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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수교 임박한 중국 노림수…곤혹스러워진 대만

“이번 합의안은 교황의 승인을 받지 않고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 7명을 승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9월22일(현지 시각) 바티칸 교황청은 뜻밖의 성명을 발표했다. 앙트완 카밀레리 몬시뇰 교황청 외교차관과 왕차오(王超)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베이징에서 주교 임명 관련 예비 합의안에 서명했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중국은 교황청이 임명하는 신부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주교를 임명해 왔다. 여기에 내세운 논리는 ‘자선자성(自選自聖)’ 원칙이었다. 그로 인해 중국에서는 관영인 천주교 애국회와 교황청이 승인한 지하교회로 가톨릭 신자가 나뉘어 있다. 현재 애국회 신도는 730만 명, 지하교회 신도는 105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간 중국 정부와 교황청은 갈등을 지속해 왔다. 수년에 걸쳐 중국 정부는 소천하는 주교를 대신해 새로운 주교 7명을 자체적으로 임명해 왔다. 교황청은 이들을 파문하는 등 강하게 대응했다. 중국 정부도 교황청이 몰래 임명한 주교를 강제 연행하는 등 ‘강(强) 대 강’으로 맞섰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교황청은 주교 7명의 파문을 철회했고 중국도 연행했던 주교를 석방했다. 양측은 계속 접촉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인 주교 서품에 관한 문제를 논의해 왔다. 이번 교황청의 발표는 수십 년 동안 대립해 왔던 양측이 마침내 절충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18일 바티칸 피터광장에서 중국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을 만나고 있다. ⓒAP 연합


 

바티칸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실제 교황청은 “합의안은 중대한 문제인 주교 임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양자 관계에서 더 큰 협력을 위한 환경을 창출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0월3일에는 중국 주교 2명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했다. 중국 주교가 세계주교회의에 참석한 것은 무려 56년 만이다. 특히 참석자 중 궈진차이(郭金才) 청더(承德)교구 주교는 중국 정부가 임명했다. 물론 이번엔 교황청이 승인한 성직자다. 과거에는 발도 붙이지 못했던 주교가 회의 석상에 당당히 참석한 것이다.


中-바티칸 ‘훈풍’에 대만 긴장하는 까닭

최근 움직임과 관련해 중국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베이징 외교가 소식통은 “중국은 ‘자선자성’ 원칙은 고수하되 임명되는 주교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교황청에 줄 것으로 보인다”면서 “교황청이 따로 임명한 주교의 지위도 인정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바티칸과 관계 정상화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바티칸과의 수교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을까. 가장 큰 배경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손꼽을 수 있다. 바티칸이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유럽 국가이기 때문이다.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면적이 0.44㎢에 불과하고 이탈리아 로마 안에 위치한다. 하지만 교황청은 바티칸 시국뿐만 아니라 로마 성청을 다스린다. 무엇보다 세계 곳곳의 가톨릭교회와 성직자, 신도를 통솔한다. 가톨릭 신도가 많은 서유럽과 중남미에서 바티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바티칸 또한 중국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 신도 수는 줄어들고 있다. 교황청은 지난 수년 동안 연이어 폭로되는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으로 인해 곤경에 빠져 있다. 만약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이런 현실을 뒤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당장 중국 내 1050만 명이나 되는 가톨릭 지하교회 신도들을 합법적으로 챙길 수 있다. 중국에서 가톨릭 교세를 대폭 확장하고 새로운 신자를 늘릴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지금까지 대만은 바티칸과 외교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면서 유럽에 교두보를 마련해 왔다. 따라서 바티칸이 중국과 수교해 외교관계가 단절된다면 그로 인해 대만이 받을 타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2016년 5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집권한 이래 중국의 외교적 공세는 아주 거셌다. 지난 2년 동안 상투메프린시페,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등이 줄지어 대만과 단교했다. 8월엔 엘살바도르가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다. 현재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는 나라는 17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중국이 대만을 고립시키는 이유는 차이 총통과 집권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외교적인 방법으로 독립 성향이 강한 차이 총통과 민진당에 타격을 입히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9월 대만 ‘연합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7.6%가 차이 정부의 대중국 관계 처리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는 차이 총통이 집권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비슷한 시기 대만민의기금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차이 총통의 정책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이 54.5%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5월 필자가 10일 동안 대만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각계각층의 대만인들도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고립되는 자국 현실을 우려했다.


일각 “교황청-대만 외교관계 유지” 전망

오는 11월엔 대만의 양대 선거 중 하나인 통일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만약 선거를 앞두고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다면 그 후폭풍이 선거판을 휩쓸 수 있다. 물론 현재까지 교황청은 대만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일각에선 교황청이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은 이를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티칸이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끊을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

천르쥔(陳日君) 홍콩 추기경은 교황청과 중국 정부가 주교 임명에 관한 예비 합의안에 서명한 직후 대만과의 단교 가능성을 언급했다. 물론 일부 신도들은 이번 합의가 교황청이 중국 정부에 굴복하는 것이고,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온 중국 내 가톨릭 지하교회 신자들을 중국 정부에 팔아넘기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천르쥔 추기경도 합의안에 우려를 표하며 “중국 내에서 종교 탄압이 점점 심해지는 마당에 어떻게 중국과 이상적인 협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바티칸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는 막지 못할 전망이다. 중국 선교에 적극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즉위 직후부터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크게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지난 3년 동안 바티칸과 중국은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협의해 왔었다. 여기에 중국의 대만 고립화 정책이 더해지면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접합점을 찾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를 발표하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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