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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령》에서 역대급 액션과 내면 연기 펼친 이하늬

지난해 6월 엄마가 된 배우 이하늬가 영화 《유령》을 통해 컴백했다. 딸을 낳은 지 200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공식 석상에 오른 그녀는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유령》은 1933년 경성이 배경으로, 항일조직이 조선총독부에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의 용의선상에 오른 5명이 외딴 호텔에 갇혀 서로를 의심하고 탈출하려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극 중 이하늬는 베일에 싸인 여성 박차경 역을 맡았다. 항일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는 인물 중 하나로 설경구, 박소담, 서현우, 김동희, 박해수 등과 함께 호흡했다. 연출을 맡은 이해영 감독은 “박차경이라는 캐릭터는 시나리오의 첫발을 떼는 첫 단추였다. 이하늬 배우를 시나리오 단계부터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촬영하면서 이하늬 배우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면서 촬영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이하늬와의 작업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하늬는 “차경은 헤아려지지 않을 정도의 가장 깊은 슬픔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서 해소시키는 것이 아닌 하염없이 깊이 누르는 캐릭터였다. 그간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서 ‘차경’이 가장 큰 그릇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연기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개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의 변신과 짙은 의심의 함정, 멈출 수 없는 작전 사이의 대결을 기대하게 하는 이해영 감독의 스파이 액션 영화 《유령》은 1월18일 개봉했다.
ⓒCJ ENM 제공

출산 후 복귀작이다. 기분이 어떤가.

“요즘 배우 코스프레 하는 느낌이다(웃음). 출산은 많은 여성이 겪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무언가 달라진 건 분명하다. ‘삶을 녹여내는 배우’로 살고 싶다. 물론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를 돌보는 일에도 고민이 많다. 그런데 되는 대로 하자고 생각했다. 닥치는 대로 기쁘게 하자고 마음먹으니 행복으로 삶을 채울 수 있더라. 감정은 49와 50의 선택 아닌가. 하하.”

차경이라는 캐릭터는 기존에 해왔던 역할과는 다르다. 절제돼 있고, 내재돼 있다.

“차경이라는 인물은 모노톤, 회색에 가깝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시뻘건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이다. 제가 안 할 이유가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반갑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감정을 눌러 담으면서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었다. 드라마 《원 더 우먼》처럼 제 분량이 많을 때는 ‘나는 래퍼’라고 생각하고 대사를 외웠었는데(웃음) 이번 작품에선 오히려 대사가 없더라. 대신 캐릭터의 감정선과 삶 자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이 캐릭터를 이해하기까지 어떤 고민들을 했나.

“만일 차경이 1차적인 분노나 슬픔을 그대로 표출하는 캐릭터라면 오히려 접근이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인물은 죽기 위해 사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삶을 제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게 어려웠다. 죽음을 위해 사는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내가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한 발의 총으로 덧없는 존재가 됐을 때, 그다음 생을 어떤 의미로 끌고 가야 될까.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설경구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가문의 영광이다(웃음). 배우로서 성공했다는 여러 척도가 있겠지만 저는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배우, 감독과 작업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설경구 선배와 한 공간에서 숨 쉬고 같이 일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경구와의 액션 신도 화제다. 모든 액션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고 들었다.

“극 중 설경구 선배와 하는 액션 신은 ‘스타일리시한’ 액션이라기보단 ‘너 죽고 나 죽자’ 신에 가깝다(웃음). 죽음을 각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처절한 액션이랄까. 저는 이 신을 한편으론 감정 신으로도 생각했다. 죽음을 놓고 포효하는 장면이었다. 적어도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전문가분들이 처음에 소리를 지르라고 팁을 주셨다. 처음에는 힘 빠지는 기합만 들어갔는데, 나중에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가 나더라. 제 소리가 너무 커서 녹음을 다시 해야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독립투사들이 다들 그랬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해영 감독이 “마동석이나 다름없다”는, 액션 배우에겐 극찬을 했다.

“대학교 때 체육부 소속 남학생과 팔씨름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이겼다. 골격이랑 힘이 좀 남다르다. 그래서 아마 감독님께서 이 역할을 내게 맡기신 것 같기도 하다. 성별과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몸에서 에너지 파동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차경도 마찬가지다. 멋있는 액션이라기보다는 에너지 자체가 끈질긴 캐릭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후배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하다.

“이솜은 모델 체격에다 여러 얼굴이 있는 친구다. 그래서인지 스파이 코트를 입었을 때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외모인데 씨익 웃을 땐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얼굴도 있더라. 그리고 (박)소담이는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가 이 작품을 촬영할 때였다.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을 텐데도 내색을 전혀 하지 않더라. 액션 신도 보통의 배우들에게선 볼 수 없는 기개로 임해 감동적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알려진 바와 같이 함께 연기한 박소담은 이 작품 촬영을 마친 2021년 12월 갑상선 유두암 수술을 받고 1년여 만에 쾌차했다).”

요즘 육아하는 일상은 어떤가.

“한 인간을 품고 키운다는 건 정말이지 신선한 경험이더라. 미성숙한 제가 혹시나 아이가 가진 고유의 기질을 방해할까봐 두려움도 생기더라.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행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이유로 어떨 땐 숨도 안 쉬어질 만큼 책임감이 느껴지지만 또 이만한 행복을 다른 영역에선 찾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산과 육아가 이하늬라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하다.

“한 생명의 씨앗이 태아로 시작해 인간이 되기까지 제 몸 안에 있다가 27시간 진통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신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의 고통 자체가 신의 영역 같았다. ‘엄마’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고 앞으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편해졌다. 자기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무기력함 없이 내려놓을 줄 아는 게 ‘어른’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부모가 되면 다 어른이 된다는 말을 몸소 느끼는 요즘이다. 예전엔 내 안에 책임감이 가득했다. 그래서 죄책감도 컸다. 이제는 ‘인간 이하늬’를 좀 더 놔주고 싶다. 숨 쉴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오랜만에 만난 대중에게 한마디해 달라.

“저를 둘러싼 모든 일이 감사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큰일을 겪어서인지 예전에 익숙하게 해왔던 일들도 익숙하지 않게 느껴진다. 늘 하던 일인데도 제작보고회 때는 낯설기까지 하더라. 데뷔 이후 가장 오래 활동을 안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더 편안해지고 여유도 생긴 것 같다. 올해는 더 많이 일할 계획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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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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