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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 ‘압박하고’ 非尹 ‘끌어안고’…親尹 용퇴하면 ‘절반의 성공’
수직적 당정 관계엔 ‘침묵’…‘尹 태도’ 변화 이끌면 ‘분위기 반전’

지금은 인요한의 시간이다. 평가는 갈릴 수 있지만, 그는 분명 현재 정국의 중심에 있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수렁에 빠진 여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순식간에 정치권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10월23일 혁신위원장으로 등판하자마자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더니 중진 용퇴론 같은 뜨거운 의제를 연일 던지며 정치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불러온 변화의 바람은 여권을 넘어 야권에까지 ‘메기 효과’를 내고 있다.  인 위원장은 한국 정치가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여러모로 독특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190cm가 넘는 장신에 푸른 눈을 가진 인 위원장은 19세기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의 외증손자다. 즉 유진 벨은 인 위원장의 할머니의 아버지인 것이다. 그의 가문은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의료·선교·교육 활동을 펼쳐 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12년 대한민국 특별귀화 1호로 선정됐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자란 호남 출신이기도 하다. 평상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스스로를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존경하는 순천 촌놈’이라 부른다. 32년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했다. 1992년 한국형 앰뷸런스를 최초로 개발한 인물이 바로 그다. 영남 색채가 짙은 국민의힘이 택한 첫 호남 출신, 첫 귀화자, 첫 의사 출신 혁신위원장인 셈이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0월26일 국회 소통관에서 혁신위원 인선 결과 발표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尹 빼고 여당에만 약 처방전 내밀어

이제 보름 좀 넘게 활동한 인 위원장은 일단 대중과 언론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다. 네이버(데이터랩)와 다음(카카오데이터트렌드) 양대 포털에서 키워드 ‘인요한’의 검색량을 ‘윤석열’ ‘김기현’ ‘이재명’과 함께 비교 분석해 보면, 인 위원장은 임명 이후 포털에서 압도적인 검색량을 기록했다.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10월23일 인요한 검색량은 네이버에서 100(일 최대 검색량이 100)이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검색량을 기록했다. 임명된 지 1주일 후인 10월30일 인요한(31)의 검색량은 윤석열(7), 이재명(6), 김기현(4) 등을 압도했다. 2주일 후인 11월6일에도 인요한(30)은 윤석열(6), 이재명(4), 김기현(2) 등보다 훨씬 많이 검색됐다. 다음에서의 검색량 흐름도 네이버와 유사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정치인 뉴스는 부고(訃告) 빼고는 다 좋다’는 정치권의 오래된 이야기를 감안하면 인 위원장의 출발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권에서 ‘인요한 혁신위’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화제성에 있지 않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최근 인 위원장의 행보를 두고 “낮에는 혁신위원장, 밤에는 비대위원장 같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중진 용퇴론’ 요구 등 그의 행보가 거침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인 위원장이 윤심(尹心·윤 대통령 의중)을 등에 업고 있다는 해석으로 연결된다. 친윤(親윤석열)계 다선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불출마를 사실상 종용하는 일을 윤심 없이 진행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혁신위는 비대위와 달리 최고위원회라는 당 지도부의 권한을 넘어설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데, 지금 인 위원장의 말과 행동은 김기현 당대표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그래서 혁신위가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향해야 할 과녁(대통령)이 아니라 엉뚱한 곳을 겨누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고 했다. 물론 높은 화제성과 상당한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점이 쇄신의 성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둘은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혁신위원장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보수정당에서는 2005년 ‘홍준표 혁신위’, 진보정당에서는 2015년 ‘김상곤 혁신위’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수 혁신위는 대부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얼마 전에 거대 양당 모두에서 띄웠던 ‘최재형 혁신위’와 ‘김은경 혁신위’는 반전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해야 했다.  ‘인요한 혁신위’의 성공 여부는 무엇에 달려 있을까. 취재를 종합하면, 인 위원장이 넘어야 할 고비는 ①희생(중진 용퇴) ②통합(이준석 전 대표 등 비윤석열계 끌어안기) ③변화(윤석열 대통령의 태도 변화와 국정 기조 대전환)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상당수 여권 관계자는 인 위원장이 세 개의 고비 중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중진 용퇴론이라는 흐름만 이끌어내도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많이 했다. 그만큼 그의 앞에 놓인 난제들을 푸는 일이 고차방정식이라는 분석이었다.  반면 만약 인 위원장이 여권의 최대 혁신 과제인 수직적 당정 관계 해소와 민심 이반을 불러온 윤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 기조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 변화까지 만들어낸다면 여권에 대한 민심의 분위기 대반전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과연 의사 인요한은 쇄신의 메스를 어디까지 들이댈 수 있을까. 그 주요 변수와 다양한 시나리오를 살펴봤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0월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제1차 혁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혁신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정치권에 빚 없어…‘인적 쇄신’ 최적임자”

