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상위 100대 상장사 중 86개사 자사주 보유…32조원 규모
“적대적 M&A 방어 유일 수단…강제하면 투기자본 타깃될 것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자기주식(자사주) 소각 의무화’ 움직임에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이 큰 만큼, 규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29일 매출 100대 상장회사 자사주 활용 동향 분석 자료를 통해 “기업들이 자사주 정책 변화나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비해 자사주 물량을 대거 주식시장에 풀 경우 소액주주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최근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상장기업의 상대적 저평가) 해소를 위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1월 업무보고를 통해 자본시장법 개정 등으로 자사주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1년 상법 개정으로 배당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 취득이 허용된 이후, 기업들은 주주가치 제고나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자사주를 요긴하게 활용해 왔다.
공기업·금융회사를 제외한 2022년 매출 실적 상위 100대 코스피 상장사 중 86개사가 자사주를 갖고 있으며, 금액으로는 31조5747억원 규모다. 자사주 평균 지분율은 4.96%로 집계됐다. 코스피 전체로 봐도 78.3%의 기업이 평균 4.36%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 강화 등에 대비해 기업들이 자사주 물량을 주식시장에 내다팔 경우 주가 하락으로 막대한 소액주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전경련의 설명이다.
전경련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법률 간 충돌을 부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은 2011년 개정 상법에 따라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를 취득·처분할 수 있게 됐는데, 자본시장법이나 시행령에 소각 강제 조항을 넣으면 상법과 배치되거나 상위법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업 경영권도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자사주 취득과 처분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적대적 인수합병(M&A)를 방어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데, 자사주 소각을 강제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상위 100대 코스피 상장사가 낸 자사주 취득 예정 공시 56건 중 37건(66.1%)은 ‘주주가치 제고’가 목적이었다. 이어 임금·성과 보상이 11건(19.6%), 이익 소각 6건(10.7%), 우리사주조합 등 출연 2건(3.6%) 등이었다.
기업의 자사주 소각 실적 규모는 2018년 이후 지난 5월 19일까지 5년여간 총 29건, 13조2430억원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2018년 7조1000억원 소각과 SK텔레콤의 2021년 1조9000억원 소각 등이 대표적이다.
추 본부장은 “이미 기업들이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 만큼 기업 현실에 맞는 자사주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