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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눈 속 티끌은 보면서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막바지에 이른 이번 선거의 실상이 딱 그 모양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내가 하면 (훈훈한) 로맨스, 남이 하면 (추잡한)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도 있다. 선거에 나선 후보나 대표자들이 서로 경쟁하듯 제 눈 속 들보는 감추고, 남 눈 속의 티끌만 끄집어내면서 ‘제멋대로 로맨스’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낯 뜨겁고 불편하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후보자 등록에 이어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판세의 윤곽도 차츰 드러나고 있지만,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다. 다만 한 가지, 선거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목하는 변수는 있다. 바로 ‘말’이다. 선거 막판에 돌출될 수 있는 실언이나 막말이 흐름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동안의 여러 선거에서 그 같은 현상을 분명하게 목도했었다. 그런데도 이런 분석이나 우려가 무색해질 만큼 이번 선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것을 염려해서인지 각 당에서도 공개적으로 말조심을 환기시키는 주문이 잇따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국민께서 평가하고 계신다는 점을 항상 유념하면서 더욱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모든 후보와 당의 구성원들도 앞으로 더 한층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 ⓒ연합뉴스

이렇듯 두 당 대표가 구성원들에 대한 입단속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정작 위태로운 쪽은 그들 자신이다. 이미 이재명 대표는 ‘2찍’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고, 최근에는 경기도 분도와 관련해 “현재 상태로 재정에 대한 대책 없이 분도를 시행하면 강원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말해 ‘강원도 비하’라는 비판을 샀다. 한동훈 위원장은 논란을 빚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에 대해 중요한 맥락은 제쳐둔 채 “이종섭 대사는 사실 소환받은 것도 없고 범죄 혐의가 드러난 것도 없고 기소된 것도 없다”며 “이재명 대표는 보란 듯이 법원에 출석도 안 하고 있다. 법원을 쌩까고 있다”고 화살을 민주당 쪽으로 돌렸다. 또 선거운동 첫날에는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눈총을 받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양당 대표들의 날 선 발언에 선거가 지배되는 듯한 이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입에서는 거친 말이 잇따르고, 한동훈 위원장의 입에서는 ‘이재명’과 색깔론이 마를 날이 없다. 둘 다 남 탓 하기에만 열중하면서 선거가 독한 말 싸움터로 변질돼버린 셈이다.

이 지독한 네거티브 결투장에서 굳이 정책과 비전, 순한 말로 대결하는 포지티브 선거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현실을 먼저 사유하고 성찰하는 말을 다만 먼저 듣고 싶을 뿐이다. 자고 나면 ‘이재명’ ‘한동훈’ 소리만 들리는 선거에서 정작 소외되는 쪽은 유권자들이다 지난 호에 발표된 시사저널 여론조사 결과에서 3월18~19일 현재까지 “투표할 대상을 정하지 못했다”거나 “지지할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이는 모두 합해 19.4%였다. 이른바 부동층이 5명 중 1명꼴이라는 얘기다. 어찌 보면 그들은 극단적인 말들에 염증을 느끼거나 주눅이 들어버린 중간층이나 다름없다. 말에도 사람에도 ‘중간’이 없다면 아직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결심하지 못한 채 떠도는 그 중간의 표심은 대체 어찌하란 말인가.

김재태 편집위원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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