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무성영화부터 초대형 블록버스터까지 한자리에
화려한 출연진의 시원한 케미 《밀수》
류승완 감독이 《모가디슈》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밀수》는 그 첫 번째 화제작이다. 1970년대 가상의 마을 군천을 중심 무대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바다에 던져진 각종 밀수품을 건지며 살아가던 해녀 등 보통 사람들에게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펼쳐지는 해양 범죄 활극이다. 선호 여부야 갈릴 수밖에 없겠지만, 이 영화는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리기엔 제격이다. 내러티브가 주로 시원한 바다에서 펼쳐져서만은 아니다. 김혜수와 염정아 투톱을 비롯해 조인성·박정민·고민시·김종수에 이르는 6명의 주연과, 박준면·김재화·박경혜·주보비 등 해녀 역의 조연 연기자들까지 개별 연기는 말할 것 없고 그 ‘케미’가 그야말로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성격화(Characterization)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영화를 추동하는 핵심 캐릭터는 김혜수와 염정아가 분한 두 해녀 친구 조춘자와 엄진숙이다. 이 두 여걸은 기대 이상의 합을 자랑하며, 그 레트로성 영화의 재미를 확실히 책임진다. 전국 밀수판을 좌지우지하는 빌런 권상사 역의 조인성과, 치명적 매혹의 어린 다방 마담 고옥분(고민시), 옥분과 ‘썸’을 타며 해녀들을 보필하다 서서히 배신의 아이콘으로 변질돼 가는 장도리(박정민), 그리고 언뜻 의로운 공무원인 듯 보이나 마침내는 최강 악당임이 드러나는 세관 계장 이장춘(김종수)이 합세해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강화시킨다. 옛것을 고쳐 자기만의 새것으로 변형·창조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인 장기하가 맡은 음악효과는 또 어떤가. 최헌의 《앵두》, 한대수의 《하루아침》,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펄 시스터즈의 《님아》, 김정미의 《바람》, 김추자의 《무인도》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 당대를 풍미했던 숱한 명곡에 장기하 특유의 색깔이 가미된 자작곡들이 가세해 영화의 시원함이 한층 더 배가된다. 그래서일까. 《밀수》는 일종의 ‘영화 콘서트’로도 손색없다. 영화는 7월26일 개봉 첫날 31만8000여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1000만 고지를 넘은 《범죄도시3》(이상용 감독)의 2분의 1 정도밖에 안 되긴 해도, 2위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의 개봉일 스코어 23만 명보다는 9만 명가량 많은 상서로운 출발이라 할 만하다. 이쯤 되면 《밀수》의 시원함을 맛보고 싶지 않을까.더위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시원하기로 치면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도 《밀수》 못잖다. 영화는 7편에 달하는 그 시리즈 사상 최대 제작비 2억9000만 달러가 아깝지 않은 초대형 실감 스펙터클과 드라마를 과시한다. 인류 전체를 위협할 새 무기를 추적하는 우리의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와 IMF(Impossible Mission Force)팀은 AI에 의해 조종되는 가공스러운 무기가 인류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 세계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와중에 에단과 그 팀에 어둠의 세력까지 접근하고 마침내 미스터리하고 강력한 빌런과 마주하게 된 그들은 가장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자신들이 아끼는 사람들의 생명과 중요한 임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놀라운 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적잖은 최고난도의 액션들을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사실이다. 톰 크루즈 역시 마찬가지다. 60대에 접어들었거늘 스턴트에 의존하지 않고 거의 모든 액션 신을 직접 소화해 냈다고. 그의 출연작들에 예외 없이 남다른 신뢰가 가는 것은 그만의 진정성 가득한 프로페셔널리즘에서 연유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여간해선 거액이 투하된 할리우드 액션 대작을 즐기지 않는 필자가 그 영화에 흠뻑 빠져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직전 작 《탑건: 매버릭》(2022)도 그랬듯이. 영화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톰을 비롯한 남성들만의 몫이 아니다. 에단의 동료 그레이스 역의 헤일리 앳웰을 포함해 일사 파우스트 역의 레베타 퍼거슨, 화이트 위도우 역의 바네사 커비, 파릭 역의 폼 클레멘티프 등 여성 캐릭터와 배우들도 영화의 활력을 증폭시켜준다. 20·30대 여성 관객들이 이 영화를 가리켜 여성을 다루는 시선이 후퇴했다고 비판해도, 그렇다. 할리우드 액션영화 가운데 이렇게 다수의 여성 캐릭터가 이처럼 멋진 맹활약을 펼치는 영화가 있었던가 싶다. 하긴 이 시리즈는 그 점에서도 큰 주목을 요하긴 했다. 그럼에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처럼 다수의 여성이 이렇게 큰 매혹을 발산한 적은 없었다. 그 점에서 영화는 시리즈 중 최고작이라 평가받을 만도 하다. 제니퍼 코넬리가 있긴 해도, 내가 그렇게 열광했던 《탑건: 매버릭》에서도 여성은 주변적 역할에 머물렀다. 이래저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의 여운은 오래 갈 것 같다. 이쯤 되면 이 영화가 보고 싶지 않을까. 320만 명 선을 바라보고 있는 영화의 흥행 수치가 그다지 흡족하진 않아도 말이다.감동까지 추가한 애니 대작 《엘리멘탈》
