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2016 서울디자인위크 총연출을 맡은 이나미 홍익대 디자인콘텐츠대학원 교수
서울디자인위크가 시작됐다. 9월22일부터 10월2일까지 11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를 중심으로 서울시 전역에서 개최된다. 이번 서울디자인위크의 주제는 ‘스마트 시티 스마트 디자인 스마트 라이프(Smart City Smart Design Smart Life'다. 스마트 디자인을 통해 스마트 라이프를 추구하는 스마트 시티 서울을 위해 변화하는 시대에 디자인이 담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올해 서울디자인위크의 총감독을 맡은 이나미 홍익대 디자인콘텐츠대학원 교수는 “이번 서울디자인위크는 당초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며 “서울디자인위크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 그 담론을 대중적으로 펼쳐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9월22일 서울디자인위크가 개막하던 날 DDP에서 이나미 교수를 만나 ‘스마트’와 ‘디자인’ 그리고 ‘기술’과 ‘사람’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 서울디자인위크, 어떻게 해야 백배 즐길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누군가에겐 조금 난해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과거의 전시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하나 딱 있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생각도 좀 오래 해야 하고,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이 DDP라는 넓은 공간 속에 흩어져 있어 한 눈에 들어오는 전시는 아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입장에선 관객들이 단순한 디자인, 제품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러티브와 프로세스를 보고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실 디자인이란 것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이 함께 쓸 수 있는 보편적 디자인 솔루션을 내는 것,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스마트 디자인’이었다. 때문에 하나의 디자인 안에 담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읽어내는 것이 이번 서울디자인위크의 관건이다.
어떻게 보면 오래 읽어내야 하는 전시일지도 모른다. 관객 스스로가 디자인을 이해하기까지 기다려주고 보여주는 그런 저시를 준비했다.
오늘날의 디자인은 그 외연이 확장됐다. 이번 서울디자인위크의 구성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는 것 같다.
디자인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자다. 디자인에선 과거에 이들을 ‘소비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소비자’와 ‘시민’은 전혀 다른 발상을 품고 있다.
소비자는 작품을 ‘살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디자이너는 ‘팔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 파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의 얘기다.
이젠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산업사회의 병폐가 등장하면서 디자인에 있어서도 지속가능성 이슈가 등장했다. 제품의 재료부터 시작해서 제품을 잉태한 발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스마트 디자인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 기술의 공생이란 철학을 품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시티 스마트 디자인 스마트 라이프’가 주제다. ‘스마트’란 무엇인가?
스마트 디자인은 단순히 기술력의 차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인 개념으로 결국 ‘무엇을 위한 디자인인가’에 대한 솔루션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디자인은 오로지 ’멋’만을 위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은 물건이 넘친다.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을 떠나 이젠 ‘만들지 말아야 할 물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도 필요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 스마트 디자인이다.
이런 시대의 스마트 디자인이란 결국은 ‘똑똑한’ 디자인이 아니라 ‘지혜로운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다. 기술적 진보란 개념만을 품었던 스마트 디자인은 이젠 ‘스마트 비욘드 스마트(smart beyond smart)’로서 지혜로운 디자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개별적 주체들이 편안하게 배려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구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라이프, 결국 스마트 디자인을 통한 스마트 라이프는 ‘나만 편하면 된다’는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한 발 나아가 ‘뭣이 중한지’ 이해하고 배려하는 시대정신인 셈이다.
결국 스마트 디자인은 기존의 산업사회적 사고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지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 디자인은 때론 일부러 인간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액티브 디자인’이란 개념이다. 또한 획일화․단순화를 최고의 가치던 시절과 달리 개별성․특수성을 중시한다. 아날로그 시대엔 개개인의 특성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지만 스마트 시스템에선 통계를 비교적 쉽게 내고 조건화가 가능해진다. 사용자들의 개별성을 존중하다보니 서로 다른 이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디자인’도 등장했다.
여기에 스마트 디자인의 역할이 있다. 환경과의 공생의 문제, 사회적 약자 포용의 문제 등 개별 조건 맞춰 누구나 편리하고 존중 받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착한 가격’도 스마트 디자인의 이슈다. 디자이너는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철학도 깃들 수 있다.
최근 들어 추가된 것이 안전 이슈다. 이제 안전하지 않은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 아닌 시대가 왔다. 옥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과거엔 세제가 깨끗하면 됐다. 하지만 그런 제품으로 사람이 죽게 된다면 매우 나쁜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서울디자인위크를 기해 공표한 ‘스마트디자인 서울선언문’은 이 같은 폭넓은 디자인 정신을 담고 있다.
지혜를 겸비한 디자인, 스마트 라이프를 가능하게 하는 문제해결의 솔루션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디자인이 바로 스마트 디자인이다. 효율적인 삶, 조화로운 삶, 자율적인 삶, 더불어 함께 사는 삶,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디자인인 셈이다. 효율과 편리성뿐만 아니라 건강, 참여의 의미를 품고 있으며 또한 공생과 안전, 살림의 철학을 품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디자인의 도리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인간’과 기술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달라졌다. 디자인의 측면에서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거 디자인은 결과로만 이해됐다. 하지만 본디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실제 디자인은.‘인간’과 ‘자연’이란 구도 속에서 ‘생물학적 생존’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느냐’는 화두가 던져졌다. 기술과 인간의 정서가 맞물리게 된 것이다.
원래 인공지능은 인간 삶의 효율성을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인간은 마지막 남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디자인의 일반적인 역할은 대중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인간 행복의 가장 높은 단계는 자아실현이다. 디자인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더욱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돼야 한다.
‘Why? Smart?’라는 제목의 청년 워크숍도 열렸다. 어떤 얘기가 나왔나.
청년 디자이너들이야말로 스마트시대의 주역이다. 이들은 플레이어이자 디자이너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워크숍에선 국내 5개 대학에서 모인 45명의 학생들이 수차례에 걸쳐 포럼을 진행했으며 이번 워크숍은 그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워크숍 발표 가운데 매우 인상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하나는 ‘왜 갑자기 디자인 앞에 ‘스마트’란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디자인은 본디 스마트한 것이란 말이었다. 다시 말해 디자인은 늘 사람을 위해 존재해왔으며 인간 행복을 위해 기여해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게 바로 ‘스마트’라는 얘기였는데 매우 통찰력 있는 지적이었다.
또 하나는 ‘스마트한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본질은 사람을 위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형태만 스마트한 것은 사실 가장 스마트하지 않은 디자인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서울디자인위크를 찾을 많은 시민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디자인은 특정 물건 모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조형적 감각은 당연한 요소다. 여기에 나아가 우리 삶에 많은 문제들을 매력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론으로서의 디자인을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한다.
디자인이란 삶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해왔다. 기술과 인간과 디자인은 공진화(共進化)해야 한다. 그 어떤 요소도 배제할 수도, 배제 당할 수도 없다. 그게 지혜로운 디자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간에겐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