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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봉준호가 속해 있던 영화 동아리 ‘노란문’ 이야기
한국 영화의 씨앗이 된 1990년대 다큐로 재조명
“덕후의 원동력은 집착”
한국 영화 르네상스로 자주 거론되는 건 2003년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 《올드보이》(박찬욱), 《장화홍련》(김지운),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등의 작품이 쏟아져 나온 해 말이다. 그 앞뒤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연 《쉬리》(강제규)가 나왔고, 류승완 감독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갑툭튀’했으며, 《초록물고기》로 이창동이란 새로운 얼굴이 영화계에 데뷔했다. 정말이지, 기이한 에너지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봉 감독은 2000년대 초중반에 해외 영화제에 가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말한다. “도대체 한국 영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럴 때마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건, 노란문과 1990년대 등장한 시네필들이다. “영화를 의식적으로 공부한 시네필 세대가 영화산업에 진출한 시기와 겹쳤노라고”. 실제로 그 시절, 시네필들이 활동한 영화 동아리는 노란문 외에도 많았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담는다. 전설의 노동 영화로 꼽히는 《파업전야》 등을 만든 ‘장산곶매’, 서울대 영화연구회 ‘얄라성’, 민간 시네마테크로 확장한 ‘영화공간 1895’, 정지우 감독이 활동했던 영화제작소 ‘청년’ 등이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 왜 1990년대엔 다들 미친 듯이 모여서 영화 공부를 했나? 이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진단에 웃음이 터진다. “저의 결론은 그거예요. 그 당시 정부에서 수돗물에 약을 탔다! 전 국민 시네필화 프로젝트의 어떤 그런….” 물론 봉준호식 유머다. 봉 감독은 ‘장산곶매’가 프리미어리그고 정지우가 있던 ‘청년’이 분데스리가라면 ‘노란문’은 조기축구회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봉준호를 키운 자생력이 된 듯하다. “덕후의 원동력은 집착”이라고 말하는 봉 감독에게 열악한 환경은 오히려 그 자질을 더 키우는 쪽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고, 여러 분야에서 문화적 욕구가 커지던 시기. 봉 감독은 비공식적 루트로 들어오는 불법 비디오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열심히 팔았고, 어렵게 구한 영화를 보며 쇼트를 일일이 분석하고, 자기 나름의 상상을 더했다. 그건, 학교에서 공식처럼 알려주는 수업보다 더 큰 공부가 아니었을까. 노란문에 들어오는 비디오테이프를 담당했던 봉 감독은, 라이브러리 관리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뽐내는데 그 꼼꼼함에서 과연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영화가 지니는 의미 외에도 즐길 만한 포인트가 넘치는 다큐다. 가수 이소라가 불렀던가.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같은 상황을 두고 노란문 회원들은 엇갈린 진술을 한다. 가령, 봉준호의 필사(筆寫) 여부. 노란문 리더급이었던 최종태씨는 봉준호가 ‘세계 영화사’를 필사한 노트를 자신에게 보여줬다고 말하는데, 정작 봉 감독은 “나는 ‘세계 영화사’ 필사한 적이 없는데?”라고 응수한다. “이게 다 거대한 라쇼몽(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해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의 용광로”라고 웃으며. 동아리 가구를 노란색으로 칠한 것을 두고서도 최종태씨는 자기가 노란색을 좋아했었다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또 다른 회원 김대엽씨는 “제 기억으로는 갖고 있었던 페인트가 노란색이었어요. 아무 의미가 없었어”라고 잘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영화는 1세대 영화 마니아 김홍준 교수도 인터뷰로 담았다. 지금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이 된 김홍준 교수는 1992년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책을 내서 명성을 떨쳤는데, 당시 본명이 아닌 ‘구회영’이란 필명을 썼다. 필명에 대해 노란문 회원들은 ‘90년대를 회고하는 영화광’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진짜 맞을까. 카메라는 바로 김홍준 교수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90년대를 회고하는 영화광 이렇게 막 해석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되게 멋있게 들린다 싶었지만,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필명을 정하려고 고민하는데, 신문 부고란에 구영회라는 이름이 있길래 구회영으로 무심코 바꿨던 거예요.” 우린,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걸 오해하며 받아들이고 있을까. 다큐 후반은 《룩킹 포 파라다이스》 제작 후기가 중점적으로 담겼다. 《룩킹 포 파라다이스》는 어두운 지하실에 갇힌 고릴라가 자기가 싼 똥에서 변이한 애벌레(상상력 보소!)에게 쫓기며 지상낙원을 찾아가는 단편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장만한 히타치 캠코더로 고릴라 인형을 조금씩 움직이며 한 컷 한 컷씩 촬영해 이어 붙이는 엄청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끈기 보소!). 그러나 들인 노력에 비해 너무 느린 작업 속도에 질려버려 애니메이션을 포기(결정력 보소!)하고 실사 영화를 하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 이 작품은 1992년 크리스마스, 10여 명의 노란문 회원이 모인 자리에서 상영된 후 공개된 적이 없다. 노란문 동료들이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를 준비하며 고릴라를 다시 찾자, 봉 감독이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갖고는 있지만… 없어진 것처럼 얘기해줘. 창피해서 그거 어디….” 감독은 부끄럽다지만, 관객을 고릴라에 감정 이입해 내는 솜씨는 놀랍다. 최종태씨는 《룩킹 포 파라다이스》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봉준호 영화의 에센스가 그 애니메이션에 모두 담겨 있다.” 실제로 그러하다. 장르를 뒤섞는 과감한 상상력, 지하라는 공간 등 봉준호 영화 인장들이 《룩킹 포 파라다이스》에서 엿보인다. 한국 영화가 위기라고 말하는 지금, 한국 영화의 씨앗이 된 시대를 그린 다큐가 나온 게 여러모로 아이러니하다. 영화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시대에, 영화라는 매체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작품이 나온 것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시절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도, 영화광이 아니더라도, 뭔가에 깊게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감흥을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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