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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현철의 장편 연출 데뷔작…불안정한 10대 소녀들의 감성을 생생히 포착
너의 죽음은 나의 죽음
세미는 여기서 그칠 수 없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수학여행. 하은만 남겨두고 가는 게 내심 마음에 걸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걸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도 사전에 없던 계획을 부추긴다. 하은을 설득한 세미는 캠코더를 팔아 수학여행비를 급히 마련해 보기로 한다. 그러나 캠코더가 하루 안에 과연 팔릴 것인가보다 세미의 신경을 더 붙드는 건, 하은의 수첩에서 발견한 ‘훔바바’라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어다. 하은의 마음이 훔바바에게 향하고 있는 것일까? 세미는 훔바바가 궁금하다. 질투가 난다. 괜히 미워진다. 동시에 내 마음과 같지 않은 것 같은 하은이 야속하다. 그래서 괜히 하은에게 투덜거리고,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다툼이 일어난다. 10대 소녀들의 불안정한 감성을 어쩜 이토록 생생하게 포착했을까.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를 보며 처음 느낀 지점이다. 입시학원 강의를 하며 학생들 행동 패턴을 관찰하고 이를 반영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30대 남성 감독이 표현한 10대 소녀들 감정의 레이어와 질감이 너무나 섬세해서 놀랍다. 가령, 하은의 ‘또 다른 단짝 친구’가 하은의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아내 몰래 접속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세미는 ‘어떻게 남의 핸드폰을 훔쳐볼 수 있느냐’보다, ‘하은과 내가 나눈 둘만의 대화가 새어 나갔다’는 것에 더욱 분노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공유하는 둘만의 비밀이 더없이 소중한 나이. 여고생 교실을 통과해온 이라면 납득할 만한 풍경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중반까지 성장영화 분위기로 흐르던 영화는 숨겨뒀던 진짜 얼굴을 서서히 드러내며 주제를 확장해 나간다. 시처럼 함축되고 은유적으로 암시되는 장면들을 통해서다. 땅에 떨어져 죽은 새, 고장 난 시계, 주인 잃은 개, 세상을 떠난 반려견, 테이블 끝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물컵, 상복 입은 사람들…. 여기에 ‘안산’이라는 공간과 수학여행 목적지인 ‘제주도’가 포개지면서, 관객을 과거의 어떤 시간 속으로 접속시킨다. 화면은 빛을 머금고 시종 꿈같이 반짝임에도, 그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질곡의 시간을 알기에 보는 내내 마음에서 작은 폭풍이 인다. 영화에서 하은은 오랜 시간 키운 반려견을 떠나보낸 상태다. 그러니까, 하은은 ‘상실한 자’다. 극 초반까지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하은은 세미와 함께 집 잃은 개를 주인에게 찾아준 후, 펑펑 운다. 먼저 떠난 반려견이 너무 보고 싶다고 펑펑 운다.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운다. 그런 하은을 세미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 이 영화는 ‘오해’에서 ‘이해’로, 떠나간 이에 대한 ‘애도’에서 남겨진 자를 향한 ‘위로’로, ‘너’에게서 ‘나’로 경계를 지우며 넘어선다. 하은의 아픔을 뒤늦게 알아챈 세미가 눈물을 보이며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내 생각만 해서 미안해.” 이 대사는 왜 이토록 아려 오는가.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저서 《인생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너의 장례식은 언제나 나의 장례식이다.” 너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 《너와 나》는 거대한 상실을 겪은 후, 살아있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는다.그리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영화는 ‘세미와 하은의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피부로 와닿는 체감 시간은 훨씬 길다. 누군가가 온전히 누리는 마지막 날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독이 실제로 시간을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세미와 하은의 대화 사이엔, 기억인지 미래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이미지가 끼어든다. 조현철 감독은 시간의 축을 중첩시키고 흩뜨리면서 절대적 시간과 거리두기를 한다. 더 나아가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자연이나 동물에게 스며들 수 있다는 제스처도 취한다. 실제로,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그날 누군가의 하루는 다른 이의 10년보다 길었을 것이고, 그날로부터 10년을 살아온 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곳에 고여 있을 수 있다. 논리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기이한 시간의 감각을 영화만의 표현 방식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너와 나》는 각별하다. 《너와 나》는 수학여행 전날 밤,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는 수많은 아이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다가올 내일을 모르는 아이들은 즐겁다. 다가올 내일을 모르는 아이들은 천진하다. 아마, 그들의 다음을 모른다면 이 장면은 그저 흔한 인서트 컷으로 보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린 이 밤이 지니는 의미를 알고 있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것이 감독 조현철이 영상으로 쓴 추도사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에는 박준 시인이 물리 선생님으로 출연한다. 그래서일까. 《너와 나》를 보고 그의 시구가 떠올랐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수록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다.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핵심은 타인의 슬픔이다. 타인의 슬픔을 감지하는 감수성이고, 공감 능력이며, 함께하려는 마음이다. 《너와 나》에 더 마음이 기운다면, 그러한 감수성이 창작자에게서 발견되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4월의 그날 이후 많은 영화 창작자가 재난에서 내 가족을, 내 이웃을 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엔 남은 자들이 직면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을 담아냈다. 《너와 나》는 여기에서 조심스럽게 한 번 더 커브를 꺾는다. 떠난 이들이 남아있는 자들을 오히려 염려하고 안아준다. “미안해”라고. 그리고 “사랑해”라고. 세상의 많은 하은이는 당분간 그 힘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마지막까지 기억할 것이다. 보고 싶은 얼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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