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만권 3市간 이해관계 얽혀 협의 난항…광양경제청, 정부에 제도개선 건의
“저희 관할 지자체는 어디인가요.” 공장 주소가 3개인 전남 광양시 율촌 제1산업단지 입주기업의 하소연이다. 이 업체의 주소는 여수·순천·광양시 등 3곳이다. 당연히 관할 지자체도 3곳이다. 가동 중인 9개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관할 지자체가 2곳이다. 이는 바다를 메워 조성한 율촌 산업단지의 경계를 놓고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가 첨예하게 다투면서 빚어진 결과다.
경계 조정을 하려해도 지자체 간 이해관계가 얽혀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그동안 전남도 등이 수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애꿎은 입주 기업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상생과 갈등 조정을 위해 구성된 3개 시(市)의 광양만권행정협의회가 ‘무늬만 협의회’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신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이 ‘마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율촌1산단 행정구역 경계 조정을 정부에 건의해 귀추가 주목된다.
애꿎은 입주 기업들만 큰 불편, 율촌1산단 지자체 경계 조정 호소
19일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1994년부터 조성사업이 시작된 율촌1산단은 여수시 율촌면과 순천시 해룡면, 광양시 해면 일대 바다를 매립해 910만8000㎡(약 276만평) 규모로 조성됐다. 지자체별 관할 구역은 여수 26%, 순천 42.5%, 광양 31.5%다. 하지만 행정구역 구분이 필지별이 아니라 매립 전 해상 경계를 기준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15획지(31필지)의 주소지가 이들 3개 시의 행정구역과 겹치게 됐다. 이로 인해 이미 입주한 10개 회사 21필지의 행정구역은 2~3개 지자체에 겹쳤다. 세아제강 공장의 부지는 여수·광양·순천 등 세 곳에 걸쳐 있으며, 현대제철 등 2개 시에 공장이 있는 업체도 9개나 된다. 미분양된 5획지(10필지)도 2개 행정구역에 속한다.
이들 기업은 지방 소득세를 내려면 2∼3개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고 주민세 납부와 지적 측량도 중복 처리해야 한다. 화재나 사건·사고 땐 소방과 경찰의 관할이 불분명해 초기 대응이 지연될 우려도 크다. 기업들의 민원이 쏟아지자 지난 2011년 3개 시의 부시장들이 조정안을 만들고 2016년에는 행정자치부가 조정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합의를 보지 못했다. 지자체들의 관할 구역 축소와 세수 감소에 대한 우려 탓이었다. 특히 합의 과정에서 세수 증대에 도움이 되는 부두가 포함된 필지는 서로 자신들의 행정구역에 포함시켜려고 안간힘을 쓰고, 혐오시설인 폐수처리장 등은 피하려는 등 지자체 이기주의가 극심하게 노출됐다.
급기야 광양경제청은 이에 따라 지자체 간 합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을 건의하고 나섰다. 해당 지자체 간 자율조정을 바라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중앙분쟁조정위원회가 심의·의결을 거친 뒤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다. 행정의 이해관계보다는 주민 불편 해소가 먼저라는 것이다.
광양경제청은 지난 2일 규제혁신 현장간담회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을 건의한 데 이어 14일 인천에서 열린 전국경자구역청장협의회에서 지자체 관할 구역 경계 변경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김갑섭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장은 “입주 기업들이 행정구역 중복으로 불편을 겪고 있어 경계구역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자체간 경계구역 조정이 쉽지 않아 일단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필요할 땐 잠자는 광양만권행정협의회 ‘무늬만 협의회’로 전락 빈축
기업들을 유치해 놓고 자치단체들이 행정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볼썽사나운 경계 다툼을 벌이자 광양만권행정협의회 역할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광양만권행정협의회는 광양만권 3개 시의 상생발전을 위한 취지로 지난 1985년 5월 발족했으나 지난 2007년 11월 제19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지역 간 갈등이 촉발해 잠정 중단했다. 민선6기 출범 후 광양만권 공동 현안들을 함께 해결하자는데 뜻을 모으면서 중단한 지 7년만인 2014년 12월 광양시에서 제20회 행정협의회를 재개했다.
당시 3개 시 단체장들은 “함께 가는 길에 힘든 일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서로의 발전을 위해 선의의 경쟁도 할 것”이라며 “그때마다 광양만권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양보하고 배려해가면서 공동발전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가자”고 뜻을 모았다.
그러나 정작 3개 시의 이해가 충돌한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