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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6일은 ‘10·29 참사’ 희생자들의 49재를 맞은 날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과 정의당 대표 이정미는 이날 오후 이태원역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에 참석했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참석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윤석열의 불참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자 국민의힘 의원 김기현은 “역대 대통령들이 국가원수 자격으로 사건·사고의 49재에 참석했다는 보도를 접한 기억이 없다”며 “가족을 잃어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잘 추스르시도록 힘 모아 위로해야 할 때에 마치 대통령이 유가족들에게 등이라도 돌린 듯 자꾸 상처를 헤집는 민주당의 행태가 목불인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비판의 우세는 단연 ‘49재 불참’을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수일간 이루어진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나는 2020년에 내가 발표한 “왜 대통령이 목사 노릇을 하면 안 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은 미국 역사학자 헨리 그라프가 1987년 5월27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당시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행태와 관련해 “대통령은 목사가 아니다”고 한 주장을 다룬 것이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날로부터 49일째인 16일 저녁 이태원역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사고 장소를 방문해 추모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날로부터 49일째인 16일 저녁 이태원역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사고 장소를 방문해 추모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그라프는 이 칼럼에서 시민들과의 뜨거운 포옹과 눈물을 잘 구사하는 레이건의 목사 노릇을 비판했다. 레이건이 꼭 쇼맨십을 부리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관행이 대통령의 고유 임무의 일부로 정착될 경우 생겨날 위험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그러한 상징적인 정치 행위는 텔레비전 때문에 생겨난 것인데, 텔레비전 앞에서 목사 노릇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단 말이냐고 그라프는 반문했다. 그간 레이건은 해군 병사 37명이 사망한 스타크함 피격 사건의 경우처럼 국가적 재난이나 비극과 관련한 행사에선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뜨거운 인간애’를 보여주곤 했다. 레이건은 스타크함을 비행기라고 부르는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이 거행된 플로리다의 해군기지에서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녀를 껴안은 레이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으며, 이 감동적인 장면을 미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레이건이 저지른 엄청난 군사정책 과오에 대한 책임은 실종되었으며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라프는 일련의 감동적인 장면이 은폐하는 문제들에 주목하면서 레이건의 목사 노릇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었고,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했다. 그런데 ‘10·29 참사’ 국정조사와 그간 불거진 모든 관련 논란을 지켜보면서 과연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상 조난 사고’는 거의 2배로 증가했으며, 경향신문 조사에서 69.1%의 응답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법·제도 정비나 투자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세상엔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것도 많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특히 안전에 관한 우리의 의식과 문화는 고래 심줄처럼 질긴 힘으로 변화를 거부한다. 나는 세상이 달라질 걸 믿으면서 “대통령은 목사가 아니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어차피 달라지지 않는다면 목사 역할에 충실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윤석열 정권은 ‘공감’보다는 ‘둔감’에 능한 데다 참사에 대한 정치적 이용이 성행하는 위선의 땅에서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인 해법일지도 모르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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