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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곧은 소리] 자유한국당 설득 못 하는 여당의 정치력 부재도 문제

표리부동(表裏不同). 마음이 음흉하여 겉과 속이 다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입으로는 언제나 정치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정치개혁특위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 국회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21대 총선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 명단을 확정해 10월5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보했어야 했다. 그래야 중앙선관위가 선거구획정위를 선거일 18개월 전인 10월15일까지 구성해 21대 총선의 선거구를 내년 4월15일까지 획정하는 일정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 정개특위 구성이 지연됨에 따라 이 같은 일정이 지켜질 수 없게 되었고, 적어도 선거 1년 전에는 선거구를 획정해 정치 신인들도 선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던 법 조항을 위반할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국회가 위법 상황을 야기한 것은 물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구태 중의 구태다.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서도 국회는 선거일을 불과 45일 앞두고서야 선거구획정안을 의결했다. 물론 위법적 상황이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이 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에는 정개특위에서의 선거구획정 작업이 진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정개특위 구성 자체가 지연되고 있어 발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는 사실 때문이다. 이번 정개특위는 다른 여느 때와는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단지 21대 총선을 앞둔 선거구 획정 작업을 넘어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우리 정치의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 김관영(가운데), 민주평화당 장병완(왼쪽),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9월11일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행 선거제도는 승자독식의 구조 아래에서 표의 등가성을 깨뜨리고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정한 지역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한 소수 정당들은 선거에서 일정한 득표를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그래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 선거 결과가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정당들이 존립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그동안 꾸준히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거대 정당들이 꿈쩍하지 않는 한 이 같은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편은 언제나 말만 무성하고 이루어지지는 못하는 우리 정치의 숙원으로 자리해 왔다.


선거제도 개편은 우리 정치 숙원

그러던 것이 촛불시민혁명과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된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선거제도 변화에 완강히 반대해 왔던 자유한국당의 입장 변화 가능성은 선거제도 개편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해 주었다. 오랜 세월 동안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지역에서 보수정당들이 누려왔던 절대적 지지는 그들로 하여금 다수 의석을 보장해 온 선거제도의 변화를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의 다수 의석을 보장해 줄 것으로 믿었던 현행 소선거구제를 바꿀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촛불시민혁명 이후 보수정당의 퇴조 현상이 지속되면서 올해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을 제외한 영남 지역에서까지 크게 패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득표율에 비해 오히려 적은 의석수를 확보하는 데 머물렀고, 득표율에 비해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것은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되는 반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결과를 접한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더 이상 현행 선거제도의 수혜자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할지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현행 선거제도의 수혜자가 되어버린 민주당이 입장을 바꾸지나 않을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동안 집권여당이 된 이후 선거제도 개편에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민주당은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 이후 다시 선거제도 개편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선거제도 개편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민주당으로서는 이제 이해관계가 달라졌다고 해서 입장을 바꿀 명분이 없는 처지다.


“小선거구제 변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그래서 여전히 문제는 자유한국당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다 해도 선거제도 개편을 반대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여기에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3, 4, 5당들은 현행 소선거구제의 변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에 공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자유한국당만 입장을 같이해 준다면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한국 정치의 오랜 숙원은 드디어 결실을 볼 시점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순순히 응해 줄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것일까. 자유한국당은 정개특위 구성 단계부터 애를 먹이기 시작했다.

당초 여야 정당들은 7월10일 정개특위 등 6개 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할 때 정개특위는 민주 9명, 한국 6명, 바른미래 2명, ‘평화와 정의’ 1명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 뒤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이 별세해 ‘평화와 정의’가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게 되자 자유한국당은 합의 이행에 이의를 제기하며 특위 위원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 특히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기로 한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청와대 직할부대인 정의당은 정개특위에서 빠져라”라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극언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미 여야 합의가 이루어져 국회 의결까지 거친 내용을 문제 삼으며 특위 구성에 협조하지 않은 것은 몽니와도 같은 행동이었다. 이에 여야는 다시 협상을 통해 ‘민주 8명, 한국 6명, 바른미래 2명, 비교섭단체 2명’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이 한 자리를 양보해 민주평화당 몫으로 주려고 생각한 것이지만, 자유한국당은 비교섭단체 1명은 자신들이 추천해야 한다면서 여전히 특위 구성에 응하지 않고 있다.

여야 원내 정당들 간의 합의 사항조차도 무시하고 정개특위의 정상적 가동을 지연시키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이 같은 모습은, 제1야당에 주어진 책임을 생각할 때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대로 특위 구성이 지연되어 국정감사 이후로 넘어갈 경우 국회는 선거구 획정 작업은 물론 선거구제 개편 작업도 충실하게 진행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이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을 설득해 내지 못하는 여당의 정치력 부재를 탓하는 것은 너무 원론적인 얘기로 들린다. 자유한국당만 마음먹으면 정개특위는 곧바로 가동될 수 있다. 열쇠는 자유한국당이 쥐고 있고, 그래서 책임 또한 자유한국당에 묻게 된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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