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근거 없는 왜곡된 건강 상식 백태(3)
불과 100년 전 라듐은 화장품·스타킹·치약 등의 원료로 사용됐다. 방사능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당시에 라듐은 질병 치료와 미용에 좋은 물질이라는 게 상식으로 통했다. 라듐의 위험성을 깨닫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이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있다. 만인의 관심사인 건강에 대한 얘기는 더욱 그렇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건강 상식이 누군가의 경험에 업체의 상술까지 더해져 왜곡된 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진다. 사실과 다른 얘기가 뇌리에 똬리를 틀면 어느새 건강 상식으로 통한다. 왜곡된 건강 상식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예컨대 간에 좋다는 특정 식품으로 간 기능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시사저널은 의사·식품학자·약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시중에 떠도는 잘못됐거나 왜곡된 건강 상식을 바로잡기 위한 기사를 여러 회에 걸쳐 게재한다.
#탄수화물은 비만의 주범이다?
탄수화물 섭취를 당장 끊으면 일시적으로 살이 빠지므로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한때 ‘저탄수화물-고단백질’ 다이어트가 유행하기도 했다. 살이 찌는 것은 탄수화물의 문제가 아니라 섭취하는 총열량의 문제다. 비만이 걱정이라면 탄수화물이 아니라 전체 음식 섭취량을 줄이야 한다. 그렇다고 식사량이 너무 적으면 어느 순간 폭식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에 따라 요요현상도 생긴다. 일반적으로 현재 식사량의 3분의 1 정도를 줄여도 되지만 자신에게 맞는 열량과 섭취량을 확인하려면 전문의와 상담해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견과류를 많이 먹으면 피가 깨끗해진다?
견과류를 적당히 먹으면 혈액순환에 좋다. 그러나 견과류의 식물성 지방도 기름이므로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이런 의미에서 비만한 사람은 견과류 과잉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지방흡입술은 비만을 치료하므로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지방흡입술은 피하지방(피부 밑 지방)을 없애는 것이어서 미용상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건강 문제와 직결된 내장지방까지 제거하지는 않는다.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내장지방을 줄여야 한다. 피하지방과 내장지방은 자신의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다시 생긴다. 생활습관 개선이 지방흡입술보다 더 효과적인 비만 탈출법이다.
#특정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건강 유지에 단백질과 식이섬유는 필수다. 단백질의 대표적 음식은 고기와 콩이고 채소는 식이섬유의 보고다. 채소에는 식이섬유 외에도 미세영양소가 풍부하고 특히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항산화 성분이 있다. 이런 점을 강조하며 질병을 특정 음식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식품 광고가 범람한다. 그러나 음식으로만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평소에는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하지만 일단 병에 걸리면 약으로 치료하고 음식은 치료 효과를 높이는 보조수단이다. 예를 들어 당뇨를 음식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누에나 양파 등 혈당을 낮춘다는 음식이 있지만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당뇨 전 단계(내당장애)에 음식은 약간 도움이 되지만 당뇨로 발전한 후에는 음식만으로 치료하기는 어렵다.
#폐암을 음식으로 예방한다?
미세먼지가 자주 찾아오는 시기에는 삼겹살이 호흡기 건강에 도움이 된다거나 비타민 E가 폐암 발생을 줄여준다는 소문이 돈다. 결론부터 말하면 특정 음식이 폐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며 의학적으로 확인된 바도 없다. 폐암 예방에 효능이 있다는 음식을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식생활이 바람직하다.
#라면은 건강에 나쁜 식품이다?
라면이 무조건 건강을 해치는 식품으로 인식이 굳어진 것은 가공식품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라면은 영양을 잘 맞췄고 MSG(글루탐산나트륨)도 거의 없어서 한 끼 식사대용으로 유용하다. 문제는 라면을 주식이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경향에 있다. 하루 세끼 외에 간식으로 라면까지 먹으면 하루 섭취 총열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비만으로 이어진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기 위해서 라면 국물을 다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우유는 위벽을 보호한다?
