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자료 단독입수…최고액 500만원 육박
국내 초·중·고교에서 최근 3년 사이 1000번 가까운 해외여행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학생 1인당 경비가 100만원 이상인 고액 여행은 300건이 넘었다.
시사저널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교육부로부터 단독 입수한 '최근 3년여간 수학여행 학생 경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학생 1인당 경비가 100만원이 넘는 고액 해외여행을 다녀온 초·중·고교는 총 184개교(연도에 따른 중복 포함), 300건(한 학교에서 여러 팀으로 나눠 가는 경우 포함)이었다. 이 기간 전체 학교 해외여행(965건)의 31%에서 100만원 이상 경비가 책정됐다.
100만원 이상 고액 해외여행 184개교, 300건
지난 9월11일 시사저널은 2016년 현황 자료를 교육부로부터 단독 입수해 학교 해외여행 실태를 보도했다.(☞ 기사 참조) 당시 교육부는 2017년 이후 현황은 아예 파악하지 않아, 고액 학교 해외여행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사저널 보도가 나온 뒤에야 부랴부랴 2017년 1월부터 올해 8월 현재까지의 최신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마저도 일부 학교를 누락한 채 허술하게 취합해 '졸속 교육행정'이란 비판을 여전히 피할 수 없게 됐다.
교육부 자료에 기반해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진행된 고액 학교 해외여행을 금액별로 추려보면 10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이 230건, 2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이 40건, 300만원 이상이 30건이었다. 학생 1인당 해외여행 경비가 100만원 이상인 건수는 2016년 94건에서 2017년 122건으로 늘었다. 올해 데이터의 경우(1~8월 합계 84건) 아직 본격적인 수학여행 시즌이 미포함된 것을 고려할 때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이를 넘어설 여지가 있다.
학교 급별로 구분하면 100만원 이상 해외여행 건수는 초등학교에서 61건, 중학교에서 26건, 고등학교에서 213건으로 고등학교가 가장 많았다. 자립형사립고(자사고)·특수목적고(특목고)를 비롯한 소위 '명문고'가 대부분이었다. 초·중·고교 소재지별로는 경기도(94건), 서울특별시(73건), 충청남도(20건), 부산광역시·인천광역시(각 18건), 울산광역시(15건), 전라북도(11건) 등 순이었다.
해당 기간 최고액은 세종특별자치시 A 특목고의 446만원으로 기록돼 있었다. 2016년 과학예술 탐방 목적으로 다녀온 9박10일 미국 여행이다. 이 학교가 여행팀을 두 개로 나눴다는 사실은 교육부 자료에서 빠졌다. 기간과 나라가 같은 여행이었으나 한 팀은 477만원, 다른 팀은 416만원으로 60만원 차이 났다. 교육부는 두 팀 경비의 평균(446만원)을 최신 자료에 기재했다. A 고교는 2017년과 올해도 1인당 각각 396만원, 386만원짜리 해외여행을 진행했다.
이 밖에 경기도의 B 특목고(2017년, 425만원), 강원도의 C 자사고(2018년, 394만원), 대전광역시의 D 특목고(2016년, 368만원) 등이 고비용 순위에서 상위에 올랐다. 이 학교들 역시 매년 고액 해외여행 일정을 이어왔다.
그런데 교육부의 최근 3년여간 자료에선 2016년 최고액을 기록한 강원도 공립 일반 E 고교(487만원), 3위였던 전남 공립 F 초교(438만원)가 누락됐다. 경기도 B 특목고의 2016년 금액은 이 학교 총 5개 해외여행팀 평균(387만원)보다도 낮은 368만원으로 기록됐다. 당시 B 고교 해외여행팀 중 최고액은 405만원이었다. 게다가 시사저널은 추가로 교육부 데이터에서 빠진 학교들을 다수 확인했다. 이를 감안하면 2016년 1월~올해 8월 중 100만원 이상 고액 학교 해외여행은 자료(184개교, 300건)보다 더 많아진다.
'깜깜이 大入 수시' 속 해외여행 활발…멍드는 교육현장
100만원 이상, 많게는 500만원 가까이 되는 학교 해외여행 경비를 향한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또 상당수 고비용 해외여행은 지원자를 받아, 학생 일부만 데리고 가는 식이다. 금전적 이유 등으로 해외여행에 참가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상처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 한 고등학생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여행비용이 웬만한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보다 비싼 수준"이라며 "못 가는 아이들은 당연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해당 학생 가정에서는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부모와 자식 사이 벽이 생기는 등 문제가 생길 소지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여행사와 학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 "이래서 자식을 낳기 싫다"는 등 극단적인 성토도 쏟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비용 해외여행이 줄기는커녕 해마다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차적인 원인은 많은 학교·학부모가 해외여행을 원하는 분위기다. 원흉은 '불신 덩어리' 대입(大入)이다. 초·중·고교가 다녀온 100만원 이상 해외여행의 주제는 '문화 탐방' '해외 대학 탐방' '진로 체험' '외국어 실습' '국제 교류' 등으로 다양하다. 이런 명분으로 다녀온 해외여행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7월25일 발표한 '2019학년도 수시모집 요강 주요 사항'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은 내년 봄 신입생(34만7478명) 중 76.2%인 26만4691명을 수시모집으로 뽑는다. 1997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이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이다. 수시모집 가운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32.1%(8만4860명)다. 특히 소위 '인(in)서울'로 불리는 서울 소재 대학들의 학종 선발 비중이 상당히 높다.
학종은 학생부에서 동아리·수상경력·봉사·독서활동 등 비교과 영역도 종합 판단해 선발하는 전형이다.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 온 학생들이 유리하다지만, 평가 근거나 기준 등이 모호해 '깜깜이 전형'이라 비판받기도 한다. 학교 해외여행이 바로 이 학종과 관련 있다.
교육부가 배포한 '2017년 학생부 기재 요령'을 살펴보면 해외 체류 경험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입할 수 없다. 학교 단체여행이든, 개인이 간 봉사활동이든 관계없이 못 쓴다. 해외 봉사활동에 한해 입력을 금지했던 기존 규정이 지난해 7월 개정됐다.
제도의 실효성은 미미했다. 암암리에 해외 경험을 학생부에 적는 꼼수가 있다고 교육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고등학교들이 교내 보고서 경진대회를 열어 학생에게 시상하는 식이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학생들에게 그 나라와 관련한 보고서를 내도록 한 뒤 내부적으로 상을 준다"면서 "학생부에 해외여행을 갔다고 적을 순 없지만, 관련 보고서로 상을 받았다고는 적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예외 규정이 모호하게 서술된 것도 사각지대를 키우는 데 한몫한다. 학생부 기재 요령은 '학교장이 승인한 경우'에 한해 외부 활동을 기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애매하게 예외 사항을 둬서 알게 모르게 다 적고 있다"며 "현행 제도에 구멍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입학사정관들에게 보내는 학교 소개글에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명시하는 '우회 전략'도 있다.
그러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진짜 대입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누구도 명확히 하지 못한다. 서울의 한 특목고 교사는 "해외여행 경험이 대학 진학에 직접적으로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는 말 못 한다"면서도 "(명문고들 사이에) '옆에서 간다는데 우리만 안 갈 수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있어, 앞으로도 학교 해외여행이 늘면 늘었지 줄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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