무제표의 결산 오류는 65조7619억원에 달한다. 감사원은 매년 국가 세입·세출 결산 회계검사를 통해 회계 오류를 찾아낸다. 그런데 감사원이 미처 그해 찾아내지 못하고 이듬해 추가로 밝혀낸 회계 오류를 ‘전기오류수정손익’이라 한다. 그 규모가 6년간 무려 65조원이 넘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작성한 국가 회계 결산 관련 보고서 ⓒ 오신환 의원실 제공


감사원, 직무유기일까 역량 부족일까

전기오류수정손익의 연도별 현황은 2012년부터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지출이나 비용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회계에 반영하는 ‘발생주의’ 방식의 국가회계 결산을 시작한 2011년 다음 연도다. 2012년 12조6168억원, 2013년 4조3945억원, 2014년 13조6295억원, 2015년 11조9330억원, 2016년 7조2674억원 등 매년 엄청난 규모의 전기오류수정손익이 발생했다. 2017년에는 15조9207억원으로, 발생주의 회계 재무제표 개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전기오류수정손익이 발생했다.

이런 오류는 왜 발생할까. 국유재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토교통부, 국방부 등이 자산 누락, 이중 등재, 말소된 자산의 등재 및 기초적인 데이터 입력 오류 등 다양한 문제점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설명이다. 정부의 해명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기업의 재무제표에 이런 오류가 있었다면 어떤 피해가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유추가 쉽다. 기업에 재무제표는 생명과 같다. 한 글자만 틀려도 상장사는 정정공시를 해야 한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여 상장폐지 심사와 검찰 고발이라는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했다. 그런데 일개 기업이 아닌 국가에서 엄청난 규모의 회계 오류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기업에서 이런 회계상 오류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정될 때에는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검찰 고발, 증권발행 제한 최대 10개월의 조치를 부과 받게 된다. 고의가 없는 일반 과실이라 해도 증권발행 제한 최대 2개월, 감사인 지정 1년을 부과 받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김 의원은 “기업이라면 감사인도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국회의 대표적 두 싱크탱크인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에 관련 사안에 대한 조사를 분석 의뢰했다. 예산정책처는 “국가재무제표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경 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국가재무결산이 7년 차에 접어들어 안정화 단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빈번하게 적지 않은 규모의 전기오류수정손익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감사원의 결산검사가 적정하게 수행됐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분석관은 정부를 향해서도 “향후 국유재산과 관련해 전기오류수정손익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국방부, 국토부 등과 국유재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는 국유재산의 취득·관리 등을 포함한 사후관리, 매각의 각 단계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입법조사처도 “국가재무제표의 정확성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도영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오류 정보에 대한 외부 정보이용자의 가시성을 보장하는 효과적인 공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중대한 오류가 빈번한 부처에 대해서는 특화된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오류 발생은 해당 부처의 회계 환경과 회계 기준과의 부적합, 인력 부족이나 시스템 미비에 의한 회계 역량 부족 등과 같은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제기했다. 그러면서 “회계책임관들에게 주기적으로 회계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감사원 직원 중 회계검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회계사 자격을 갖춘 자의 비율은 10%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 조사관은 “감사원으로 하여금 회계 오류에 대한 확인과 시정 요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정부부서의 회계 오류의 원인을 분석하고 부처 자체 내부통제수단의 개선에 대한 컨설팅을 수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확하고 분석적인 결산 심사를 위해 주기적으로 전년도 결산검사 결과를 샘플링해 결산 심사의 정확성과 신뢰성, 분석의 타당성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민간 회계법인 활용, 절차적 정당성 논란”

더 큰 문제는 감사원의 자체 역량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 조사관은 “감사원이 자체 인력을 활용하지 않고 민간 회계법인을 활용하는 검사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고 있다”며 “업무 성과와는 별개로 국가회계업무를 민간이 수행하는 것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의 논란이 있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회계 정보 분석을 통한 감사원의 역량 강화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재무제표 검사의 추진방식과 관련해 회계법인 인력을 보조원으로 사용하는 현 방식에 대한 효과성 분석이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했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해 국가재무제표 결산검사에 17억3100만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매년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썼다면, 지금까지 대략 100억원 정도의 나랏돈이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감사원이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무릅쓰고 상당한 예산을 들여 민간 회계법인 인력을 활용했음에도 매년 심각한 수준의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감사원의 입장은 뭘까. 감사원은 법적 근거 논란에 대해서는 “근거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외부 인력을 활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없다면 차라리 지금보다 많은 예산과 외부 인력을 투입해 결산의 정확도를 높이면 되지 않느냐”는 시사저널의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연관기사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