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검사 항목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
건강검진을 받기 좋은 시기는 가을이다. 병원업계에서는 10월 이후를 건강검진 성수기라고 부른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이유는 뚜렷하다. 병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기 위함이다. 초기 증상이 없는 질환은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병을 조기에 발견할 목적으로 고안한 방법이 건강검진이다.
증상이 생기면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이런 진료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다. 건강검진은 질병을 예방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시쳇말로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진단하는 건강검진 덕에 국내 암 치료 성적이 크게 향상됐다. 과거에는 수술로만 치료했던 위암을 조기에 발견하면서 내시경으로 치료하게 됐고 생존율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건강검진은 또 자신의 현재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를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암이나 생활습관병이 잘 생기는 중년 이후부터 건강검진을 받는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건강검진은 나이와 무관하다. 20~30대도 당뇨병에 걸리며 자궁경부암은 20세부터 검사하라는 게 의학적 권고 사항이다.
검진 받을 곳을 선택하는 기준 3가지
외국과 비교해 우리는 건강검진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동네 의원, 대형 병원, 전문 건진센터 등에서 각종 검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마다 검사하는 항목이 제각각이고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을 의료기관을 어떻게 선택할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정답은 없지만 전문의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3가지 기준을 찾을 수 있다. 사후 관리, 상담 전문 의사,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건강검진 의료기관을 선택하면 큰 무리가 없다.
사후 관리란 건강검진 이후의 진료를 말한다. 질병을 발견하면 추가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후 관리 면에서는 대형 병원과 동네 병원이 유리하다.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진료까지 받을 수 있다면 굳이 결과지를 들고 다른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된다. 동네 의원은 종합건강검진을 하지는 않지만 혈액 검사, 대소변 검사, 초음파 검사, 내시경 검사를 수시로 한다.
상담 전문 의사가 있는지도 건강검진 의료기관을 고를 때 필요한 요소다. 건강검진 결과는 환자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의사의 설명이 필요하다. 의사가 환자를 성실하게 대하는 의료기관이 있는가 하면 기계적으로 대하는 병원도 있다. 이런 면에서는 동네 의원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자주 가는 동네 의원에서 특정 검사를 받으면 자신의 건강 상태와 생활습관을 잘 알고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설명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신현영 한양대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건강검진 결과를 일반인이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검사 결과를 잘 설명해 주는 상담 전문 의사가 있는 곳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게 이롭다. 동네 의원은 자신이 어딘가 이상하다 싶을 때 손쉽게 검사를 받고 주치의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경제적 능력도 건강검진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한 가지 기준이다. 경제력에 여유가 있다면 대형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게 유리하다. 비용이 비싼 만큼 더 쾌적한 환경에서 시쳇말로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또 의료진과 진단기기의 성능이 좋아 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건강검진만 전문으로 하는 건진센터는 검사 항목이 많고 비용도 저렴하고 서비스도 비교적 좋다. 그러나 사후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단점이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혈액 검사, 대소변 검사, 내시경 검사는 동네 의원이나 큰 병원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정기적인 건강검진은 큰 병원이 다소 유리하다. 동네 의원이나 전문 건진센터는 나중에 책임 소재 때문에라도 질병을 넓게 잡는 편이라면 큰 병원은 정밀하게 잡는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택 항목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
건강검진의 기본 검사 항목은 신체 계측(체지방 측정), 안과, 청력, 폐 기능, 심전도, 혈액, 대소변, 흉부 X선, 유방 X선, 복부 초음파, 위내시경, 자궁경부암 검사다. 이런 검사는 1년에 한 차례씩 받는 게 기본이다. 나머지 검사는 선택 사항이다. 돈을 더 주고 자신이 추가로 받고 싶은 검사 항목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면 내시경 검사가 선택 항목이다. 돈과 시간이 많으면 모든 선택 항목을 추가해 검사받으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므로 몇 가지 검사를 고를 수밖에 없다.
어떤 점들을 고려하는 게 좋을까. 그 첫 번째 기준은 위험도다. 자신이 특정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면 그와 관련된 검사를 추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년 이상 담배를 피웠다면 폐암 관련 검사를 추가하고 대장암 가족력이 있다면 분변잠혈검사보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김홍규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관련 선택 항목을 추가해 더 정확하게 검사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런 위험 요소가 없다면 성별과 나이를 선택 항목을 고르는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여성은 유방암과 자궁경부암 같은 여성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유방 X선 검사, 자궁경부암 검사, 골반 초음파 검사 등을 선택하는 게 이롭다. 음주와 흡연을 하는 남성은 간암과 폐암에 걸릴 위험이 크므로 간암과 폐암 위주의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가 필요하다. 과거보다 전립선암이 증가하므로 PSA 검사(전립선특이항원검사)도 선택할 만한다.
