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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맹추격 중인 2위 팀 감독을 하루아침에 경질
해고 사유가 “구단 방향과 안 맞아서”…태광그룹 입김설도
역대 사령탑 거쳐간 10명 중 7명, 시즌 도중 ‘해고’ 통보
전년도 사실상 꼴찌와 같은 6위의 성적표(최하위 7위는 신생 창단 구단 페퍼저축은행)를 냈던 흥국생명은 올해 김연경이 다시 팀에 합류하면서 단독 선두 현대건설을 위협할 대항마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29일 열린 현대건설전에서 승리하면서 자신감도 얻은 터였다. 3라운드까지 14승4패·승점 42점. 지난 시즌부터 승승장구 중인 현대건설(16승2패·승점 43점)과는 승점 차이가 3점밖에 나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팀 공격성공률이 41.76%로 리그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고 있기도 했다. 관중 동원 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김연경 복귀 효과로 남녀 구단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평균 관중 1위(4380명)를 달리고 있었다. 성적도 흥행도 남부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트의 수장 지휘권을 박탈했다. 배구계 안팎에서 명분 없는 감독 해고라는 얘기가 나온다. 보통 시즌 중 감독 교체는 팀 성적이 나쁘거나 사령탑 개인의 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스포츠라는 유기체는 조그만 충격파에도 휘청이는 탓에 시즌 중 수장 교체는 구단들이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데 잘나가던 팀을 흥국생명 구단 스스로가 뒤흔들었다. 배구 관계자들은 급작스러운 권 감독 해임에 모그룹인 태광그룹 고위층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추측한다. 권 감독이 김연경을 비롯해 김미연·김나희·김해란(리베로) 등 30대 선수들을 중용하는 데 따른 불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30대 베테랑의 활약 속에 20대 초반 선수들은 이주아를 제외하곤 김다은·박수연·정윤주·도수빈(리베로) 등이 경기 중 교체 선수로 출전하기 일쑤였다. 애초 흥국생명이 권 감독과 계약한 이유가 팀 리빌딩이었던 탓에 이러한 선수 기용이 구단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 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김연경 복귀’라는 돌발 변수를 간과한 점이 없지 않다. 김연경-옐레나 쌍포 가세로 충분히 우승까지 노려볼 만한 전력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우승에는 때가 있기에 리빌딩보다는 윈나우 기조로 전환하는 것이 적합한 방향성이었다. 가뜩이나 김연경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FA) 신분이 되는 터. 권 감독이 승리를 위해 경험 많은 베테랑을 기용한 이유다. 권 감독은 해임 통보를 받은 뒤 KBS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일을 저질러서 경질된 거면 억울하지도 않다. 단장이 문자로 (선수 기용) 오더를 내리는 게 있었다”면서 “내가 그것을 안 들었다”고 폭로했다. 선수 기용은 전적으로 코트에 있는 감독 고유의 권한인데 선을 넘는 행위를 구단 측에서 했다는 얘기다.감독들의 무덤이었던 흥국생명의 비상식적 구단 운영
사실 흥국생명이 황당하게 사령탑을 교체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 황현주 감독은 2005~06 시즌 1위를 달리고 있다가 2006년 2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전신인 호남정유 시절 사령탑이었던 김철용 감독이 갑자기 선임되면서 수석코치로 강등을 제의받았으나 황 감독은 거부했다. 이후 2006~07 시즌 때 선수단이 김철용 감독에게 항명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황 감독은 다시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는 못했다. 황현주 감독은 2008~09 시즌 초반 1위를 달리던 중 다시 잘렸다. 흥국생명은 “황 감독이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했다”는 식으로 해고 이유를 밝혔으나 이후 황 감독이 아닌 구단 측이 부상 선수들의 출전을 종용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황 감독 경질 뒤 흥국생명은 당시 세화여고를 이끌던 이승현 감독을 사령탑으로 앉혔으나 이해할 수 없는 감독 교체로 크게 동요한 선수단을 추스를 수는 없었다. 지도력 부족으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 감독은 부임 70일 만에 사의를 표시했고, 어창선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이끌었다. 어창선 감독대행은 팀 분위기를 바꾸면서 정규리그 3위였던 흥국생명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9년 4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으나 어 감독 또한 팀 성적 저조로 2009~10 시즌 중간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차해원 감독이 2012~13 시즌 도중 계약 해지되는 등 흥국생명은 감독들의 무덤이 됐다. 박미희 감독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8년간 팀을 이끌면서 흥국생명의 감독 잔혹사는 끊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2년 계약의 권순찬 감독이 중도 해임되면서 흥국생명 사령탑 자리가 다시 ‘독이 든 성배’가 되는 모양새다. 프로구단은 우승을 목표로 한 시즌을 뛴다. 하지만 흥국생명의 지금까지 행보는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구단주, 혹은 태광그룹 고위층의 취향에 맞지 않는 배구를 했다는 이유로 배구단 수장을 경질하기 일쑤였다. 2005년 V리그 출범 뒤 흥국생명을 거쳐 간 10명의 사령탑 중 권순찬 감독을 포함해 7명이 시즌 도중 옷을 벗은 게 단적인 예다. 감독 교체 충격파는 선수들과 이들을 응원하던 팬들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권 감독 해고에 김연경 등 흥국생명 고참 선수들이 경기 보이콧 얘기까지 했다는 말도 들린다. 흥국생명은 2021~22 시즌 전에 과거 학교폭력 문제로 무기한 출전 정지가 내려진 이재영-이다영 자매를 리그에 복귀시키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적이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비상식적 구단 운영으로 배구계 빌런이 되고 있는 흥국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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