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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길어질수록 홍콩 경제만 무너져…정작 중국 본토에는 별 영향 없어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반대하면서 촉발된 홍콩 시위 사태가 9월16일로 100일이 됐다. 이번 사태는 2014년 ‘우산혁명’의 시위 기간을 이미 뛰어넘었다. 또한 시위 참가자의 적극성이 두드러졌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기소된 사람은 9월18일까지 189명이다. 이 중 18~29세가 131명을 차지했고, 미성년자도 11명이 기소됐다. 72명은 폭동 혐의로 기소됐는데, 범죄가 입증될 경우 중형을 받게 된다. 시위 기간 발사된 최루탄은 2414발이었고 고무탄은 503발, 스펀지탄은 237발 사용됐다.
환구시보 “관광객 줄면서 연쇄 타격”
9월17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가 홍콩의 최대 장점”이라며 “홍콩은 중앙정부와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서 일대일로(一帶沿途·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라는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 사설은 매서웠다. 환구시보는 “100일 전 아시아 금융허브이자 자유항이었던 홍콩에서 혼란과 폭력이 일상화됐다”면서 “홍콩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상업, 호텔업, 운수업 등이 연쇄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 사설의 주안점은 ‘혼란과 폭력’의 양상이 아니다. ‘연쇄적인 타격’을 부각시켜 홍콩인들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올해 2분기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0.6%를 기록했다. 이는 우산혁명이 고조됐던 2014년 4분기 성장률인 4.2%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낮다. 그로 인해 홍콩 정부는 올해 전망치를 여름철에 수정 제시했던 2~3%에서 최근에는 0~1%로 대폭 하향했다. 경제가 추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홍콩의 양대 지주산업인 금융과 관광에서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6월초 시위 사태가 시작된 이래 홍콩 증시가 급락하면서 시가총액에서 6000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또한 기업공개(IPO) 자금 조달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90%나 줄어들었다. 실제 알리바바, 버드와이저 브루잉 등의 대규모 상장계획이 연기됐다. 관광업의 피해도 심각하다. 지난달 호텔 객실 점유율은 60%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30%나 폭락한 수치다. 그로 인해 호텔 종사자의 77%는 호텔로부터 무급휴가를 요청받았고, 40%는 고용주가 해고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홍콩 첵랍콕공항도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홍콩 공항 이용객 수는 600만 명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4% 줄어든 수치로, 2009년 6월 18.9% 이후 최악이다. 특히 9월12~13일 시위대의 점거로 사상 유례없는 폐쇄 사태가 발생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아니기에, 홍콩 공항이 받은 이미지 타격은 엄청나다. 그로 인해 홍콩과 가까운 광저우가 반사이익을 누렸다. 지난달 광저우공항 이용객 수는 650만 명에 달했다. 두 공항은 주강(珠江)삼각주의 허브공항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방문객이 줄어들면서 내수는 침체일로다. 지난달 소매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3% 줄어들었다. 특히 관광객에 의존하는 보석, 시계 등 사치품 매출은 더욱 감소했다.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銅灣)의 점포 1087개 중 102개가 비어 공실률은 9.4%에 달했다. 내년에는 공실률이 11%에 달할 전망으로, 명품 프라다가 대형 매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이미 밝힌 상태다. 홍콩 부동산업계에서는 내년 핵심 상업지구에서 600개의 상점이 문을 닫아 수백 명이 일자리를 잃고, 임대료도 30%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중국 정부는 계속 사태 관망할 것”
경제 피해가 공론화되면서 홍콩 정부도 유화책을 내놓았다. 지난 9월16일 ‘대화 플랫폼’을 추진할 부서를 신설했다. 이 조직은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직속 기구다. 앞으로 △다양한 계층과의 대화 △경찰 진압과정 조사 △홍콩 사회문제의 원인 조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9월18일에는 수백 명의 구의원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 세력과 민주파 정당은 대거 불참했지만, 향후 지속적인 대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중국 최고지도부는 홍콩 시위 사태에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과 지방 부처도 외교부와 홍콩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국무원의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을 제외하곤 언급이 전혀 없다. 정부 부처와 언론매체가 홍콩 사태를 다루는 방식도 흥미롭다. 오직 △시위대의 폭력성 △외국 세력의 개입 △홍콩 경제의 위기 상황만 집중 부각시킨다. 실제 민주파 정당의 입법회 의원들이 시위 진압과정 중 홍콩 경찰의 폭력 문제를 유엔에 조사 요청하자, 중국 외교부와 언론은 반격했다. 9월17일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조사가 필요한 것은 홍콩의 극단주의 폭력 세력”이라며 “현재 홍콩은 인도주의적 위기가 아니라 법치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부 서방 세력이 여러 방식으로 홍콩 문제에 개입하고 폭도들을 지지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시위대가 미국 민주기금회의 자금을 지원받아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 의회에서 발의된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을 견제하고, 미국을 방문해 활동한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中国香港衆志)당 비서장을 비판한 것이다. 중국의 이런 대응은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한 레토릭이다. 사실 중국 정부는 외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도를 통제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혼란과 폭력을 극단적으로 부각해 언론이 보도하도록 지침을 내린다. 그리고 종착점은 언제나 ‘경제 위기’다. 최근에는 통계와 자료를 더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패턴은 해외에서 발생하는 민주화운동이 중국 내로 퍼지지 않게 하고, 사회 혼란을 두려워하는 민심을 다독이는 데 효과가 있다. 과거 중국은 무질서의 끝판왕인 문화대혁명을 혹독하게 겪었다. 따라서 향후 중국은 홍콩 정부와 홍콩 내 친중 언론을 앞세워 경제 위기설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언론을 앞세우되, 중국 정부가 계속 관망만 하는 이유는 홍콩 시위 사태가 중국인들에게는 정작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세 개입’ 레토릭이 중국인들에게 먹혀들었다. 중국인들은 19세기와 20세기 전반 외세 침략으로 국난을 겪은 역사에 대한 공포감이 있다. 여기에는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현실도 한몫한다. 지난해 홍콩 인접 도시인 중국 선전의 GDP 규모가 홍콩을 앞질렀다. 홍콩의 GDP는 중국 전체의 4%에 불과하다. 홍콩 경제가 흔들려도 중국 본토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