시원함에 크고 깊은 감동까지 더해진다면 이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멋진 영화가 지난 6월 중순 이후 한창 상영 중이다. 《밀수》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에 이어 박스오피스 3위에 자리하고 있는 할리우드산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다. ‘엘리멘트시티’에는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가 살고 있다. 재치 있고 열정 넘치는 불 캐릭터 앰버는 어느 날 우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유연한 물 캐릭터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지금껏 믿어온 모든 것이 흔들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앰버의 가족 스토리에, 우정을 넘어 사랑으로 나아가는 앰버와 웨이드 사이의 러브 스토리 등이 결합되며 예상치 못한 재미와 의미, 감동, 교훈 등을 두루 안겨준다.
이 디즈니·픽사 애니는 올 76회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성황리에 월드 프리미어가 됐다. 하지만 북미 지역 흥행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2억 달러가 들어갔거늘, 아직 1억4000만 달러밖에 벌어들이지 못한 것. 이 정도면 흥행 참패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데 한국에서는 500만 고지를 넘어 600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예매율에서도 《밀수》에 이은 2위다. 그 덕일까. 영화는 해외에서 2억2000달러 이상을 벌며 3억6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1926년작 흑백 무성영화 《제너럴》도 ‘강추’
상기 세 편은 다 극장에서 볼 수 있고,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제맛을 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 기다렸다가 컴퓨터 모니터나 TV 화면으로 볼 경우 10분의 1도 채 그 참맛을 즐길 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유튜브에서 무료로나,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단돈 500원이면 볼 수 있는 걸작 고전 영화 한 편 정도 소개하면 어떨까.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슬랩스틱 코미디의 거장 버스터 키튼과 클라이드 브루크맨이 공동 연출하고 키튼이 주연까지 맡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 영화 중 하나인 《제너럴》(1926)이다. 증기기관차 ‘제너럴’과 여자친구 애너벨 리(마리온 맥)를 사랑하는 기관사 조니는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남군에 입대하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이 때문에 애너벨은 조니가 겁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북군이 애너벨이 타고 있는 제너럴을 훔쳐가자 조니는 자신의 두 연인을 구해냄으로써 용기를 입증하려 한다. 이 영화,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흑백의 무성영화니 재미없을 뿐만 아니라 지루할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50여 년간 영화를 즐겨온 시네필로서 장담컨대, 손에 땀을 쥐게 할 긴장감에 ‘깜놀’할 것이라 장담한다. 놀라지 마시라, 리듬과 기예 가득한 영화의 모든 스턴트를 버스트 키튼이 직접 해냈다. 그렇다면 톰 크루즈의 대선배 아닌가. 그렇다. 톰 크루즈는 단언컨대 버스터 키튼에게 오마주(경의)를 바친 것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성룡과 기타노 다케시 등이 그랬듯. 느닷없이 이 ‘오래된 미래’를 추천하는 것은 그래서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과 연관 지어 영화를 보면 그 재미에 빠져들지 않기란 ‘미션 임파서블’일 테다.■ 전찬일 영화비평가는
1993년 11월 월간 ‘말’에 기고한 이래 줄곧 비평가로 활동해 왔다. 팟캐스트 ‘매불쇼’ 고정 출연 등을 통해 비평 활동의 외연을 확장 중이다.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과 부산콘텐츠마켓(BCM) 전문위원을 역임 중이며, 저서로는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