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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안컵 8강 탈락이 남긴 교훈
의무팀 논란도 아시안컵 실패의 주원인으로 지적

벤투호에 비상이 걸렸다. 1월25일 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자예드 스포츠시티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승리에 기뻐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카타르 선수들 뒤로 한국 선수들은 패배를 믿을 수 없다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아시안컵 우승 도전을 돕기 위해 대회 중 합류한 주장 손흥민은 이전 메이저대회와 달리 이날의 실패 앞에서는 울지도 않았다. 그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내 책임이다. 동료들과 팀, 그리고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경기장을 떠났다.  59년 만의 정상 도전에 나선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아시안컵 초대(1956년) 챔피언인 한국은 2회 대회(1960년)까지 2연속 제패를 한 뒤 반세기 넘게 우승하지 못했다.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처하지만 정작 최강자로 인정받는 공식 대회에서는 긴 시간 침묵한 것이다. 2015년 호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던 만큼 이번만큼은 우승이라는 강한 목표를 세웠다.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혀온 기성용·구자철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했다.  러시아월드컵 실패 후 한국 축구 재건의 특명을 받고 취임한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 감독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벤투 감독은 코스타리카·칠레·우루과이 등 강호를 상대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3경기에서도 전승을 거뒀다. 바레인과의 16강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결국 승리하며 11경기 연속 무패(7승 4무)를 이어갔다. 1997년 대표팀 전임 감독제 시행 후 최다 기록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패배와 함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킨 카타르에 밀리고 말았다. 후반 33분 한국 진영 중앙에서 압뎁아지즈 하팀이 때린 중거리 슛 한 방에 무너졌다. 59년의 숙원이 63년으로 길어지는 순간이었다. 2004년 중국 대회(8강) 이후 3회 연속 4강 이상에 진출했던 한국은 15년 만에 가장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축구를 ‘지배’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공을 소유하고 경기를 주도하며 최대한 많은 찬스를 만들어 승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그런 벤투 감독의 철학을 그라운드 위에서 수행했다. 아시안컵 5경기에서 벤투호의 평균 볼 점유율은 66%에 달했다. 패스도 8강전까지 3341회를 기록, 아시안컵 전체 참가 팀 중 1위였다.   
벤투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조별리그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됐는데도 토너먼트에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복붙(복사 후 붙이기)’ 전술이라고 비판받은 동일한 포메이션과 베스트11, 
로테이션이 전무한 선수 활용은 경기를 치를수록 상대에게 
읽힌 감이 있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월25일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카타르에 패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 AP 연합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월25일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카타르에 패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 AP 연합

경기 지배하고도 밀집수비 못 뚫어

경기를 지배했지만 골을 넣고 승리를 가져가는 효율성은 높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한국을 상대하는 팀은 대부분 밀집수비를 기본 전술로 들고나온다. 이번 대회 최다 골을 기록 중이던 카타르마저도 한국을 상대로는 파이브백을 가동했다. 상대도 한국의 전력상 우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상황이 10년 넘게 벌어지는 중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은 5경기에서 6골을 넣는 데 그쳤다. 이란·카타르(12골)의 절반이었고 일본과 UAE(이상 8골)보다도 떨어졌다. 슈팅의 효율성도 떨어졌다. 5경기에서 한국은 78개 슈팅을 기록해 호주와 이란 다음으로 많았다. 그러나 유효슈팅은 24개에 그쳐 슈팅당 유효슈팅 비율이 31%였다. 한국은 호주와 더불어 높은 볼 점유율과 많은 패스, 슈팅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결정할 골에 다가설 수 있는 유효슈팅은 적은 대표적인 비효율 팀이었다. 카타르에 패할 때까지 4연승을 달렸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상대를 압도한 적은 많지 않다. 힘을 빼고 나온 중국을 상대로 2대0 완승을 거둔 것을 제외하면 필리핀·키르기스스탄 같은 아시아 중하위권 팀에도 고전했다. 벤투 감독이 밀집수비를 한국전의 기본 전술로 삼는 팀들에 대한 대응책을 너무 안일하게 짰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좋은 경기력과 결과를 동시에 가져간 2018년의 평가전 상대들은 맞불을 놓는 팀들이었던 반면 수비라인을 한참 내리고 페널티박스를 중심으로 겹겹의 대형을 짠 상대 앞에서는 ‘빌드 업’ 축구의 한계를 보였다.  주도권을 쥐고도, 공간을 이미 장악한 팀을 상대로는 침투 패스와 잘 짜여진 2대1 부분 전술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백패스와 단순 크로스에 의존했다. 아시아의 강호지만 상대적으로 개인 기술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손흥민·황희찬 등을 제외하면 좁은 공간에서 압박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약했다. 황의조라는 검증된 골잡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고립시킨 것도 그런 문제에서 비롯됐다. 


‘의무팀 논란’, 구멍 난 축구협회 지원 

벤투 감독의 전술적 유연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조별리그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됐는데도 토너먼트에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복붙(복사 후 붙이기)’ 전술이라고 비판받은 동일한 포메이션과 베스트11, 로테이션이 전무한 선수 활용은 경기를 치를수록 상대에게 읽힌 감이 있다. 확고한 철학과 플랜A는 중요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다양한 수로 상대를 흔들 필요도 있다.  실패로 이어진 또 다른 문제는 대회 내내 이어진 의무팀 논란이었다. 이번 아시안컵은 이전의 월드컵 등 다른 메이저대회와 비교해도 유달리 부상자가 많았다. 대회 개막 전 공격수 나상호가 이탈했다. 대회 중에는 기성용·이재성이 차례로 다쳤다. 조별리그 1차전 이후 두 선수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카타르전에는 황희찬이 부상으로 결장하며 공격의 활력이 죽고 말았다. 대회 중 합류한 손흥민의 컨디션 관리도 문제였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소속팀 토트넘에서의 반복된 경기 출전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아시안컵에 합류한 손흥민은 이틀 만에 중국전에 출전해 86분을 뛰었다. 조 1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였던 만큼 에이스의 출전은 불가피했지만, 그만큼 손흥민의 피로도가 커졌다. 결국 토너먼트 들어서 손흥민은 뚝 떨어진 경기력을 보였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의무팀원들의 이탈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대회 시작 전 재활트레이너 팀장인 A씨가 돌아갔다. 바레인과의 16강전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재활트레이너 B씨가 짐을 꾸려서 떠났다. 두 명 모두 10년 이상 각급 대표팀에서 활동하며 선수들의 높은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1일부로 끝난 계약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재계약을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을 아시안컵에 대동했고, 결국 계약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자 두 트레이너가 차례로 팀을 떠난 것이다. 축구협회는 다른 인력을 곧바로 대표팀에 보냈지만 혼란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대회 중 김판곤 부회장이 나서서 행정 실책에 대해 사과하고 개선책을 약속했지만, 이어진 카타르전 패배와 탈락으로 의무팀 논란은 아시안컵 실패의 주원인이 됐다. 축구협회의 A대표팀 지원 시스템에 총체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사태였다. 그 밖에도 주치의 선정에 대한 기준과 매뉴얼 부재도 지적받았다. 아시안컵 실패의 아픔을 뒤로하고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월드컵 예선에 돌입해야 하는 축구협회로서는 행정적 지원의 큰 구멍을 메우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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