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 “트룩시마 유럽 승인은 전략과 기술의 승리”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이사(56)는 지난해 12월18일 일요일 아침 인천 송도 본사로 달려갔다. 유럽으로부터 날아온 희소식에 일산 집에서 송도까지 가는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유럽의약품평가위원회(CHMP)가 셀트리온의 2번째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에 대한 유럽 판매 승인을 권고한 것이다. 기 대표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해낼 때마다 성취감이 주는 설렘을 즐긴다. 그는 “설렘은 기쁨·기대와 함께 두려움도 섞인 감정이다. 실패를 생각하면 잠자기도 힘들다. 설렘은 임직원의 땀이 결실로 이어지게끔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승인에 필요한 서류작업을 총괄한 팀장을 불렀다. 출산하기 위해 분만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노트북을 놓지 못했던 팀장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소식을 듣자마자 기 대표를 회장실로 불렀다. 서 회장은 기 대표에게 고생한 임직원을 대신 치하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 대표는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서 회장을 만났다. 당시 서 회장은 차장이었다. 이 인연이 훗날 셀트리온 창업으로 이어졌다. 기 대표는 이제 트룩시마의 미국 판매 승인 절차에 집중하고 있다. 트룩시마가 미국 판매 승인을 받으면, 셀트리온은 램시마와 트룩시마 2개 제품을 갖게 된다. 유럽과 미국 동시 판매 승인 절차에 들어간 허쥬마(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까지 가세하면 5년 안에 연매출 10조원, 영업이익 5조원 달성이라는 셀트리온의 경영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온다. 1월5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셀트리온 스킨큐어 집무실에서 기 대표와 인터뷰했다. 지난해 3월에 이어 두 번째 인터뷰다.
트룩시마 유럽 판매 승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혈액암 항암제 트룩시마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셀트리온이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와 전략을 트룩시마 판매 승인 절차에 쏟아 부었다. 트룩시마는 셀트리온의 두 번째 바이오시밀러다. 관절염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개발할 때는 품질이나 임상시험 면에서 글로벌 전문가에게 많이 의존했다. 국내에 관련 업무를 수행할 바이오 전문인력이 없던 탓이다. 이번엔 한국 기업이 가진 강점을 살려 트룩시마 개발과 승인을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램시마에 이어 연타석 홈런이라고 평한다.
셀트리온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가 많이 발전했다. 화이자·머크·테바 등이 셀트리온보다 1~2년 앞서 리툭시맙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들어갔다. 셀트리온은 늦게 출발한 탓에 다른 전략을 세워야 했다. 산도스 등 경쟁 업체보다 2년 늦게 출발한 터라 임상 기간과 비용을 줄여야 했다. 임상 절차는 임상 계획을 세우고 환자를 모집해 임상 데이터를 만드는 순서로 진행된다. 임상 데이터는 유럽 EMA에 제출했다. 27개국 대표들이 데이터를 분석한 뒤 투표로 승인 권고 여부를 결정한다. 대표 전원이 트룩시마의 품질과 임상 데이터가 완벽하다고 평가해 마지막 단계인 구두 설명(OE)을 생략하고 승인 권고했다.
유럽 내 승인 업무에 투입한 실무 직원이 얼마나 되나.
셀트리온 직원만 270~280명을 투입했다. 유럽 판매 승인 담당자만 그 정도다. 외부 컨설팅 직원은 없다. 외국 기관에서 허가받으려면 영문 자료만 1톤 트럭 한 대 분량을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제약 관련 규제기관이 있는 나라만 140여 개국이다. 나라마다 요구사항이 달라 서류작업에 인력과 비용이 많이 투입된다.
램시마 승인 때와 많이 달랐나.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업체들은 우리가 트룩시마를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화학식이 있는 화학약품들은 복제하기 어렵지 않다. 바이오항체 약품은 우리 몸 단백질 구조에 기초하고 있는 까닭에 복제가 어려워 어느 회사도 복제에 도전하지 않으려 했다. 오리지널 의약품 회사들은 누군가 항체약품을 개발해도 생산 과정에서 하자가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텃세가 그만큼 심했다. 바이오시밀러가 여러 환자한테 투입해도 안전한가, 안전성 검사를 시행했나,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 등등 갖가지 증명을 요구했다. 램시마의 경우에도 관절염만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는데, 크론병에도 임상시험을 요구해 다시 임상을 진행해 증명해야 했다. 우리가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성공하자 다국적 회사들이 앞다퉈 바이오 시장에 뛰어들었다. 셀트리온은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서 경쟁업체들보다 유리하다.
램시마 승인받을 때 기 대표가 유럽에 가서 시험을 진두지휘했다. 이번에도 그랬나.
제휴선과 협의하기 위해 컨설팅 기초자료를 가지고 유럽에 자주 다녀왔다. 특히 임상단계에서 외국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임상시험 수탁기관)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인종과 성별, 나이를 골고루 섞어 임상시험 대상 환자를 선정한다. 환자를 모집해 자료를 만들고 CRO에게 자문을 요청한다.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허가받기 쉽지 않다. 아직까지 한국엔 승인 기관이나 자문 기업이 없다. 셀트리온이 국내 바이오시밀러의 길을 만들고 싶다.
유럽 전문가는 트룩시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유럽 EMA엔 30명가량 전문가 리뷰 그룹이 있다. 보통 이것저것 보완하라고 충고한다. 램시마 허가받을 때 소속 전문가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유럽 규제기관도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의 품질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전문가 리뷰 그룹은 트룩시마를 비판하거나 보완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임상단계에서 신약 10개 중 9개가 실패한다고 했다. 셀트리온은 실패 없이 신약 개발에 연달아 성공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과정관리다. 임상시험을 하려면 환자가 병원에 들어올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 차트에 환자 정보가 기록되면 수정이 어렵다. 셀트리온 약을 맞았는지, 다른 회사 약을 맞았는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 직원들은 해외에 장기간 자주 나간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 임상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대략 100여 개국에 직원을 파견했다. 임상시험을 많이 시행하다 보니 경험과 자료가 쌓여서 ‘이 약은 이 국가와 맞겠다’는 감이 생긴다. 우리 회사는 임상시험 비용을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약을 수주받는 입장에선 임상 기간이 길수록 좋겠지만, 우리는 단기간에 임상을 끝내야 이득이다.
트룩시마의 미국 승인 가능성은 어떤가.
셀트리온은 유럽 시장을 먼저 공략하고 미국에 들어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미국과 유럽 규제기관의 요구사항이 달라 동시에 준비하기 어렵다. 특히 미국 FDA(식품의약국)는 환자를 많이 모집해 많은 데이터를 내라고 한다. 다른 회사처럼 임상시험을 했다간 기간과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소요된다. 미국 시장에 맞추면 유럽 진출이 늦어져, 유럽에 먼저 진입하고 미국에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트룩시마가 유럽 시장 허가를 완벽하게 통과했으니 미국과도 합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맞춰 특단의 전략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