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락인의 사건추적] 부평 콘크리트 암매장 사건
옷 벗기고 소지품 모두 없애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20대 여성으로 키 162~170cm 사이로 추정된다는 감식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인종은 동양계 몽골로이드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몽골, 티베트 등이 포함된다. 시신의 오른쪽 아래 첫 번째 어금니가 빠져 있었는데, 국과수는 생전에 탈골된 것이라는 소견을 냈다. 또 갈색의 긴 머리는 염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원인은 ‘불명’이다. 타살 가능성이 높지만 사체에서 두개골 함몰이나 골절 등 살해와 관련된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독극물 검사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경찰은 시신에서 유전자(DNA)를 확보해 실종자와 대조작업을 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또 콘크리트에 찍혀 있던 피해자의 지문을 채취해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검색했으나 일치하는 정보가 없었다. 결국 백골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자의 신원 확인과 사망 시점이 특정돼야 한다. 경찰은 신원 확인이 안 되자 사망 시기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뒀다. 탐문수사 결과 재래식 화장실은 공장이 지어질 당시부터 있었으나 콘크리트 구조물은 없었다. 화장실과 콘크리트 구조물의 색상에 차이가 있었는데 이것은 지어진 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크리트는 원래 강알칼리성을 띠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해 중성화가 진행된다. 중성화가 되려면 보통 10년 정도 지나야 한다. 경찰은 콘크리트 중성화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험을 진행했다. 그랬더니 화장실 콘크리트는 변화가 없었으나 시신이 발견된 콘크리트는 보라색으로 변했다. 색이 변한 것은 중성화되기 이전이라는 뜻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시신 발견 콘크리트 구조물은 10년이 지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시신 매장 시점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는 또 있었다. 현장에서는 시멘트 포대 일부와 농심 ‘보글보글’ 컵라면 수프, ‘하나로’ 담뱃갑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 물건들에 대한 제조일자와 단종 시기를 파악했다. 라면 수프 봉지는 2001년 5월에서 2006년 9월27일까지 생산됐고, 2007년 3월26일까지 유통됐다. 담뱃갑은 2008년 이전에 생산된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시신이 매장된 시기는 2006년에서 2008년 사이로 좁혀졌다. 경찰은 건물이 신축된 시기부터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소유주를 조사했다. 지금까지 총 3번에 걸쳐 건물주가 바뀌었고, 시신 매장 추정 시기에는 서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가 공동명의자였다. 건물 2층은 식칼을 만드는 공장으로, 3층은 기숙사로 사용됐다. 당시 건물주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도 건물주였던 서씨와 이씨를 불러 조사했다. 두 사람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 ‘모른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경찰이 확보한 관련 자료 중 의미심장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백골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문제의 장소를 촬영한 것이다. 여기에는 재래식 화장실 옆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이 사진은 서씨가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촬영 시기는 2013년 11월쯤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 출처에 대해 서씨는 ‘화장실 주위를 청소했던 청소업자’라고 밝혔다. 그가 서씨의 부탁으로 촬영한 사진이라는 것이다.용의선상에 오른 의문의 건물주
하지만 해당 청소업자는 사진의 출처를 ‘서 사장’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청소작업을 한 것도 서씨가 말한 ‘11월’이 아니라 한 달 후인 ‘12월’이라며 작업일지를 근거로 제시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017년 5월13일 이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당시 서씨와도 접촉했다. 그는 처음에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고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했다. 사진의 정확한 출처 확인을 위해 재차 접촉을 했지만 민감하게 반응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이상한 것은 또 있었다. 서씨는 해당 건물에서 무당까지 불러 돼지에다 삼지창을 꽂는 ‘대형 굿’을 진행했다. 이런 굿을 5번 정도 했는데 무속인은 ‘타살 군웅 굿’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그 터에 사는 사람들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그 터가 원래 무덤이 있던 자리이거나 시신이 매장돼 있던 자리라든가 객사해서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한 굿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경찰의 오랜 수사에도 피해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공장에서 근무한 직원과 관계자 등 500여 명 이상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으나 공장에서 근무한 것이 너무 오래돼 확실하게 기억해 내지 못했다. 사건 관련 목격자나 추가 증거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주변의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쳤을 낡은 공장만큼이나 백골 시신은 오랫동안 자신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못했다. 시신은 2016년 6월 강화도에 있는 무연고자 공설묘지에 봉분도 없이 매장됐다. 생전의 이름 대신 ‘덕성 63’이라는 임시 분류명으로 표기돼 있다.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면식범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다
사건 현장에는 매장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범인은 사체를 매장할 때 옷을 모두 벗겼다.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얼굴에는 등받이 쿠션 속을 덮어놓았다. 범죄 전문가들은 ‘죄책감에 따른 행동’으로 분석했다. 범인이 피해자와 모르는 사이라면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콘크리트 구조물 내부를 보면 어두운 시간에 급하게 매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범인은 매장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시체를 눕힌 다음 시멘트를 개어 시신 위에 펴 바르지 않았다. 벽돌로 외벽을 쌓은 후 안에 시신을 넣었다. 그 위에 시멘트 가루를 붓고 다시 물을 부어 굳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3회 정도 반복했다. 이것은 범인이 시멘트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를 감추기 위해 재래식 화장실 옆에 매장하는 지능적인 면모를 보였다.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나온 시멘트 포대 일부와 라면 수프 봉지, 담뱃갑에서도 매장 당시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범인이 일부러 넣었다기보다 당시 시간대가 어두운 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급하게 하다 보니 범인도 모르게 딸려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2. 범인은 공장 내부에 있다
범인은 피해자의 시신을 인근 야산 등에 유기하는 대신 공장 내 재래식 화장실 옆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매장했다. 구조물의 크기는 너비 132cm, 폭 90cm, 높이 40cm 규모다. 이런 구조물을 공장 내에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공장 관계자뿐이다. 외부 사람이나 일반 직원이 몰래 설치했다면 금방 건물주의 눈에 띄었을 것이고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심받지 않고 철거되지 않은 것은 건물주나 공장 관리자 등이 연관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더욱이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시멘트 7포대와 1.5리터 생수병 42개 분량의 물이 사용됐다. 이것을 준비하고 매장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3. 피해자는 외국인 노동자일 가능성 높다
피해자는 20세를 넘긴 성인 여성이다. 한국인은 성인이 되면 주민등록증을 의무적으로 발급받아야 한다. 만약 피해자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면 지문이 남아 있다. 지문 대조를 해 보면 금방 신원이 확인된다. 하지만 피해 여성과 일치하는 지문은 없었다. 물론 10대 시절에 가출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종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피해 여성이 내국인보다는 불법체류 외국인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청천공단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취업해 일하고 있었다. 해당 건물에 입주해 있던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피해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변사자 수배’를 했지만 유의미한 제보가 없었던 것도 외국인 여성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