연령별로 보면 30대는 혈액검사, 흉부 X선 검사, 복부 초음파 검사, 위내시경 검사 등이 필요하고 40~50대는 암이 발생하는 시기이므로 위, 대장, 폐 중심의 암 검사를 추가하는 게 좋다. 50대부터는 심혈관질환도 증가하므로 관련 검사를 선택하고 60대부터는 암과 심혈관질환 외에 뇌 질환도 늘어나므로 매년 뇌 검사 항목을 추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강희철 교수는 “유방암 검사는 2년이 아니라 1년마다 하는 게 좋다. 갑상선암은 미리 초음파 검사를 할 필요는 없고 목에 이상한 것이 만져질 때 검사받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의료인은 ‘유전자 검사·생체 나이’ 신뢰 안 해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유전자 검사와 생체 나이 검사를 선택 항목으로 추천한다. 유전자 검사는 자신이 특정 암이나 질병에 잘 걸릴지를 미리 확인하는 방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료계는 유전자 검사와 생체 나이 검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한 사람이 두 곳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결과 ‘골다공증 가능성이 크다’와 ‘골다공증 가능성이 작다’는 정반대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이 검사를 받더라도 그 결과를 참고용으로만 이용하라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신현영 교수는 “유전자 검사의 한계는 통계다. 자신에게 특정 질환 소지가 높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통계치이므로 반드시 그 병에 걸린다고 볼 수 없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건강 유지를 위한 참고용이라고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폐암 위험 경고 진단이 나왔다면 금연하고 건강검진을 받을 때 저선량 CT를 선택 항목으로 정하면 된다”며 “생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젊게 나오면 자신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만할 수 있다. 실제로는 나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또 실제 나이보다 생체 나이가 많게 나오면 실망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활습관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생체 나이는 의학적 근거가 높지 않아 의료인은 신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50대부터 초음파보다 CT 검사가 유용”
요즘은 진단 장비가 다양하고 정확도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초음파 검사를 받을까 아니면 CT 검사가 좋을까 고민한다. 일반적으로 초음파 검사와 X선 검사는 기본 항목이고 CT,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단층촬영) 검사 등은 선택 항목이다.
이 선택 검사는 일반인보다 고위험군이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건강검진 결과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을 때 정밀 진단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담배를 오랜 기간 피워 폐암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은 X선 검사 외에 흉부 CT 검사를 추가로 선택하면 된다. 뇌동맥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뇌 MRA(자기공명혈관조영술) 검사를 추가 항목에 넣는 게 좋다. 신현영 교수는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진료 영역으로 들어가는데 그때 CT, MRI, PET 검사가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초음파 검사의 정확도가 CT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중년 이후 의심되는 부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CT 등을 사용하라는 조언도 있다. 강희철 교수는 “국가가 검진해 주는 6가지 암(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폐암) 외의 나머지 암은 대부분 복부에 몰려 있다. 간암, 신장암, 난소암, 췌장암 등 복부에 있는 암은 초음파 검사보다 CT 검사가 정확하다. 그래서 경제적 여력이 있다면 50대 이후부턴 CT 검사를 권한다. 또 50대에 심혈관질환을 찾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하지만 심장혈관 CT 검사가 가장 정확하다. 생애 한 번쯤은 MRA 검사도 받는 게 좋고 경제적 능력이 되면 2년마다 검사해도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건강검진을 받은 후 이상 소견이 없다면 건강하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건강검진은 표적 질환을 찾아내도록 설계됐다. 표적 질환이란 사회 구성원이 잘 걸리는 병,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결과가 좋은 병,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을 주는 병 등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위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유방암, 심장질환, 폐결핵, B형 간염 등이다.
건강검진으로 확인하지 못한 병에 걸릴 가능성은 여전하다. 즉 건강검진 결과가 자신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결과를 의사와 상담하고 자신이 개선할 생활습관을 찾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건강검진 잘 받는 요령
■ 평소
• 나만의 건강검진 주치의를 정한다.
• 건강검진 주치의를 만나 추가로 검사할 항목을 정한다.
• 건강검진은 10월 이전(비수기)에 받는 것이 좋다.
■ 건강검진 전날
• 저녁 식사는 8시 이전에 마친다.
• 저녁 9시 이후부터는 껌, 사탕, 담배, 술을 포함해 금식한다.
• 충분히 잔다.
• 과식이나 과로하지 않는다.
■ 건강검진 당일
• 혈압약은 당일 최소량의 물로 복용한다.
• 인슐린 주사나 당뇨약은 복용하지 않는다.
■ 검사 후
• 결과 상담은 담당 의사에게 받고 추적 검사 간격과 추가 진료를 꼼꼼히 챙긴다.
• 건강검진 결과지는 보관하고 진료할 때 활용한다.
초음파·CT·MRI로 검사할 수 있는 부위는?
초음파
간, 담낭, 췌장, 비장, 방광, 자궁, 난소, 전립선, 유방, 음경, 심장
CT
간, 담관, 췌장, 비장, 신장, 폐, 종격동, 심장, 혈관, 자궁, 난소, 전립선, 방광, 뇌, 근골격계, 척추
MRI
뇌, 뇌혈관, 척추, 근골격계, 간, 췌장, 위, 직장, 자궁경부, 자궁
7대 암, 언제 어떤 검사 받아야 하나
• 위암: 40세부터 2년 주기. 위내시경 검사 우선(위장조영촬영 선택)
• 간암: 40세 이상 B형 또는 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와 나이와 상관없이 간경화 진단을 받은 사람 대상. 6개월마다 간 초음파와 혈액 검사(AFP) 권고
• 대장암: 45세부터 1~2년 주기. 분변잠혈검사 우선(대장내시경 검사가 정확)
• 유방암: 45세부터 2년 주기. 유방촬영술 권고
• 자궁경부암: 20세부터 3년 주기. 자궁경부 세포검사 권고(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 선택)
• 폐암: 하루 1갑씩 30년간 담배 피운 55세 이상 고위험군(15년 이상 금연한 사람 제외)은 1년 주기. 저선량 흉부 CT 권고
• 갑상선암: 일상적인 초음파 검사는 권고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