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세력 음모’ 주장 재개에 혼란·피로감 확대
"저들이 바라는 바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다시 '저들'이란 표현을 꺼냈다. 이 지사는 11월19일 출근길에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문제와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며 "저들이 바라는 바, 이 저열한 정치 공세의 목표는 이재명으로 하여금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혜경궁 김씨'로 이름 붙은 트위터 계정 '@08__hkkim'의 소유주가 자신의 부인 김혜경씨라고 지목한 경찰에 대해선 "진실보다 권력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이 지사는 "경찰이 지금 이재명 부부에 대해서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라든지 기득권자들의 부정부패에 관심 갖고 정말로 집중했더라면 아마 나라가 지금보다 10배는 더 좋아졌을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몇 차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떼며 복잡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재명 지사가 지칭한 '저들'은 누구일까. 이날 이 지사의 발표만 놓고 보면 '권력' '기득권' 등으로 연결할 수 있다. 워낙 포괄적인 개념이라 쉽게 이해되진 않는다. 이 지사 역시 그동안 '저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속 시원히 얘기한 적이 없다.
그가 올해 5월 처음 언급한 '저들'은 당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해서는 '반(反) 이재명 기득권 연대(연합)' 혹은 '거대 기득권'으로 병칭됐다. 지방선거 이후 두 달가량은 그 범주가 민주당 등 범여권 일부로까지 넓어진 징후도 나타났다. 이 지사 소속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를 맞아 당내에서 '안티 이재명' 기류가 표면화했던 시기다.
동시에 이 지사를 둘러싼 논란들은 진실 규명이 되지 않은 채 활화산처럼 분출해 왔다. 부인 김혜경씨의 '혜경궁 김씨' 계정주 의심은 잠복해 있던 여러 리스크 중 하나였다. 성남 조직폭력배 연루설과 배우 김부선씨와의 스캔들 의혹이 앞서 크게 이슈화했다. 이 밖에 형수에 대한 욕설 논란,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는 의혹, 성남시장 시절 시정 운영과 연관 있는 송사 당사자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 이슈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산재해 있다.
성남 조직폭력배 연루 논란이 연일 언론사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 이 지사는 '모두 거짓말이고 저들(배후세력)의 공작'이란 식으로 해명했다. 이는 눈덩이처럼 커진 논란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역풍 조짐이 보이자 이 지사는 각종 의혹에 관한 대응을 잠시 제쳐두고 업무에 전념했다. 마침 이 지사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던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 대표가 되고, 일련의 사태는 잠잠해지는가 싶었다.
더욱 모호해진 '저들'…혼란만 더욱 확대
이재명 지사에게 어느 하나 만만한 의혹이 없지만, 이번 '혜경궁 김씨' 논란은 또 한 번의 정치 생명 위기를 안겼다. 다급해진 이 지사는 다시금 '저들'을 겨냥했고,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저들'의 성격은 더욱 모호해진 모습이다. 현 상황에 비춰보면 가장 가까운 쪽이 민주당 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세력인데, 상식선에서 '이들이 지금 시점에 이 지사를 견제 내지 공격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다'고 믿기는 힘들단 지적이 많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 정부 하에서 굳이 경찰이 (민주당 소속인) 이 지사를 정치적 측면에서 계속 압박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이 지사가 당당하다면 '문제 해결 전까지 스스로 당원 자격을 내려 놓겠다'는 등의 행보를 취하는 게 낫다. 'B급 정치' '편파 수사'로 몰고간다고 해서 국민들이 설득당할 여지는 낮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현재 이 지사 문제를 놓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트위터 계정 주인을 밝혀달라며 고발했던 친문 핵심 전해철 민주당 의원조차 지난달 "취지와 다르게 당 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고발을 취하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당 입장에서 이 지사에게 나가라고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이 지사가 '진보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본인이 이렇게 핍박을 당하고 있다'며 만든 프레임을 기정사실화해 끌고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9일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민주당에서) 이 지사 존재는 계륵과 같다. 버리지도 못
하고 갖고 있지도 못한다. '관둬라', '탈당해라', '지키자' 등의 말이 4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경기도민, 민주당원 등 국민들 몫이다. 이 지사가 경찰이 확신을 갖고 발표한 수사 결과를 '허접하다'며 일축하는 가운데, 만약 검찰·법원이 경찰과 같은 판단을 내릴 경우 승복할 가능성도 낮은 상황이다.
한편, 이 지사는 11월18일부터 이 사건과 관련 자신의 SNS에 '트위터에 공유한 사진을 캡처해 카스에 공유했다면 계정주는 동일인일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경찰과 김혜경씨 변호인 주장 중 누구 의견에 공감하는지를 묻는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에는 총 3만8000여명이 참여했다. 이 중 경찰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80% 이상으로 다수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