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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승희, ‘피해계좌 지급정지’ 신속히 이뤄지도록 개정안 발의
전문가들, 실효성 두고 이견…“보이스 피싱 근본 예방책 필요”

서울에서 자취 중인 30대 여성 A씨는 최근 가슴이 철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경찰관이 찾아온 것이다. A씨의 어머니 B씨(70대)로부터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에 B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오히려 B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괜찮냐”며 물어봤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B씨가 A씨의 번호로 협박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어눌한 조선족 말투도 아니었다고 한다. 다행히 B씨는 협박범에게 돈을 보내기 전에 경찰 신고부터 먼저 했다. 만약 협박범에 속아 넘어갔다면 B씨도 하루아침에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될 뻔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보이스 피싱’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A씨 모녀의 경우처럼 보이스 피싱범들은 전화번호 변조 프로그램으로 번호를 위조해서 전화를 거는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가족 당사자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오면 속기 십상이다. 보이스 피싱범들에게 속아도 피해자가 금융회사에 해당 계좌의 지급정지를 직접 요청하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스 피싱의 특성상 사회경험이 부족한 20대 이하 청년들과 전자기기에 취약한 노령층은 이러한 방법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당하는 경우가 많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까지 총 1만8783명이 보이스 피싱 피해를 당했다. 이중 사회경험이 부족한 20대 이하 피해자는 30%(5599명)에 달했다. 특히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 피해자가 절반에 가까운 46%(8635명)에 이르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보이스 피싱에 당했다면 사기이용계좌를 신속하게 지급 정지 조치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 현행 과정은 계좌 지급정지, 채권 소멸 등 피해구제 절차가 복잡해 시간이 소요된다.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한 곳의 지급정지가 이뤄지는 동안 다른 금융회사의 계좌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이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7월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에서 ‘기관 사칭형’의 비중은 37%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증가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보이스피싱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수사기관에 신고 즉시 피해계좌 지급정지?

국회에서도 대안을 찾고 있다. 황보승희 의원은 지난 4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수사기관이 피해자로부터 보이스 피싱 피해 사실을 신고 받으면 즉시 해당 금융회사에 피해사실을 통보, 금융회사가 바로 지급정지 조치를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신속하게 지급정지가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 또 악용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이스 피싱 피해를 허위로 신고하면 처벌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황보 의원은 “지난해까지 보이스 피싱 누적 피해 금액이 4조 원에 달하고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있음에도 총책 등 핵심 용의자 검거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며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의원실 관계자 역시 “번거로운 절차를 간소화해서 신속하게 지급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취지”라며 “보이스 피싱 피해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 ⓒ황보승희 의원실 제공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 ⓒ황보승희 의원실 제공

“은행 권한 더 늘려야” vs “입법으로 해결 어려워”

전문가들도 해당 법안의 취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시간을 줄여주는 점은 좋다”며 “다른 계좌에서 돈이 인출되는 시간의 사각지대까지 해소함으로써 상당 부분 피해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전 거래에 지장을 초래하는 등 악의적 목적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례도 나올 것인데, 이런 부분까지 법안에 포함된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해당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선 반응이 엇갈린다. 이 교수는 시민들이 기대한 만큼 완벽한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이스 피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은행원이나 경찰 등 금융·수사 관계자들이 보이스 피싱 정황을 발견했을 때 직접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아동학대 범죄를 예로 들어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교사·의사 같은 관계자들이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이스 피싱이 의심되는 경우에도 은행원이 창구에서 즉각 신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거나, 경찰도 보이스 피싱 정황으로 보이는 출금을 강제할 수 있는 등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보이스 피싱 예방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 연구위원은 “입법적으로 해결하기엔 지나치게 포괄적인 면이 있다”며 이견을 표했다.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 고객 동의도 없이 직접 조치에 나서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보이스 피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확대하고 보이스 피싱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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