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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인 결산서류의 보조금 관련 공시는 단 1칸에 불과…모든 수익의 지출명세서 공개해야
보조금 69조원, 어떻게 썼는지 아무도 몰라
그럼에도 광복회와 새희망씨앗, 정의기억연대 등 일부 공익법인의 부실한 회계처리와 불투명한 기부금 사용이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28일 대통령실은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그 배경에는 정의기억연대 등이 보조금 및 기부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전례가 있었음을 언급했다. 지속적인 노력에도 공익법인의 투명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진짜 이유는 뭘까. 핵심은 여전히 부족한 공시 정보 수준이다. 현재 국내 공익법인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보조금이다. 2021년 공시 기준 전체 기부금 규모는 8조4000억원, 보조금은 69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보조금이 기부금의 8배가 넘는다. 하지만 수십조원에 육박하는 이 보조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대중은 알 길이 없다. 기부금 지출 내역은 국세청 공시 결산서류를 통해 공익법인별로 확인할 수 있지만, 보조금 사용 내역은 법인이 아닌 사업별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또 세부 결과에 대해 표준화된 양식이 없어 일반인은 확인하기 쉽지 않다. 즉 국세청 공시 결산서류는 공공 데이터로서의 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기관에서 사용 내역을 확인한다고 하지만, 현행법에 따라 수령 보조금이 10억원 미만인 사업자는 회계 감사가 면제된다. 3억원 미만이면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까지 면제된다. 이 같은 허술한 관리규정 틈새로 제2의 정의기억연대나 광복회가 나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미국은 비정부기구(NGO)의 투명성을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미국 NGO는 ‘IRS990’이라는 12페이지 분량의 필수 공시 양식과 함께 기구 특성에 맞는 첨부서류를 추가로 국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세제 혜택을 받는 기구는 사업 내용과 기부금 및 수입·지출 내역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심지어 임직원의 보수도 공개하게 돼있다. 또 제출 서류에 중요 사항을 써넣지 않은 경우 불완전한 보고로 간주되고, 제출 기한 내에 보완하지 않으면 하루에 20~1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반면 한국의 공익법인 결산서류는 필수 공시 양식이 4페이지에 불과하다. 또 언제든 재공시가 가능해 경각심을 갖기 힘든 구조다. 더군다나 결산서류에서 보조금 관련 공시는 단 1칸에 불과하다. 보조금을 얼마나 받았는지만 기입하면 되기 때문에 쓰임새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국세청 공시 범위 확대하고 보고 양식 통합해야
일례로 광복회의 2021년 공시자료를 보자. 총수입 64억1000만원 중 보조금이 45억원으로 가장 많다. 하지만 지출 내역은 기부금인 10억원에 대한 내용만 있다(표1 참조). 반면 미국 IRS990 공시 지출 내역을 보면 기부금, 보조금, 회비 등 모든 수입금 내역을 다 적게 돼있다(표2 참조). 이것만 봐도 특정 단체의 전체 사업지출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 미국은 공익 목적 사업으로 지출한 경우 지원을 받은 단체나 개인의 정보를 상세히 기술하게 돼있다. 광복회의 경우 기부금 지출명세서의 첫 행에 ‘안○○, 500만원’이라고만 적혀 있다(표3 참조). 안○○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목적으로 지원했는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실은 보조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했다. 나아가 보조금법 관리 규정과 시스템을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투명하고 통합된 정보다. 기부금과 보조금의 쓰임새가 전면 공개되면 투명성이 좀 더 확대될 것이며, 나아가 비영리단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익법인 국세청 공시 양식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이를 중심으로 모든 비영리단체의 보고 양식을 통합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된다면 공익법인은 보고서 작성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정부는 관리·감독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익법인을 향한 신뢰성 강화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