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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회의 ‘커피有感’] 핸드드립 2~10일, 에스프레소는 10~14일에 가장 이상적인 맛

최근 들어 원두를 직접 사가는 고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만큼 가정과 직장에서 자기만의 추출법으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원두를 구매한 고객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은 얼마 동안 마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궁금했던 것은 식품위생법상 유통기한이 아니라, 원두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 원두라고 불리는 볶은 커피는 생두(生豆)와는 다르게 기간이 오래 지나도 여간해서 썩거나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외관상 크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에 포장용기에 쓰여 있는 볶은 날짜를 보지 않는 한 볶은 지 얼마나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중간 볶음 이상의 원두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가스가 빠지는 과정 중에 커피 기름도 배어 나오므로 원두 표면의 기름기가 많으면 볶은 지 꽤 됐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다만, 강하게 볶은 커피는 기름이 바로 배어 나온다는 점을 알아두자. 어찌 되었건 원두는 다른 음식과는 다르게 상하지 않으므로 식품위생법상 유통기한을 1년 이상 정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시중에 유통되는 상당수의 원두는 유통기한이 2년씩이나 된다.

 

© freepik

볶은 지 2년 넘은 커피 원두 버젓이 판매돼

 

앞서 언급했지만, 원두를 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기간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기간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우리가 커피를 소비하는 것은 코를 킁킁거리게 하는 구수하고 향긋한 향과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니만큼 기대하는 향과 맛이 변질된 커피는 더 이상 그 이름값을 할 수 없다 하겠다. 그렇다면 볶은 커피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우선 추출 방법에 따라 그 기간은 달라진다. 핸드드립의 경우에 가장 짧고,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그 기간이 가장 길다. 특히나 핸드드립은 프렌치프레스·모카포트·에어로프레스·에스프레소 머신 등과는 다르게 시각적인 맛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그 이유는 커피가 추출되는 상황이 외부로 노출돼 있고, 사람의 손이 가장 많이 가며, 추출 시 기대하는 시각적인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커피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는 맛과 향이다. 사람에 따라 맛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맛보다는 향의 가치를 높게 두기도 한다. 생두를 볶으면 그 과정에서 물리적·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물리적 변화로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질량이 10~20% 줄어들고, 반대로 부피는 50~60% 정도 커지게 되며, 색상은 옅은 푸른빛에서 노르스름한 색을 거쳐 짙은 갈색으로 변화하게 된다. 화학적 변화로는 단백질의 변화를 일컫는 메일라드 반응(Maillard Reaction·갈변)과 지방의 변화로 휘발성 커피향이 생성되며, 산(酸)의 변화로 인해 커피의 신맛이 결정된다.

 

상식적으로 바로 볶은 커피가 가장 맛있을 것 같지만, 커피는 볶은 후 10~12시간 정도 지나야 로스팅 중 원두 조직 내부에 생성된 가스가 배출돼 비로소 추출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된다. 물론 이때도 여전히 원두 내부에는 가스가 남아 있다. 커피 향은 볶은 후 하루 정도 지나야 활성화되고, 점차 향이 증가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향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는 보관 상태와 분쇄 여부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완전 밀폐된 용기나 한 방향(One way) 밸브가 달린 봉투에 보관을 해야 하며, 필요할 때마다 분쇄해 추출해야 한다.

 

몇 가지 추출방법에 따른 볶은 커피의 맛있는 유통기한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핸드드립의 경우, 볶은 후 2일부터 10일까지가 좋다. 핸드드립 시 커피 표면이 봉곳이 부풀어 오르는, 흔히 말하는 ‘커피빵’을 보고 싶다면 원두는 신선할수록 좋다. 기간이 지날수록 가스가 많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커피빵의 모양 또한 나빠지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하는 경우, 최소한 일주일 이상은 가스를 배출한 후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볶은 후 10일 정도 지난 커피를 매장에서 쓰고 있다. 경험상 볶은 후 10~14일 정도가 이상적인 에스프레소를 얻는 데 적합했다. 프렌치프레스와 에어로프레스, 그리고 모카포트의 경우 볶은 후 2일부터 21일까지가 큰 무리 없는 커피 맛을 내는데, 개인적으로 3~14일 정도 된 것을 선호한다.

 

 

냉장고 보관은 최악의 볶은 커피 보관법

 

볶은 커피를 보관하는 것 또한 추출 시 커피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악의 경우는 분쇄한 커피를 완전 밀폐되지 않은 종이봉투에 넣어 습한 냉기가 가득 찬 냉장실에 보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는 커피가 아닌 방향·방습제가 되는 것이다. 냉장실 안의 온갖 음식 냄새가 커피에 배어 오만 가지 음식 맛이 나는 고약한 커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웃을 일이 아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분쇄한 커피를 냉장실에 아무렇게나 보관하는 것을 봤다. 신선한 볶은 커피를 분쇄하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 밀폐한 후, 그늘지고 서늘하며 건조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는 커피 밀(Coffee mill) 한 개쯤은 구비하는 것이 좋다. 편의상 로스터리 카페나 대형마트에서 분쇄한 커피를 구매하는데, 이럴 경우 공기와 접촉하는 표면적이 넓어져 산패 속도가 빨라지고, 몇 시간만 지나도 내부의 가스가 빠져나가 향 손실이 크고 맛 또한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친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전동 커피 밀이 필수적이지만, 그 외의 추출방법은 수동식 커피 밀만으로도 충분하다. 수동식 커피 밀의 경우, 인터넷에서 2만~3만원이면 충분히 구매가 가능하므로 커피를 더 신선하고 멋스럽게 마시기 위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커피는 사랑을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는 만큼 그 사랑이 귀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듯, 커피 또한 얼마나 애정을 갖고 대하느냐에 따라 그 속에 숨겨둔 오묘한 맛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 맛있는 커피를 위해 조금 더 불편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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