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0대 기업 임원 3408명 전수조사 결과, 평균 나이 매년 하향 추세
평균 나이 52.8세, 서울대 졸업, 해외 유학 경력.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의 현주소다. 시사저널이 국내 상장법인 중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30대 기업에서 근무하는 등기 및 비등기 임원 3408명(비상근 제외)을 전수조사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2017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임원 가운데 유학파가 747명(22.3%)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내 대학의 경우 서울대가 313명(9.3%)으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고려대 254명(7.6%)과 연세대 207명(6.2%), 카이스트 194명(5.8%), 성균관대 153명(4.6%), 한양대 142명(4.2%), 인하대 91명(2.7%), 서강대 87명(2.6%) 순이었다.
지방대의 경우 부산대와 경북대가 각각 118명(3.5%)과 101명(3.0%)으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포항공대 46명(1.4%), 영남대 39명(1.2%), 전남대 25명(0.8%) 순이었다. 지역에 공장이나 사업장이 많은 현대·기아차나 포스코, 현대중공업, SK이노베이션 등이 지역 국립대학인 부산대나 영남대, 포항공대 출신들을 대거 채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SKY대학 출신 전체 임원의 23.1%
올해 조사에서 눈에 띄는 사실은 고졸 출신 임원도 1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세탁기 박사’로 불리는 조성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조 부회장은 1976년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전기설계실에 입사했다. 이후 40여 년간 가전사업 외길을 걸은 끝에 CEO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6년부터 LG전자 사내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정원재 우리은행 집행부행장도 고졸 출신이다. 그는 1977년 천안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우리은행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행하면서 뱅커로 첫발을 내디뎠다. 고졸 학력으로 명문대 출신 임원들이 즐비한 우리은행에서 2인자까지 올라간 인물로, 우리카드 사상 최초의 고졸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황대환 삼성전자 상무와 한준성 KEB하나은행 미래금융그룹 전무 등이 고졸 출신으로 ‘기업의 별’인 임원에 올랐다. 30대 기업 임원 중에는 전문대 출신도 9명이나 됐다.
1년여 만에 주요 기업 임원들의 출신 학교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카이스트가 고려대와 연세대를 제치고 상위 2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유학파 역시 전체의 19.3%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유학파의 비율이 3%나 증가한 22.3%를 기록했다. 사업보고서에 학력을 게재하지 않은 비율이 상대적으로 2016년에 더 많아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권이 촛불혁명을 등에 업고 출범하면서 국내 주요 기업 내부의 역학구도 역시 변하고 있는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기업별로 보면 국내 30대 기업 가운데 임원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의 경우 등기와 미등기 임원 수만 1048명으로, 전체의 30.7%에 달했다. 코스피 시가총액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270명)보다 4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시가총액 3위 기업인 셀트리온의 임원이 27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의 경우 임원이 284명, 포스코의 임원은 72명 수준이었다.
3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연령은 52.8세다. 전반적으로 LG그룹 계열사 임원의 평균 연령이 높게 나타났다. LG생활건강(59.6세)과 ㈜LG(57.4세), LG화학(57.1세)이 상위 1~3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현대차(56.2세), 네이버(55.6세), KT&G(55.04세) 순이었다.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기업은 셀트리온과 아모레퍼시픽으로 48.8세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임원만 전체의 31% 수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주요 기업 임원의 연령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연령은 53.83세였다. 한국전력 임원의 평균 연령이 60.3세로 가장 높았다. 신한지주 임원 역시 59.19세로 높게 나타났다. 그나마 네이버나 아모레퍼시픽 등의 연령이 50세를 넘지 않으면서 평균 연령이 이 정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면서 평균 연령이 정확히 1세 정도 낮아진 52.8세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임원이 많이 포진해 있는 100대 기업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을 때와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해 조사 때 임원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곳은 한전(60.3세)과 신한금융지주(59.19세)였다. 올해 조사에서는 이들 회사 임원들의 평균 연령이 각각 52.3세와 54.1세로 크게 낮아져 있었다.
국내 최대 HR컨설팅 회사인 커리어케어 이영미 글로벌 사업본부장은 “시대가 그만큼 변했기 때문에 임원 채용 트렌드가 바뀐 것”이라고 원인을 설명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해 오던 사업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최근 글로벌 기업의 트렌드다. 국내 기업도 최근 기술 혁신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찾는 데 목을 매고 있다”며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임원보다 전문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를 원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임원들의 나이가 낮아지고, 유학파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그룹의 경영권이 2세나 3세로 상당 부분 넘어간 점도 임원들의 연령을 낮추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과 현대차, LG, 롯데, 신세계그룹 등의 경우 지분이 상당 부분 후계자에게 넘어갔거나 사실상 후계자 중심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며 “임원들의 연령대가 이들 후계자에 맞춰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성 임원들의 경우 여전히 재계에서 소외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3408명의 임원 중에서 여성 임원은 129명(3.79%)에 불과했다. 지난해 107명(3.09%)보다는 소폭 상승했지만, 여성이 고위직으로 진급하는 것을 막는 유리천장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여전히 견고했다.
여성 임원 3%대, 유리천장 여전
그나마 삼성전자가 59명으로 여성 임원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남성 임원이 989명임을 감안하면 비율은 5.97%로 평균을 소폭 넘는 데 그쳤다. 뒤를 이어 삼성SDI(8명), 삼성물산(7명), LG화학(5명) 순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전체 64명의 임원 중 여성 임원이 14명(21.88%)으로 조사 대상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이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LG생활건강(11.77%), 삼성SDI(10%), LG화학(6.94%) 순이었다. SK하이닉스나 신한지주·삼성SDS·에스오일·KT&G·하나금융지주·기아차·㈜LG의 경우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50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전체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2.7%로, 유럽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올해 2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간신히 20점을 넘겨 6년 연속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회장은 언론에서 “이사회에 여성 임원이 많을수록 기업의 실적과 주가가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높다”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의 경우 특정 성(性)의 이사가 3분의 2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것은 고무적이다. 여성 이사 확대를 통해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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