인 위원장이 지금 가장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가치는 바로 ‘희생’이다. 당 지도부와 3선 이상 중진, 핵심 친윤 인사들을 향해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 핵심의 기득권 포기를 통한 쇄신의 메시지 확산을 노리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실제 그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혁신안으로 여겨진다. 그만큼 중진들의 도미노 용퇴는 파급력도 상징성도 크다.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효과 외에도 인 위원장이 유일하게 득점할 수 있는 혁신안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준석 전 대표의 탈당을 막는 것과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가져오는 일보다는 그래도 중진 용퇴를 이끌어내는 게 좀 더 현실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가 언급한 ‘인적 쇄신론’의 대상은 당 지도부와 3선 이상 중진, 친윤 의원 등 어림잡아 30~40명 정도로 분류되지만, 정작 인 위원장의 칼끝이 겨냥하고 있는 곳은 당 지도부와 친윤 핵심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기현 대표(4선·울산)와 윤재옥 원내대표(3선·대구)는 물론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평가받는 권성동·장제원·이철규 의원 등을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1월6일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가 다 알지 않느냐.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와 권·장 의원 등을 두고선 “그중에 한두 명만 결단을 내리면 (나머지도) 따라오게 돼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압박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셈이다.  당 지도부와 중진·친윤계 의원의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 요구는 공식 안건이 아니라 지도부에 결단을 촉구하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여권에서는 인 위원장이 예상보다 높은 수위로 ‘희생’을 압박하는 데는 ‘윤심이라는 뒷배’가 존재하는 동시에 그가 정치권에 어떠한 빚도 없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정치 신인이긴 하지만, 전권을 부여받고 혁신위원장으로 모셔진 만큼 히딩크 감독처럼 어떠한 연고나 사적 인연에 구애받지 않고 독하게 끊어낼 부분은 끊어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넓다는 설명이다. 과거 이런 이유로 이미 보수정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추천되기도 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2018년 인 위원장을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비대위원장 후보로 꼽으며 “엄청난 보수인데, (좋은 의미로) 인맥이 없다. 히딩크 같은 사람이라고 추천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인요한 혁신위’의 최대 과제는 ‘통합’과 ‘중진 용퇴’를 동시에 하는 일이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온돌방의 도덕 회복’ 강조…尹 변화 끌어낼까

‘희생’을 강조하고 있는 인요한 혁신위의 또 다른 열쇳말은 바로 ‘통합’이다. 지금 인 위원장이 만남과 설득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인물은 바로 이준석 전 대표다. 2030대 청년세대에게 소구력을 가진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넘어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에 큰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 위원장이 혁신위의 1호 혁신안으로 꺼낸 것도 다름 아닌 이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대한 대사면 카드였다.  인 위원장이 이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등 비윤계에 대한 포용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의 구체적 시기로 연말을 제시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홍 시장도 11월8일 인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전 대표가 비례대표 정당만 만들어도 10석 가까이 차지할 수 있다며 이 전 대표의 극적 회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에 인 위원장이 3호 혁신안에 내년 총선 공천에서 일정한 청년 비율을 보장하는 청년 할당제와 청년 비례대표 의원의 나이를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것은 ‘이준석 없는 국민의힘’을 대비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요한 혁신위의 성패는 사실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다시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이 윤 대통령에게 민심을 그대로 전달하고, 쓴소리할 수 있는 건설적인 당정 관계를 구축하는 게 지금 민심이 가장 기대하는 혁신 방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 위원장은 민심 이반과 쇄신의 본질인 윤 대통령의 국정 기조와 당정 관계에 대해선 침묵을 이어왔다. 오히려 “대통령 일에 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월권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얼굴이 우리의 얼굴” 등의 발언만을 해왔다. 여권 내부에서 “인요한의 칼끝이 당만 겨냥하고 있다. 곁가지만 건들고, 변죽만 울리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결국 인요한 혁신위는 환부에는 메스를 들이대지 않고 수술대에서 내려오고 말 것인가. 인 위원장과 윤 대통령 모두를 잘 아는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아직 기회는 있다고 본다. 사실상 동년배(인 위원장은 1959년생, 윤 대통령은 1960년생)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통하는 부분이 많은 걸로 안다. 인 위원장의 평소 소신을 윤 대통령이 받는다면 의외의 부분에서 문제가 풀릴 수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인 위원장 인생의 모토는 ‘온돌방의 도덕 회복’이다. 바로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너에게 규칙을 벗어날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는 인생의 교훈을 그는 어린 시절 고향인 전라도 온돌방에 앉아 어른들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즉 인 위원장이 이를 고리 삼아 윤 대통령을 설득해 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는 ‘3자 회동’을 성사시킨다면, 윤 대통령이 그간의 고집을 꺾고 국정 기조와 태도에 변화를 줬다는 극적인 신호로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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