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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부터 성시경까지…한때 댄스가수들의 ‘폭주’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 평가

성시경과 나얼의 듀엣곡 《잠시라도 우리》는 그 옛날 발라드의 황금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는, 이제는 사실상 사멸한 ‘여덟 마디 일렉기타 솔로’는 그저 정겨울 뿐이고, 수많은 발라드 명곡에 조력자로 참여해온 최고의 현편곡가 박인영 음악감독이 맡은 아름답고 풍성한 스트링 섹션은 감동을 배가시킨다.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 명곡들을 숱하게 써낸 박주연이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떠나간 모든 것은 시간 따라갔을 뿐 / 우릴 울리려 떠나간 건 아냐 너도 같을 거야’라는 노래의 핵심부는 이제는 흔히 찾기 힘든 고즈넉하고 어른스러운 감정과 통찰을 잘 담아낸다. 그야말로 발라드의 계절이다. 지금의 발라드는 인디 가수나 K팝 아이돌, 심지어 트로트 가수의 레퍼토리 중 하나쯤으로 치부됐지만, 한때는 포크나 트로트 등 기성세대의 음악과는 다른 세련된 음악의 대명사이자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댄스가수들의 ‘폭주’를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음악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유재하를 필두로 김현철, 신재홍, 김형석 등 젊은 작곡가들이 발라드를 앞세워 가요의 ‘모던함’을 주창했고, 심지어 신세대 뮤지션의 상징인 신해철과 공일오비도 발라드의 명수였다. 하지만 발라드는 무엇보다도 늘 ‘가수’의 음악이었다. 한 가수가 펼쳐낼 수 있는 기교와 감정을 가장 극적으로 뽐낼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여기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라드 마스터들을 다시 호명하며 발라드의 매력을 새롭게 음미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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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한국형 팝발라드의 효시

그는 그냥 발라드 가수가 아니다. 발라드 장르가 낳은 최초의 슈퍼스타이자 발라드라는 장르 개념을 확립시킨 인물이다. 발라드 가수로서 그의 본격적인 여정은 작곡가이자 영원한 음악적 동반자인 이영훈과 함께한다. 이 둘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언더그라운드 통기타 음악과는 전혀 다른 서정적인 팝발라드의 문법을 만들어내 FM 라디오 시대의 감수성을 지배했다. 《소녀》 《그대와 영원히》 등이 수록된 3집도 좋았지만 《사랑이 지나가면》으로 시작해 《그녀의 웃음소리뿐》으로 마무리되는 4집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회자된다. 발라드 아티스트로서 이문세-이영훈 콤비의 가장 큰 업적은 시적인 노랫말과 특유의 곡 해석력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는 ‘불멸의’ 감수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누구나 광화문 앞을 서성이고. 언덕 밑 정동길을 걷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생각에 잠기고, 하늘로 올라가는 눈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문세의 노래 때문이다. 변진섭과 신승훈이라는 가요 역사상 최고의 스타들 역시 이문세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발라드의 전성시대를 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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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월드클래스 발라드의 시대를 열다

《텅빈마음》이 수록된 1집 때만 해도 그는 발라드를 앞세운 여러 신성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해외 레코딩을 통해 블록버스터급 앨범을 시도한 4집에 이르러 발라드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이 그 이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사운드의 경지로 가요를 이끄는 데 성공했고 적어도 발라드라는 장르에서만큼은 영미팝의 퀄리티에 근접한 음악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승환의 가사에 전람회의 김동률이 곡을 붙인 《천일동안》은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사운드를 앞세워 소박한 발라드 음악들에 익숙해져 있던 가요 리스너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었으며, 《애원》 《그대는 모릅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등 후속곡들을 통해 ‘대작 발라드’라는 새로운 작풍을 확립시키기도 했다. 오태호, 김광진, 정석원, 김동률, 유희열, 황성제 등 발라드라는 장르에서 당대 최고의 기량을 뽐냈던 작곡가들의 가장 빼어난 레퍼토리 중에는 반드시 이승환의 곡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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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가수 그 이상의 스토리텔러

훌륭한 발라드 가수를 꼽을 때 우리는 ‘가창력’이라는 키워드를 먼저 떠올리지만 윤종신의 진정한 성취는 ‘스토리텔러’로서 발라드 가수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했다는 것이다. 대다수 발라드 가수는 전문 작사가와 작곡가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당연히 일관된 스토리텔링과 서사를 구축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윤종신은 바로 그 점에서 독특한 뮤지션이다. 데뷔 시절부터 자작곡을 내세웠던 그는 앨범 프로듀서로 자리를 굳힌 4집 이후로는 다양한 작곡 파트너들과 함께 자신의 음악적 색을 확고히 하게 되는데 때로 그의 작사가적 역량은 유명 작곡가들이 만든 선율 이상으로 음악의 결정적 요소가 됐다. 《너에게 간다》 《내일 할일》 《동네 한바퀴》 등 그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명곡들은 선율만큼이나 그의 이야기 때문에 더 깊고 오래 각인되며, ‘우(愚)’나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와 같은 콘셉트 앨범 형식의 음반을 통해 발라드라는 장르의 서사적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노력도 돋보인다. ‘찌질함’의 미학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히트곡 《좋니》는 발라드는 늘 아름답거나 슬픈(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여야 한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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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우리 시대 마지막 발라드 장인

발라드 가수로서 지난 두 세기에 모두 전성기를 경험한 사실상 유일한 가수인 그는 발라드라는 스타일에 가장 이상적인 목소리와 발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곡 해석력으로, 원곡이 갖고 있는 매력 그 이상을 늘 뽑아낼 수 있는, 과장을 보태 그 어떤 음을 불러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극히 드문 재능의 발라더이기도 하다. 《내게 오는 길》 《처음처럼》을 히트시킨 데뷔 초반에는 같은 발라드 장르의 슈퍼스타였던 조성모의 대중성에 다소 가려진 감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며 이 시대 마지막 발라드 장인으로 남아있다. 윤종신이 작곡한 《거리에서》와 《넌 감동이었어》는 한국 발라드 역사에 손꼽힐 절창이며, 《너의 모든 순간》(별에서 온 그대), 《희재》(국화꽃 향기), 《너에게》(응답하라 1994) 등 드라마 OST 분야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많은 이가 성시경을 단지 훌륭한 가수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많은 곡을 스스로 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며 김조한의 《사랑이 늦어서 미안해》와 같은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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