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항저우아시안게임 근대5종 금메달리스트 정진화 선수
“연습할 경기장 없어 진천선수촌 아닌 국군체육부대에서 훈련”
“‘잠-운동-밥’ 반복하며 하루 10시간 이상 고강도 훈련”
금메달을 딴 소회가 궁금하다.
“개인전보다 단체전 금메달을 딸 때가 더 행복하고 짜릿하다.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해냈을 때 성취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의 ‘라스트 댄스’를 ‘금빛 댄스’로 만들어준 후배들에게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지옥 같던 대표팀 훈련이 드디어 끝났구나’. 매일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하다 보면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휴일인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결혼 2년 차인데 넉 달 동안 집에 세 번 들어간 적도 수두룩하다(웃음).”
대표팀 이지훈(LH) 선수가 경기 중 낙마 사고를 당하고도 부상 투혼을 발휘했는데.
“지훈이가 승마 경기 중에 말에서 떨어지면서 뇌진탕 증세를 보였다. 이어진 펜싱과 수영을 ‘블랙아웃’ 상태로 한 거다. 시상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전웅태 선수에게 10초에 한 번씩 ‘형, 저 몇 등이에요’를 되물었다. 아직까지 경기 때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회복한 상태다.”
동양인으로서 갖는 신체적 한계는 어떻게 극복했나.
“훈련량을 늘려 양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해외 선수들에게 대표팀 훈련 스케줄을 말해 주면 다들 기겁한다. 해외 선수들은 하루를 강도 높게 운동하면 다음 날은 쉬엄쉬엄 한다고 들었다.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웃음).”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 훈련 일정은 어떻게 됐나.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2시간 정도 육상 종목 연습을 한다. 끝나면 아침을 먹고 바로 10시에 수영장에 들어간다. 그러고 나서 12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승마를 하러 간다. 2시간 동안 말을 타고 나면 4시부터 펜싱 연습을 한다. 연습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7시 반부터 개인적으로 웨이트 훈련을 한다. 9시 반에 일과가 끝나서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계속 땀이 나다 보니 하루에 네 번씩 샤워를 하기도 한다. 하루 종일 잠, 운동, 밥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해외 선수들이 한국의 팀워크를 부러워했다는데.
“근대5종이 체력 소모가 심한 종목이라 경기가 없을 때는 휴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은 잠깐이라도 와서 꼭 응원을 하고 간다. 처음에는 해외 선수들이 응원하러 온 우리 선수단을 보고 ‘쟤네는 시합 없어?’라고 의아해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가보니 해외 선수들이 우리 응원 문화를 따라 하더라. 아무래도 옆에서 ‘파이팅’ 한 번 해주면 한 발이라도 더 빨리 뛰게 되지 않겠나. 응원이 단합력도 높이고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니까 단체전에서 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 같다.”
식단도 훈련도 군부대에서 해결…여전히 갈 길 먼 근대5종
아시안게임을 진천선수촌 밖에서 준비했다고 들었다.
“진천선수촌에 승마장이 없어 경북 문경에 있는 국군체육부대에서 훈련을 했다. 진천에 있으면 개인 재활치료를 빨리 받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2명의 트레이너가 선수 16명을 담당한다. 제일 열악한 건 음식이다. 고강도 훈련을 하다 보면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군인 식단에 맞춰야 하니 그럴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한 번씩 행사가 있어 진천선수촌에 가보면 음식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근대5종이 메달을 휩쓸었는데 중계가 안 됐다.
“조직위원회가 근대5종 결승 경기의 중계 제작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번에 중국이랑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정말 재밌게 경기했는데 국민들께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중계가 됐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근대5종의 재미를 느꼈을 것 같다.”
대표팀 주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웠을 것 같다.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해줬나.
“근대5종 단체전 경기는 4명이 출전해 각각의 기록을 더해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상위 3명의 기록만 합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시상대에도 3명만 올라갈 수 있었다. 누가 빠지게 되든 자책하지 말자고 선수들을 다독여줬다. 설령 메달을 따더라도 빠진 사람을 위해 너무 기뻐하지 말자고도 말했다.”
근대5종을 알리기 위해 예능 출연까지 했다는데.
“지금처럼 인스타그램 등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다. tvN 《선다방》에 ‘6시남’으로 출연해 ‘이 종목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전웅태 선수도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털어놨다. 그때 농구 국가대표 선배인 서장훈씨가 ‘금메달을 따면 된다’고 조언해서인지 웅태가 값진 금메달을 따왔다(웃음).”
경기가 끝나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깜짝 은퇴를 발표했다. 대표팀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올해 나이가 서른넷이다(웃음). 해외 선수들과 얘기를 나눠봐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더라. 점점 체력적 한계가 느껴졌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혼자 뒤처지고 힘들어 하니까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동료들과 치고받으면서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생각에 이번 게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내려왔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진한 우정으로 주목받은 전웅태 선수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지막 대회였다. 정진화 선수에게 전웅태 선수는 어떤 의미인가.
“솔직히 전웅태 선수가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훌륭한 선수가 내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웅태는 그야말로 ‘최고의 파트너’다. 함께 보낸 시간이 가족 이상으로 많다 보니 내겐 친동생과 다름없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
“대표팀에 있으면 365일 동안 경기에 적합한 몸을 만들어야 하다 보니 신체적·정신적으로 부담이 컸다. 이제는 태극마크의 무게를 덜고 소속팀에서 선수 생활을 폭넓게 즐겨보고 싶다. 체력이 닿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해보는 게 목표다. 그 후에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 오랜 시간 대표팀 생활을 한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