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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16화 - 역사란 우연의 산물일까, 필연적인 결과일까

노벨상 시즌이 막 지나갔다. 필자는 이번에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인 교수의 "운이 좋았다"란 소감을 접하면서 문득 "모든 것은 우연의 결과였다"고 말한 같은 일본인 수상자가 떠올랐다. 20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 얘기다. 중소기업 연구원이던 그는 실험실에서 우연히 단백질의 질량 측정법을 알게됐다고 밝혔다.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뢴트겐의 X선이나 플레밍의 페니실린 역시 우연히 발견된 과학적 성과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우연한' 발견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역사도 다를 바 없다. 독일 통일은 동독의 한 정치국원이 엉겁결에 "지금 당장"이란 말을 내뱉은 데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동독 주민들의 서독 여행 자유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TV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동독 청년들은 '당장'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다. 이어 20세기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히는 장벽 붕괴 장면이 연출됐다. 우연한 말 한마디가 독일 통일을 앞당긴 셈이다.


영국 식민지인 나라들에서 '우연히' 역사를 바꾸게 된 '작지만 큰' 사건들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처럼 작고, 엉뚱하고, 우연한 사건들이 종종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영국 식민지인 인도에서 일어난 '소독약 사건'도 그 중 하나다. 1897년 인도 중서부에서 영국인 관리이자 방역 책임자인 월터 랜드와 에이어스트 중위가 피살됐다. 뿌네라는 지역에 전염병이 돌자 식민당국에서 집집마다 방문하여 소독약을 뿌리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영국인들은 집안에 들어가 불상 등 집기를 꺼내 소각하고 여성 환자들을 따로 격리시켰다. 그러자 인도의 전통적인 가정생활을 파괴하는 것으로 여긴 차페카 형제 일당이 거리에서 이들을 살해한 것이다.

이후 뿌네에서는 영국인 징세관을 저격하거나 총독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사건들이 연속됐다. 18살 소년 깐에르는 치안판사 잭슨을 살해하기도 했다. 1900년대 들어 이런 '의거'는 다른 지역이나 심지어 국외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했고 점차 조직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벵골 지역에서만 영국인과 인도인 관리 30명 정도가 피살됐다. 엉뚱하게도 인도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소독약 사건'은 의열항쟁의 막을 여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차페카 형제의 동상과 이 사건을 소재로 2016년 개봉된 영화 포스터 (사진 제공 = 이원혁)

 

영국군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906년 딘샤와이라는 지역에서 '비둘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생계수단으로 기르는 식용비둘기를 지나가던 영국군 장교들이 총질을 하며 사냥하자 분노한 농민들이 막대기를 들고 군인들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영국군인들이 총을 발사해 한 여성이 치명상을 입었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런 와중에 농민들에게 포위된 군인 한 명이 도망치다가 더위에 탈진해서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영국군은 이 사건을 민족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은 적대행위로 간주해 마을 주민 52명을 체포했다. 군법재판이 열렸는데 4명은 교수형, 나머지는 종신형, 채찍질형을 선고받고 공개 집행됐다.

이처럼 가혹한 처벌은 이집트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신문에선 영국을 맹비난했고 민중시인들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를 지어 배포했다. '나일강의 시인'으로 불리는 하피즈 이브라힘은 "영국인들이 비둘기가 아닌 사람을 사냥했다"라는 내용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영국인 고문관 크로머 경과 그의 비인도적인 처사를 비난하는 '마왈스'라는 발라드 곡이 인기를 끌었고,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도 무대에 올랐다.

'비둘기 사건'은 이집트인들의 반영 의식이나 민족주의 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이는 곧  무스타파 카밀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자들이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어 1882년부터 이집트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크로머 고문관이 본국으로 소환됐고, 그보다는 훨씬 온건한 엘든 고르스트 경이 신임 고문관으로 부임했다. 마치 3.1운동 이후 일제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강압적인 무단통치를 종식하고 문화통치를 표방한 경우와 닮은꼴이었다.

