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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①] 한국학의 현주소

세계 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은자(隱者)의 나라’가 아니다. 1960년대부터 독자적인 모델로 이룬 급격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국은 2000년대 들어 ‘한류’라는 문화콘텐츠와 정보통신(IT) 분야의 주역으로서 국가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하지만 많은 세계인들 머릿속에 한국은 ‘북한의 끊임없는 핵 도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 역시 혼재돼 있다.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은 이처럼 세계사 속 한국에 대한 비교적 얕은 지식과 단편적 이해를 심화시키고 국가 이미지,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보다 개선하기 위해 시작됐다. 시사저널 기획취재팀은 세계 속 한국학의 현장을 찾았다. 미국·영국·독일·베트남 등 현지에서 한국학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지원사업 일환으로 진행됐다.​ 

 

“한국요? 알죠. IT가 발달한 아시아 국가잖아요. 삼성·LG….”

“음…, 케이팝(K-pop) 얘긴 들어봤어요. 그게 ‘Korea’의 ‘K’죠?”

“독재국가요.”

“아시아 국가니까 불교국가 아닌가요?”

2016년 미국 뉴욕 시민들이 말하는 ‘한국’ 속에는 다양한 이미지가 섞여 나왔다. 시사저널 기획취재팀은 9월 뉴욕 시민들에게 무작위로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뉴욕 시민들은 모두 “한국이란 국가를 들어봤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국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 이는 극히 드물었다. 많은 응답자들이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코리아(Korea)’라고 했을 때 ‘분쟁지역’ ‘핵’ 등 부정적인 단어를 먼저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자생적 민주화를 이룩한 중견 국가(Middle Power)로서 1980년대 중반 이후 국제사회에서 경제·문화·정치적 선도 그룹으로 주목받아왔다. 올해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6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선 26위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세계적인 이해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얕은 이해도는 한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이어지며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는 배경으로 작용할 우려를 낳는다. 
201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케이팝 공연에서 한류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국가인지도 비해 현저히 낮은 국가이해도

 오늘날 ‘한국학’의 중요성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한국학이란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연구다. 언어·문학·역사·지리·법학·사회학·인류학 등 한국에 관한 모든 연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행적인 학문 구분 없이 포괄적으로 한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의 담론도 한국학이라고 한다. 한국학은 세계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지역학(area studies) 중 하나다. 지역학이란 교통·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지고 지금까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던 인간집단이 서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발달하게 된 학문이다. 1989년 냉전 종식 이후 지역학은 이념적으로 막혀 있었던 장벽까지 무너지면서 서로가 세계시장에서 좀 더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파트너 혹은 경쟁상대가 되는 지역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한국학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 주도로 한국과 관련해 국내외, 주로 해외에서의 한국 관련 학술활동을 지원하는 등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육성됐다. 국가의 소프트파워를 증강시키기 위한 목적에 맞춰 전략적으로 육성된 측면이 강한 셈이다. 특히 1992년에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0설립되면서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한 학술 교류, 인적 교류, 문화 교류 사업에 동력이 붙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국내외 한국학 지원 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한국학’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핫 키워드로 떠오르게 됐다. 이런 흐름은 전자 및 정보 산업 분야, 케이팝이나 게임 등 분야에서 국제사회 속 한국의 약진이 시작되면서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변화와 함께 진행됐다.  

양적 성장 이어 질적 성장 이뤄야

 지금까지 한국학이 걸어온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해외에서 한국학은 동아시아 관련 학과에서 2000년대까지는 일본학, 최근에는 중국학에 관심과 지원 면에서 밀리는 상황이었다. 또한 다학문적(interdisciplinary) 특성이 강해 기존의 인문사회과학의 분과 학문들에 비해 학문적 계보나 방법론적 엄밀성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국내외 학계 비판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한국학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국학의 양적 발전은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세계 주요 대학에서 보유하고 있는 한국학 장서 수는 2014년 160만 권에서 지난해 171만 권으로 증가했다. 9월 시사저널 기획취재팀이 찾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아시아지역도서관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양적으로 증가했다는 한국학의 현주소는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양적 성장을 뒷받침해 줄 질적 성장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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