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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결정 무시하는 일 잦아…돈 많은 교회가 사실상 ‘갑’

“돈 많은 교회가 갑입니다.” 명성교회가 교단 총회 재판국의 ‘세습 불가’ 판결에 반발하고 있는 데 대해 교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교계 인사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한 말이다. 그는 “교단이 대형 교회의 돈으로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이라며 “그만큼 교단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은 8월5일 명성교회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김삼환 목사가 은퇴한 후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교단이 받아들였다는 게 교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명성교회는 판결 다음 날 입장문을 통해 사실상 재판국 판결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명성교회는 “위임목사 청빙은 세습이 아닌, 성도들의 뜻을 모아 당회와 공동의회의 투표를 통한 민주적 결의를 거쳐 노회의 인준을 받은 적법한 절차”라고 주장하며 “위임목사로서의 사역이 중단 없이 지속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8월5일 명성교회 부자 세습 문제를 둘러싼 교단 재판국의 재심 결정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8월5일 명성교회 부자 세습 문제를 둘러싼 교단 재판국의 재심 결정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대형 교회가 교단 좌지우지”

예장통합은 2013년 이른바 ‘세습금지법’을 제정했다. 교회법에 ‘세습금지’ 조항을 명문화한 몇 안 되는 교단 중 하나다. 그런데 지난해 8월7일 재판에서는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 결의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교단이 사실상 명성교회의 세습에 동조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교계 내에서는 ‘교단 위에 대형 교회가 있다’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방인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실행위원장은 “교단이 힘을 못 쓰는 대신 대형 교회가 교단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래서 세습금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버티는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목사도 “교단이 대형 교회보다 약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교단에서 목사를 데려와도 제대로 된 심사나 교육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대형 교회의 결정을 교단이 문제 삼지 못하는 기형적인 갑을 관계의 배경에는 ‘돈’이 놓여 있다. 교단 운영이 원활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교단 내 자립이 힘든 교회를 돕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대형 교회가 맡고 있다 보니 힘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명성교회가 교단 내에서 갖는 위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헌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대형 교회가 교단 내 작은 교회들을 많이 지원한다”며 “명성교회도 미자립 교회들을 도우면서 교단 내에 세력을 구축해 왔다”고 설명했다. 대형 교회의 경우 출신 인사들이 관여하는 교회가 상당하다. 이른바 ‘패밀리 교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대형 교회가 움직이면 이들 패밀리 교회도 함께 움직인다. 교단이 대형 교회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다 초교파를 앞세운 교단 없는 교회가 늘고 있는 상황도 교단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들 교단 없는 교회의 목사 수를 합치면 국내 최대 교단의 목사 수보다 많을 정도라고 한다. 이래저래 교인 수와 자금력을 자랑하는 대형 교회가 빠져나갈 경우 아쉬운 건 교단이라는 지적이다.
명성교회 전경 ⓒ 시사저널 박정훈
명성교회 전경 ⓒ 시사저널 박정훈

‘교단 탈퇴’ 초강수 둘까

명성교회가 교단의 판결에 반발하며 실력행사에 나설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교단이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명성교회가 교단보다 더 선택지가 많아 보인다는 관측도 있다. 이헌주 국장은 “일단 총회에서 판결 뒤집기를 시도할 수 있다”며 “교단을 탈퇴할 수도 있는데 일단 탈퇴를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교단에 가입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세습 불가’ 판결이 유지될 경우 명성교회가 ‘교단 탈퇴’라는 초강수를 둘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방인성 위원장은 “교단 측에서 판결을 유지하면 아마 명성교회가 탈퇴를 할 수 있다”며 “명성교회만 나가는 게 아니라 많은 다른 교회들도 따라 나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교단 탈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명성교회가 교단을 상징하는 교회인 데다 김삼환 목사는 교단 총회장까지 지냈다. 탈퇴 절차도 까다롭다. 전체 교인 재적의 3분의 2가 탈퇴에 찬성해야 한다. 여기에다 명분도 마땅치가 않다. 교단 입장에서도 명성교회 탈퇴 후폭풍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편 세습금지법을 포함한 교회법의 경우 처벌 조항이 없어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단이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에 제동을 걸었지만 이후 별다른 조처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헌주 국장은 “세습금지법을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다”며 “교회와 목사의 윤리적 판단과 양심에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벌은 없지만 징계는 할 수 있다. 방인성 위원장은 “총회나 노회에서 목사를 면직하거나 출교할 수 있지만 교단에서 그런 징계를 내릴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본 후 “하지만 이번 판결은 총회 의결에 따른 판결로 형사 처벌 이상의 무거운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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