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호 국익을 고려한 발전적 담론 모색해야

한·일 관계가 불안하다. 지난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마련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화해치유재단 해체 시사 발언과 10월 제주 국제관함식에서의 일본 욱일기 게양 문제로 양국 여론이 들끓고 있다. 욱일기 문제는 일본 측의 불참 통보로 일단락됐지만, 양국 감정은 더 악화됐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한편에서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개최됐다. 각계각층에서 모인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한·일 관계는 갈등 사안이 고조되고 있다. 한동안 정체돼 있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듯하다.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 한·일 양 정상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는 것인가.  

 

1997년 12월30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여의도 국민회의 총재실에서 방한 중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외상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년 전 선언의 의미와 현재 한·일 관계

1998년 10월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공동선언은 과거사에 대한 역사인식을 비롯해 정치, 안보, 경제, 인적·문화교류, 글로벌 이슈 등 5개 분야의 협력원칙과 11개 항으로 구성됐고, 함께 채택된 ‘행동계획’에는 43개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가 제시됐다. 당시 선언이 채택된 데는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 북핵 위협 증대, IMF 외환위기, 양국 지도자의 상호인식과 대외노선의 일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선언을 통해 양국은 역사 화해를 위한 진전과 양국관계의 새로운 기점 및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 20년 전 선언을 주목하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20년이라는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악화된 현재의 한·일 관계에 대한 반성과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發露)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더욱이 한반도에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최근 진전되면서 나타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과 재팬 패싱(Japan Passing) 논란은 대북정책에 대한 한·일 공조와 협력의 필요성을 가중시켰다. 이런 가운데 20년 전의 공동선언은 양국의 상호 중요성을 강조한 과거의 교훈적 사례인 것이다. 결국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20년 전 공동선언은 현재 시점에서 되돌아봐야 할 모델임과 동시에 불안정한 현재의 한·일 관계를 나타내는 척도라 할 수 있다.

선언 이후 양국 사회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일본에서의 한국 문화(韓流), 한국에서의 일본 문화(日流)가 양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점이다. 4차에 걸친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따라 이제 한국에서 일본 영화나 게임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일본 내에서도 한국 드라마, K팝 등은 일시적인 붐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양국의 인적 교류 또한 1998년 267만 명에서 2017년 945만 명으로 약 3.5배 증가했으며, 곧 1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적 교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감정의 골은 여전히 깊다. 지난 5월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가 공동으로 실시한 ‘한·일 국민 상호인식 여론조사’에서 현재의 한·일 관계에 대해 ‘좋다’고 인식한 일본인은 9.5%, 한국인은 2.6%에 불과했다. 일본 내각부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외교에 관한 조사’에서도 한국에 대한 친근감은 최근 5년간 다소 증가하고 있으나, 20년 전보다는 낮은 수치다.

정상 및 고위급 차원의 교류도 감소했고, 일본 외교청서와 한국 외교백서에 나타난 양국 관계는 가치와 이해에 기반한 ‘당위적 협력동반자 관계’에서 자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관리해야 할 관계’로 상호 중요성과 전략적 가치, 평가와 비중이 감소했다. 이뿐만 아니라 공동선언 이후 북핵 위협, 중국의 부상 등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양국이 추구했던 안보협력 강화는 기본방침 수준만 유지하는 등 선언의 완전한 이행을 이끌기에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20년간의 한·일 관계는 비정치적 영역(경제·사회·문화 등)에서는 진전을 이룬 반면, 정치적 영역(외교·안보 등)에서는 정체·퇴보하는 형태로 전개되며 불균형 발전을 이뤘다. 이에 더해 한·일 관계 저변에 깔려 있던 과거사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사실상 ‘과거사 프레임’이 한·일 관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한·일 관계를 떠올리면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일 관계, 해법은 없나

이런 상황 속에서 한·일 관계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위안부 문제 등은 이미 국민적 차원으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나, 현재의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성급한 정치적 해결은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시간에 쫓긴 조급한 해결과 적당한 타협이 아닌 더 이상의 상처와 고통 없는 충분한 해결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점진적·단계적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과거는 분명히 청산해야 하고, 피해자 중심의 해결과 역사 화해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만 가로막혀 있기에는 한·일 간 협력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다. 양국은 최근 급증하는 신(新)보호주의 확산과 무역마찰,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현상에 공동 대처하고 자유무역 질서 확립을 위해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구조적 환경에 놓여 있다. 또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 환경, 재해재난 등 초국경적 문제에 대한 대응을 함께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사 문제라는 어려운 문제가 놓여 있지만, 상호 국익을 고려한 발전적인 담론을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뿌리 깊이 내재해 있는 국가적 상흔(傷痕)을 극복하고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20년 전 한·일 양 정상은 그 어려운 일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지금이라고 못 할 이유는 없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20년 전 양국 정상이 했던 약속을 되새기며 한걸음 내디뎌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