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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출판인 우일문의 ‘사부곡(思父曲)’
6·25때 전쟁포로의 굴레가 천형처럼 따라다녔던 아버지

올 초 출판계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가장 정감 있는 단어로 시작했다. 김은성 만화가가 곡직하게 쓰고, 그린 가족에 관한 만화책이 인기몰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대열에 출판인이자 작가인 우일문의 사부곡 《시시한 역사, 아버지》가 합류했다.

두 책의 등장으로 섣부르지만 올해를 시작하는 부모라는 키워드는 적지 않은 힘을 얻을 것으로 생각된다. 1963년생인 우일문 작가와 1965년생인 김은성 작가의 책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시기와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 ‘58년 개띠’로 통칭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환갑을 지났고, 그들 부모의 세대가 한두 분씩 돌아가시는 시기가 됐다. 이 부모 세대는 한국전쟁이라는 시기를 온몸으로 견뎌냈고, 자식을 낳아,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구어진 교육열로 이 나라를 세운 세대다. 어지간하면 7, 8남매를 낳아서 대부분 이 시대의 주역으로 장성시킨 만큼 가장 큰 역할을 한 세대다.

그런 부모를 보는 자식의 마음도 애잔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데올로기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힘들었던 이들 세대에 대한 오마주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일문 작가가 아버지에 대해 쓴 이번 책은 부모 세대에 대한 가장 짙은 공감이다. ‘국가의 조롱과 멸시에 모욕과 수치를 느꼈지만 평생 내색하지 않았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배경을 들어봤다. 

저자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파주시 탄현에 있는 단양 우씨 집성촌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가 막바지로 향할 무렵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공부도 곧잘 해 ‘도상’(경기상고)에 입학할 만큼 성적도 좋았다. 그의 꿈은 당시 대우 좋은 은행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 청년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인민군 점령 기간 동안 그는 집안의 권고로 의용군에 입대한다. 다행히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전쟁포로라는 굴레가 천형처럼 따라다닌다. 그 굴레를 벗을 수 있다는 말에 1957년 다시 입대해 만기 제대했지만, 굴레는 여전했고 결국 고향 마을에서 서투른 농부의 삶을 산다.

《시시한 역사, 아버지》 | 우일문 지음 | 유리창 펴냄 | 352쪽 | 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시시한 역사, 아버지》 | 우일문 지음 | 유리창 펴냄 | 352쪽 | 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국가의 멸시, 평생 내색하지 않은 아버지

작가는 이 꼬일 대로 꼬인 아버지 삶과 더불어 자신의 생활을 오버랩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에게 한국전쟁이 있다면 그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만난 5·18 민주화운동부터 전두환 시대라는 굴레가 있었다. 일제 식민지든 군부독재 시대든 그들이 산 시대는 그들의 뜻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대는 한없이 처절했고, 잔인하기도 했다. 이제는 사라졌다지만 연좌제의 망령이 선연한 지금, 어떻게 이런 결심을 했을까.

“아버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문득 행장(行狀)을 떠올렸는데,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해 왔는지, 소년 시절, 청년 시절 어떤 꿈을 꿨는지 궁금했다. 묻기 시작했다. 아버지 꿈이 은행원이었다는 것,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 경기상고에 진학했다는 것을 알았다. 인민군에 끌려간 원인으로 ‘민간인억류자’로 풀려나 취직도 할 수 없는 등 ‘부역자’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아버지는 당신 얘기를 하면서 많이 우셨다. 내색 못한 것도 억울하다고 했다. 나도 억울했다. 그래서 아버지 생애를 추적했다. 8년 전부터다.”

작가는 제목을 ‘시시한 역사’라고 뽑았다. 과거는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던 시대라면 민주공화정의 주인은 국민이니만큼 국민의 시시한 이야기가 역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터이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하잖나. 평범하다 못해 시시한 개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서문 제목으로도 썼지만 ‘시시한 사람의 생애가 모여 역사가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생애는 지워진다. 이는 역사의 속성이기도 하겠지만 ‘사소한 기록’의 부재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평범하고 시시한 개인이 역사의 주역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내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개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극적인 역사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졌고 시원찮은 국가는 위로는커녕 조롱과 멸시를 보냈다. 내 아버지들은 두려워서 내색도 하지 못하고 숨죽여 삶을 겨우 살아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이런 국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고향인 파주시 탄현에 대한 묘한 느낌이 들게 된다. 접경지대가 아닌 경우 쉽게 느낄 수 없는 정서가 있을 것 같다.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은 무엇일까. 

“내가 나고 자란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는 분단을 상징하는 접경지역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밤마다 등화관제 훈련을 해 방문에 군용 담요를 쳐 불빛을 막아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총질을 해대 학교 다녀오다가 시궁창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휴전 10년 뒤에 태어났지만 전쟁을 경험한 셈이다. 책에도 나오지만 내 고향 사람들은 전쟁 때 피난도 가지 않았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접경지역이지만 인민군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임진강이 막고 있어서 그렇다. 그런 지역에서 아버지의 비극이 시작됐다. 아이러니다.”

부모님 이야기나 가족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을 아직은 객쩍은 일로 생각하는 일이 많다. 다른 사람들이 가족 이야기를 쓴다면 선험자로서 가장 충고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권장할 일이다. 기록이 있어야 역사에 반영되지 않겠나. 지금이라도 부모에게 묻기 바란다.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버지에게는 무슨 꿈이 있었는지, 어머니의 소녀 시절은 어땠는지. 자세한 이력서, 개인 연표를 만들면 좋다. 태어난 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연표를 작성하고 그때그때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덧붙이다 보면 생애를 기록할 수 있다. 그걸 현대사 연표와 합성해 보면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한 생애사가 된다. 내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조심한 부분은 기억의 왜곡이다. 내 기억과 형제들 기억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기억보다는 자료에 더 의존해야 한다. 자료가 뭐가 있겠나. 아버지가 기록을 남겼을 리는 없고. 부모, 형제, 친척들에게 자꾸 묻는 수밖에 없다. 취재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이 나라도 그랬다. 군주와 호족들의 무계획과 나태함으로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 나라를 지킨 것은 민초들이었다. 그들은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누란의 나라를 다시 살려냈다. 그런 힘은 임시정부를 통해 ‘민주공화국’이라는 체제를 선택했고, 100년여의 투쟁을 통해 지금을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그 못생긴 나무 두 세대가 이 시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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