과거에는 위궤양이 있는 사람에게 우유를 먹으라고 했다. 우유가 위벽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우유에 있는 칼슘 등은 위장의 산도를 높이므로 궤양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뇨병 예방을 위해 단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단 음식을 안 먹으면 혈당이 떨어지므로 당뇨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무조건 혈당을 낮추면 세포에 당이 부족한 상태가 되고 그만큼 대사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고갈된 몸 상태가 된다. 성인이 걸리는 당뇨란 당을 운반하는 물질(인슐린)에 문제(인슐린 저항성)가 생겨 당이 근육과 세포로 공급되지 못하고 혈액에 쌓이는 병이다. 단 음식을 많이 먹을 필요는 없지만 당뇨 예방을 위해 단 음식을 끊는 것도 건강에 이롭지 않다.
#소시지 등 육가공식품과 육류는 발암물질이므로 먹어선 안 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가공육(소시지·햄·베이컨·육포 등)과 적색육(소·돼지·양고기 등)을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10개국 22명의 전문가가 육식과 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800여 편의 연구 결과를 분석한 후 내린 결론이다. IARC가 문제로 삼은 가공육 섭취량은 50g 이상이다. 햄·소시지·베이컨 등을 매일 50g 먹을 때 대장·직장암 발생 비율이 18%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50g은 햄 1캔(200g)의 4분의 1 수준이고, 핫도그용 소시지 1개, 비엔나소시지 4개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또 적색육은 매일 100g 섭취할 때 대장·직장암 발생 비율이 17%씩 높아진다. 100g은 작은 안심 스테이크 분량이다. 그러나 일반인은 이보다 적은 양을 섭취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0~12년)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은 적색육을 하루 평균 56g, 가공육은 6g 섭취한다. 따라서 육류와 가공육을 많이 먹을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이해하면 된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가공육을 먹는다고 해서 암에 걸린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매운 음식은 혈압을 올린다?
매운 음식(캡사이신)과 고혈압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매운 음식은 대부분 짜다는 게 문제다. 짠 음식(나트륨)이 혈압을 올리는 주범이다. 또 달거나 기름진 음식이 혈압 상승과 관련이 있다. 단 음식은 열량이 높아 체내 중성지방 축적을 촉진하고 기름진 음식은 콜레스테롤이 많아 혈관 건강에 좋지 않다.
#안경을 끼면 시력이 빨리 나빠진다?
안경은 한번 쓰면 눈이 계속 나빠지므로 되도록 안경을 벗고 생활해야 시력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안경은 시력 교정 도구일 뿐이지 시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안경을 끼면 시력을 교정하고 눈의 피로가 줄어든다. 특히 아이의 눈이 나빠졌는데도 안경 착용을 미루면 눈이 더 나빠지고 눈에 피로가 쌓여 눈 건강에 해롭다. 아이의 시력에 이상이 있다 싶으면 안과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안경 착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안경을 써야 한다면 안경의 도수가 높거나 낮지 않도록 잘 맞춰 착용하는 게 아이의 시력을 보호하는 길이다.
#라식수술을 하면 노안이 빨리 온다?
라식수술과 노안은 관계가 없다. 라식수술은 레이저로 각막을 깎아 눈의 굴절률을 변화시키는 수술이고 노안은 각막보다 안쪽에 있는 수정체가 딱딱해지면서 탄력을 잃어 조절 기능이 저하되는 노화 현상이다. 라식수술을 받아 먼 곳을 잘 보게 되면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이 잘 보이지 않아 노안이 심해진 것으로 느낄 뿐이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장시간 사용하거나 흔들리는 버스, 지하철 등에서 책을 읽는 등 눈 건강에 해로운 생활습관으로 눈의 피로가 가중돼 노안이 빨리 올 수 있다.
#안약을 넣고 눈을 깜박이면 안약 흡수가 더 잘된다?
안약을 넣고 눈을 깜박이면 눈꺼풀에 있는 눈물구멍을 통해 코로 배출되므로 약의 효과가 반감된다. 안약을 넣고 10초 정도 눈을 감고 기다리는 편이 약 흡수에 좋다.
#눈 충혈은 안약으로 빨리 치료해야 한다?