 
딘샤와이 농민 처형 장면과 이 사건을 확산시킨 대표적인 민중시인 하피즈 이브라힘 (사진 제공 = 이원혁)

 

한반도에서 3.1 만세시위가 일어난 1919년 영국의 또 다른 식민지 미얀마에서는 난데없는 '신발 사건'이 벌어졌다. 유럽관광객들이 만들레이에 있는 인더야 사원에 신발을 신은 채 입장했다. 미얀마에서 신발을 신고 불당에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불경한' 행위였다. 성난 스님들과 유럽인들이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는데, 식민당국은 스님들만 네 명을 체포했다. 더욱 기막힌 일은 우 케따야란 스님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종신형에 처한 것이었다. 사실 3년 전에도 영국인들이 양군 사원에서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불교계에서 '신발 금지법' 제정을 요구했지만 식민당국은 이를 거부했었다. 

안 그래도 불교국가에 기독교를 들여온 영국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터였다. 마치 '울고 싶은데 빰을 때려 준 격'으로 미얀마 곳곳에서 편파적인 판결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그제야 다급해진 식민당국은 사찰 경내에선 신발을 벗도록 법을 제정해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스님들은 불교 민족주의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이들은 영국상품 불매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식민본국에 자치권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얼핏 작고 사소한 '신발 사건'은 미얀마 전역에서 반영투쟁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소독약' '비둘기' '신발' 사건들은 영국이 식민지인들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려 들지 않은데서 벌어진 일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할 터인데 미얀마나 이집트에서 로마법을 강요하다 보니 사달이 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사건들이 '왜 하필 영국 식민지에서 빈번했고, 또한 약 10년을 주기로 반복됐을까'란 의문이 든다. 

 
지난 9월 태국 불교사찰을 찾은 유럽관광객들이 신발을 벗고 있다. 지금도 동남아의 대부분 사원은 불당 입장시 탈화(脫靴)를 고수한다. 오른쪽은 신발 사건이 일어난 인더야 사원 (사진 제공 = 이원혁)

 

러디아드 키플링(1865~1936)은 이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활동한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다. 소설 《정글북》으로 잘 알려진 그는 1907년 영어권 작가로는 처음이자 가장 어린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이런 지식인 조차도 "미개한 아시아, 아프리카인에게 문명의 혜택을 베푸는 것은 백인들의 짐이다"라며 인종적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였다. 그만큼 당시 영국 사회는 '백인 우월주의'가 만연했다. 애당초 저급한 인종들의 전통 따위는 무시했기 때문에, 세 사건은 결국 터질 것이 터진 셈이고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반도 평화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역사학자 E. H. 카는 "우연으로 취급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역사적 사실은 그저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생길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란 의미로 풀이된다. 따지고 보면 딘샤와이 마을 사건은 영국군이 이집트를 무력으로 다스리며 국민들의 분노를 산 데서 일어났고, 인도 소독약 사건도 영국 상품을 보이콧하는 스와데시 운동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발생했다. 신발 사건 또한 인도에게만 자치권을 허용한 영국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반감이 이미 자락을 깔아놓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독일 통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가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위한 '동방정책'을 펼치는 등 끊임없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덕분일게다. 이렇듯 역사를 바꾼 일들은 어느날 불쑥 찾아오는게 아니라 그동안 진득하게 쌓여진 노력들이 마치 우연처럼 보이며 등장한 것이지 싶다.

북핵에서 시작된 한반도 위기 상황이 어느 순간 평화의 기대감으로 들떠있는 요즘이다. 이참에 역사의 흐름을 평화와 통일 무드로 바꾸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데 뭔가 개운치가 않다. 이런 갑작스런 기대감이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우연처럼 보이며 등장한 '필연적인 결과' 때문인지는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훗날 역사는 지금 한반도에 불쑥 찾아온 '훈풍'을 뭐라 기록할까. 이 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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