과거의 안약은 혈관수축제와 항염증 물질(스테로이드)이 함유된 제품이었다. 그런데 스테로이드가 녹내장을 일으켜 실명에 이르게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후 스테로이드는 안약 성분에서 제외됐지만 혈관수축제는 여전히 안약 성분으로 사용한다. 혈관수축제는 눈의 혈관을 좁혀 일시적으로 충혈을 해소하지만 장기간 사용할 경우 혈관이 수축하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안약의 장기적인 사용은 만성 충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경과 선글라스는 클수록 좋다?
안경테가 크면 안경렌즈의 초점이 눈의 중심보다 바깥으로 쏠려 눈이 더 피로해진다. 굳이 안경렌즈를 크게 할 필요가 없다. 안경이 클수록 귀와 코에 부담이 가중될 뿐이다. 다만 다초점렌즈를 사용한 안경은 너무 작으면 곤란하다. 아랫부분을 볼 때 시야 확보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목적이므로 커도 무방하다.
#선글라스는 색이 진해야 자외선을 잘 막을 수 있다?
햇볕의 자외선은 눈 건강에 해롭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그러나 선글라스 색상이나 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색이 진할수록 자외선을 잘 차단할 것 같지만 자외선 차단은 자외선 코팅과 관련이 있다. 선글라스 렌즈에 자외선 차단 코팅을 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요즘은 자외선 차단 코팅이 돼 있고 색상이 없는 투명한 선글라스도 나와 있다. 선글라스 렌즈의 색상이 짙을수록 눈의 동공은 커진 상태가 되므로 자칫 자외선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 렌즈의 자외선 코팅은 해를 거듭할수록 벗겨지므로 3~4년마다 렌즈를 교환하는 게 좋다.
#전동칫솔이 일반칫솔보다 우수하다?
관련 연구가 많다. 그 결과들을 종합하면 별 차이 없다가 중론이다. 어떤 칫솔을 사용하느냐보다 얼마나 꼼꼼히 칫솔질하느냐가 중요하다. 다만 일부 노인 등 손가락 움직임이 정교하지 못해 치아 구석까지 닦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전동칫솔 사용이 유리하다.
#치약보다 소금으로 이를 닦는 게 좋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소금이 일시적으로 염증을 가라앉히므로 개운한 느낌이 들 뿐이다. 굳이 소금을 사용하겠다면 기본적으로 치약으로 칫솔질하고 소금은 보조적으로 양치(입가심)하는 정도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부러 굵은 소금으로 치아를 문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굵은 소금에 의해 치아가 손상될 수 있으므로 옳지 않은 방법이다. 한편 구강청결제는 치아 건강 유지에 도움을 준다.
#담배를 피우고 초콜릿, 커피, 콜라를 마셔도 칫솔질만 잘하면 치아 변색은 일어나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면 치아 뒤쪽이 까맣게 착색된다. 초콜릿, 커피, 콜라를 마셔도 치아는 누렇게 변한다. 그렇다고 그런 식품을 아예 먹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런 음식을 섭취한 후에는 치아 건강을 위해 양치질을 하는 게 좋다. 특히 콜라 등 산성 식품을 먹었을 때는 먼저 물로 입안을 헹군 후 칫솔질을 하는 게 치아 건강에 이롭다. 산성은 치아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능성 치약이 일반 치약보다 좋다?
과학적 근거가 없다. 비싼 치약이나 값싼 치약이나 칫솔질 효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알갱이가 큰 치약은 치아를 마모시키므로 피하는 게 좋다. 참고로 치약은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치아 건강에 더 좋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치약은 적당하게(콩알만큼) 사용하는 게 이상적이다.
도움말씀 주신 분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김광현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김성진 세명약국 약사
김수인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영주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
김철수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원장
김태민 식품․의약품 전문 변호사
김태임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박수아 맑은약국 약사
박순섭 국립암센터 간암센터 전문의
변지연 이대목동병원 피부과 교수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지원센터장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양광모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교수
유재두 이대목동병원 정형외과 교수
유재욱 유재욱재활의학과의원 원장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동훈 세브란스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
이정원 서울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
이주혁 키스유성형외과 원장
이진화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장윤정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실장
최낙언 식품업체 시아스 이사
편욱범 이대목동병원 심장혈관센터 교수
삼성서울병원 임상영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